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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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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석율그래 / (썰) 불온 1 1 장그래는 조선족 꽃제비임. 얼굴이 꽃같아서 꽃제비가 아니라 A시장 뒷골목에 모여사는 드글드글한 꽃제비들 중 하나였음. 북한이 넘어지면 코닿을만한 거리의 작은 도시였는데 위치가 위치다보니 중국에서 북한 넘어가는 물건들이 몰리면서 나름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음. 시장이라고 해도 요즘의 우리나라 재래시장 이런거 말고 한국전쟁 터졌을 즈음에 급하게 생겨났던 골목시장들이 딱임. 그 지역은 땅이 물러서 비만 조금 와도 금방 여기저기 웅덩이 생기고 진흙탕이 되었음. 장그래는 아주 어릴때부터 거기서 꽃제비 일을 했음. 어디 시장 어귀에 버려진 애기를 꽃제비들이 주워다 '본부'로 데려갔는데 굶어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아무튼 열악한 환경에서 장그래는 죽지 않고 살아남. 이름이 장그래인것은 꽃제비들 관리하는 사장 아저씨..
미임파4 이단브란 / 사막 사막 빛이 점멸한다. 브란트는 그것이 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점멸한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위 아래로 흔들리고 점멸하고, 어쩌면 춤추는 것 처럼, 그것은 탱크일지도 모른다. 혹은 반군을 실은 트럭의 헤드라이트일수도 있고, 그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브란트는 가늠쇠 너머로 시선을 들었다. 확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또 마치 꿈이라도 꾼 것처럼 빛은 그 자리에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고운 모래가 함께 그를 쓸어내렸다. 그는 입술에서 모래를 뱉어냈다. 밤이라 다행인 일이었지만, 그래도 목이 말랐다. 수통에 물이 얼만큼 남아 있었지. 두 시간 전에 한 모금 마셨으니까 이제 반도 안 남았을 것이다. 브란트는 문득 어깨 아래로는 감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가 질 무렵부터 엎드려 있..
미생 석율그래 / Dead end Dead end막다른 길 한석율씨를 좋아해요. 나는 물컵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상하게 손에 힘이 들어가서 컵 안의 물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 내 눈에도 보였다. 장그래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아마 그도 내 컵을 보았을 것이다. 고요하지만 처참하게 흔들리는 물. 하지만 직장 동료 이상의 감정은 아닙니다. 하얀 얼굴에 입술은 붉고 눈은 또렷하게 생긴 미인 상의 얼굴은 조심해야 한다. 그들은 의외로 거절에 능하다. 정리해 주세요. 장그래는 그렇게 말할 때까지 한 번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나를 똑바로 보면서, 두 번 다시 그런 이야기를 꺼낼 기회조차 만들지 않겠다는 듯 확고한 태도였다. 나는, 어떻게 했냐면, 일단 웃었다. 하하하하, 뭘- 뭘 정리해? 장그래는 눈을 잠깐 아래로 내렸다. 나는 그가 내 ..
간서치열전 도사수한서랑 / 수한의 수난시대 +간서치열전 진짜 재밌거든요 여러분 제가 진짜 잘해드릴게요 간서치열전 좀 봐주세요.. 수한의 수난시대 수한의 눈에 총기가 흘렀다. 오늘은 오랜만에 열린 책거래 장터였고 그 말인즉슨 수한이 사흘 전부터 뜬 눈으로 기다린 바로 그 장날이었다. 어머니께 등짝을 얻어맞으면서도 끝끝내 모아온 쌈짓돈을 드디어 오덕후답게 쓸 날이 온 것이다. 수한은 안면이 있는 책쾌 영감 노점 앞에 쭈그리고 앉아 영감을 닥달하고 있었다. 서자라고 해도 씨는 양반 씨인데 흙바닥에 서너살 아이처럼 쭈그리고 앉은 꼴이 여간 모양 빠지는 것이 아니었으나 그런 것을 신경쓸 간서치도 아니었고, 장터 사람들도 으레 있는 일이라 신경쓰지 않았다. "아 거 그래서 뭘 가져왔길래 그토록 꺼내지도 않고 뜸을 들이는 것이오? 이러다 해 떨어지겠소오." ..
미생 석율그래 / 성냥을 가진 남자 성냥을 가진 남자조폭AU 우린 담배때문에 시작되었다. 그는 담배를 문 채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심히 불안정해보였기 때문에 나는 그를 피해야 겠다는 생각에 서너걸음쯤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그러나,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는 내 옆으로 정확하게 다가와서 물었다. '불 없어?' 나는 고갤 저었다. 그쯤이면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문 담배를 도로 손에 쥐더니 갑자기 팔을 흔들었다. '내가 진짜 담배 끊으려고 했거든? 담배 이제 내가 더럽고 치사해서 안핀다하고 아주 뚝 부려뜨렸는데 이게 이놈이 이게 아요 요망한, 그래서 불 없어?' 나는 아무래도 확실히 말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불 없어.' 그가 눈을 깜빡거렸다. 동그랗고 장난기 많은 눈이었다. '난 끊었거든.' 내 말에 그가 히익하고 요란을 ..
미생 하성준식 / 전조현상 전조현상 너 그렇게 살다가 손해만 본다니까! 성준은 휴게실에 들어서자마자 들린 탄식에 고갤 돌렸다. 소리는 창가쪽에 서 있던 동식한테서 터져나온 참이었다. 그 앞에는 종이컵을 들고 머쓱하게 웃고 있는 준식이 있었다. 동식은 답답하다는듯 제 가슴팍을 몇번이나 내리쳤다."야 그래가지고 그 살집이 무너지겠냐? 더 쳐야지?""아니 너는 괜히 시비야. 야 얘 하는 말 들어봐라, 안 답답하게 생겼나.""뭔 말?"성준은 준식을 쳐다봤다. 체구가 작고 마른 입사동기는 아냐아냐하며 손을 내저었다. 그는 자주 짓는 표정이 있는데, 주로 칭찬을 들을 때 짓는 머쓱한 표정이었다. 눈을 휘면서 입가를 끌어당겼다. 그렇게 하면 볼에 보조개가 패이는데 그게 웃는 얼굴을 웃는 얼굴 같지 않게 보이게 했다. 준식이 말을 않자 동식이 ..
마블 맷피터 / 그 남자의 집 그 남자의 집 결국 지나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닌 것이 될 거야. 맷 머독은 그렇게 말했다. 정말 그랬다. 그는 늘 맞는 말만 했다. 가끔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악다구니를 쓰게 할 만큼, 맞는 말을 돌리지도 않고 그대로 날렸다. 천하의 스파이더맨이라고 해도 심장 바로 앞에 총구가 닿아 있으면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언어의 사정거리라는 것을 두지 않는 사람의 말은 피할 도리가 없다. 더 열 받는 건 그러한 말을 듣고 그대로 갚아줄 수 있을 만큼, 피터 파커가 말 주변이 뛰어나지 못하다는 사실이었다. 상대는 변호사라고,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피터는 가끔 화가 끓어오를 때마다 그렇게 생각하며 가라앉혔다. 가라앉힌다고 가라앉을 감정이 아닌 것은 두 번째 문제였다. 그러나 가라앉히지 못하면 무엇을 어쩔 것..
관계의 종말 관계의 종말 김태성은 카페를 한다. 상수역에서 200M쯤 떨어진, 주택가로 들어가는 골목 안 쪽 애매한 자리에 위치한 카페 ‘헬리오스’가 그가 운영하는 가게였다. 그다지 주목받지 못할 위치에 있는데다, 독신인 게 분명한 사장의 불친절과 개인주의의 경계를 오가는 접객태도를 생각하면 손님이라고는 파리 몇 마리가 전부일 것 같다. 그러나 그것도 개성으로 받아들이는 식객들의 방문으로 단골들은 꽤 많았다. 태성은 이 현상을 두고 ‘내가 잘생겨서 그래.’라고 말해서 알바들에게 빈축을 샀지만, 블로그 후기에 가끔 사장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올라가는 걸로 봐서는 아예 지어낸 말은 아니었다. 180cm는 넘지 않지만 거의 그쯤 가는 훤칠한 키에 마른 몸은 보기만 해도 늘씬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게다가 나이보다 동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