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종말
김태성은 카페를 한다. 상수역에서 200M쯤 떨어진, 주택가로 들어가는 골목 안 쪽 애매한 자리에 위치한 카페 ‘헬리오스’가 그가 운영하는 가게였다. 그다지 주목받지 못할 위치에 있는데다, 독신인 게 분명한 사장의 불친절과 개인주의의 경계를 오가는 접객태도를 생각하면 손님이라고는 파리 몇 마리가 전부일 것 같다. 그러나 그것도 개성으로 받아들이는 식객들의 방문으로 단골들은 꽤 많았다. 태성은 이 현상을 두고 ‘내가 잘생겨서 그래.’라고 말해서 알바들에게 빈축을 샀지만, 블로그 후기에 가끔 사장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올라가는 걸로 봐서는 아예 지어낸 말은 아니었다. 180cm는 넘지 않지만 거의 그쯤 가는 훤칠한 키에 마른 몸은 보기만 해도 늘씬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게다가 나이보다 동안이다. 올해로 36살된 영락없는 아저씨는 어딜보나 30살이 넘지 않은 것처럼 보여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오해받는 일도 많았다. 그게 싫었던 그는 가게 안에서 자기 가슴팍에 <사장> 이라고 크게 적힌 명찰을 단다. 큰길가에서 왼쪽으로 꺾어 골목 어귀에 들어서면 고만고만한 갈색 벽돌 빌라들 사이에서 불쑥 노란색 간판이 솟아나는데 글씨는 없고 오직 중앙에 빨간 색으로 그려진 ‘태양’ 그림만 있었다. 건물 주차장 공간을 빌려 만든 곳이라 낮은 경사로를 따라 반 층 내려가면, 반 지하 분위기의 그 곳이 이름도 찬란한 ‘헬리오스’되시겠다. 덕분에 처음 오는, 지나가다가 충동적으로 들어온 새내기 손님들은 실컷 앉아 있다 계산하고 나갈 때쯤 되서야 ‘여기 이름이 뭐에요?’ 하고 묻는 경우가 허다했다. 대부분의 블로그 후기들이 단순하게 ‘해 그림 카페’, ‘햇님 카페’라고 설명하기도 해서 사실상 ‘헬리오스’를 ‘헬리오스’라고 똑바로 부르는 사람은 몇 안 되었다. 사실 세 명의 아르바이트 직원들도 사장이 없으면 마음대로 줄여 부르기 일쑤여서, 매번 똑바로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사장인 김태성 밖에 없었다. 이름이 헬리오스인 것이야 그렇다 쳐도 간판이나 냅킨, 심지어 카페 바닥 어디에도 헬리오스라고 쓰여 있는 곳이 없어서 종종 왜 헬리오스라는 복잡하고 이국적인 이름을 붙여 놨는지, 간판에는 왜 안 적어놨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제 알바한지 갓 5개월이 되가는 대학생 혜미가 면접 보러 와서 대번에 ‘근데 왜 간판에 그림만 그려놨어요?’라고 물어봤을 때, 김태성은 또 그 버릇대로 혀를 차며 말했다. ‘예쁘잖아.’
지금 김태성은 아직 카페오픈도 하지 않은 이른 오전 시간부터 빈 구석 테이블에 앉아 진지하게 고민 중이었다. 카페를 운영한지 이제 3년, 나름의 노하우가 쌓일 때도 됐지만 매번 환절기만 되면 메뉴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봄에는 주로 딸기가 들어가는 메뉴가 시즌 메뉴로 채택되지만 겨울은 딱히 특징될만한 것이 없다. 올해도 아무거나 따뜻한 걸 넣으면 되겠지 하고 느긋하게 미루고 있었는데, 문제는 갑자기 추워진 날씨였다. 카페에 따뜻한 음료야 늘 있는 법이지만, 요즘같이 한 블록에 카페가 두 세 개쯤 죽순처럼 생겨나는 때에는 시그니처 메뉴가 없으면 살아남기가 힘들다. 가뜩이나 외진 위치에 있는데다, 최근 큰길 근처로 새로운 카페가 생기는 바람에 김태성은 매출정산을 할 때마다 안 그래도 째진 눈을 더욱 날카롭게 뜨곤 했다. 매출이 떨어지고 오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자신이 남한테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인 탓이 컸다. 그런 이유로, 헬리오스의 불친절한 사장님은 테이블 위에 노트 하나를 올려놓고 그 노트가 새로 생긴 카페 주인 얼굴이라도 되는 양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후보는 대충 둘로 좁혀 졌다. 뜨거운 민트 초코라떼와 솔티드 핫초코가 마지막 경합을 두고 있었다. 왼쪽에 민트, 오른쪽에 핫초코라고 대충 휘갈긴 노트를 한참 노려보면서 그는 컵을 닦았다. 민트 초코 라떼는 기존에 있는 재료들을 사용하면 되니까 재료비에서 이점이지만, 민트향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에게만 팔릴 것이다. 솔티드 핫초코는 우선 적당한 가격의 소금을 들여와야 하고 말만 듣고 언뜻 맛을 잘 떠올릴 수 없기 때문에 선택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머릿속에서 치열하게 민트와 핫초코가 싸우는 동안, 그가 다섯 번째 머그컵을 닦아 테이블에 내려놓았고 박자를 맞추듯 문이 열렸다.
“아직 영업시간 아닌데요.”
문에 달린 종보다 약간 삐뚤어진 나무문이 내는 삐걱거리는 소리로 먼저 인기척을 들은 태성이 쳐다보지 않고 여섯 번째 머그를 집어 들며 말했다. 불청객이 여닫은 문틈으로 찬 공기가 비집고 들어왔다. 반 지하의 가게는 낮이나 밤이나 늘 조명을 켜야 했다. 찬 공기는 나무를 다듬어 만든 선반과 그 아래를 장식한 수천 장의 사진들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문 옆에 붙은 에펠탑 사진을 파르르 떨게 만들었다. 불청객은 축객령에도 아랑곳 않고 말했다. 거 참 인심하면 팍팍하시네. 그 말에 태성이 닦던 머그를 내려놓으며 고갤 삐딱하게 틀어 출입구를 쳐다봤다. 출입문과 그 옆에 짜 넣은 격자 유리를 제외하면 빛이 들어올 곳이 없어서, 문을 등지고 선 불청객은 꼭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처럼 보였다. 모자를 눌러쓰고 배낭을 지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인천공항 터미널에서 환승을 기다리는 여행객이었다. 게다가 턱에 수염이 덥수룩해서 언뜻 보기에 무슬림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히말라야를 오르는 세르파만큼이나 크게 짊어진 배낭을 보자 문득 김태성은 억울해 졌다.
“야, 꺼져, 너한텐 암 것도 안 팔아요, 새끼야. 꼴도 딱 그지 새끼 같은데 어딜 기어 들어오니. 빨리 안 꺼져?”
김태성은 조근조근 욕을 했다. 무슬림은 익숙한 듯 카운터 옆에 제 짐을 내려놨다. 사람몸통보다도 더 큰 배낭이 무거운 소릴 내며 바닥에 앉았다. 얼굴은 추위에 벌겋게 익고 입고 다니는 옷은 홑겹이다. 꼴에 선그라스는 근사한 것으로 썼는데 모든 것이 지독하게 희극적이었다. 그는 제 집처럼 물을 한잔 따라 마신 뒤 컵을 들고 김태성의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그가 앉자마자, 태성이 말했다.
“꺼지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내가 전화를 안 하려고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라니까. 그래도 엽서는 보냈는데, 그건 받았지?”
“엽서는 개뿔, 우표 한 장 못 받았거든?”
“…내가 그때 피스코를 하도 마셔서 좀 취해 있긴 했는데, 그럼 대체 어디다 보낸 거지.”
“모릅니다, 손님. 영업시간이 아니니 어서 꺼져주세요.”
불청객은 충격 받았다는 듯 눈을 치떴지만, 김태성은 쌜쭉한 표정 하나 없이 노트를 부여잡고 고개를 갸웃거릴 따름이었다. 목표대상에게 영 반응이 없자 불청객은 시위하듯 테이블 위에 엎드렸다. 침묵과 무시가 흘렀다. 테이블에 머릴 박고 평생 고갤 들지 않을 것 같던 불청객이 슬그머니 고갤 들고 선그라스를 벗었다. 태성은 노트를 보던 눈을 잠깐 그에게 돌렸다. 모자 챙 아래로 푹 꺼진 눈이 마주친다. 뺨도 마르고 눈도 푹 꺼졌는데 눈동자만은 생기 있어 보이는 것이, 김태성은 더욱 기분이 나빴다.
“태성아, 나 밥 좀.”
태성은 결국 참지 못 하고 손에 든 행주를 불청객의 얼굴로 집어 던졌다. 그냥 곱데 뒈져라, 장연우, 이 화상아! 장연우라는 이름의 불청객은 얼굴에 정통으로 행주를 맞았지만 어찌 되었건 30분 뒤에는 뜨거운 토마토 스프에 밥 한 덩이를 얻어먹게 되었다. 음식을 내주고도, 김태성은 여전히 쌩한 얼굴로 카운터 뒤에 앉아 ‘장연우와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음’ 모드를 실행 중이었다. 그때쯤 되니 아르바이트 직원 중 하나인 지원이 출근했다. 키가 훤칠하게 큰 그가 들어오니 카페가 벌써 꽉 찬 느낌이었다. 그가 연우를 보고 반가운 얼굴을 했다.
“형님, 진짜 오랜만이시네요. 이번엔 어디 갔다 오셨어요?”
“칠레, 페루, 에콰도르.”
“와, 멀리도 다녀오셨네요. 그래서 안 보이셨구나. 회사는요?”
숟가락을 문 장연우가 행색과 나이에 답지 않게 V자를 그렸다. 때려 쳤지. 지원은 박수까지 쳤다. 와, 진짜 굉장하다. 옆에서 터지는 호응에 장연우의 목에 힘이 들어갔다.
“사나이가 칼을 뽑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그건 무가 아니라 거의 적장의 목인데요, 형. 이제 24살, 군대에서 제대한 뒤부터 복학한 지금까지 2년간 꾸준히 일하고 있는 지원은 앞치마를 매면서 감탄했다. 여행을 가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다니, 보통은 그 반대인데. 곧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할 20대 청년의 눈에는 피곤한 몰골로 나타나 친구 카페에서 밥을 얻어먹고 있는 그가 정말 ‘쿨’하게 보였다. 물론 모두의 눈에 쿨해보이는 것은 아니다.
“웃기고 있네. 너도 다 늙어서 백수 되는 게 꿈이냐?”
카운터 뒤에서 톡 쏘아붙이는 말이 지원의 뒤통수에 척하니 붙었다. 이크, 사장님 화났다. 지원은 대걸레를 가져와 바닥 닦을 준비를 하며 김태성이 오픈 키친을 정리하느라 시선이 닿지 않는 틈에 얼른 연우에게 속삭였다. 사장님이 걱정 많이 하셨어요. 장연우는 숟가락을 문 채 그저 크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안다는 건지, 알겠다는 건지 모를 모호한 의사표시지만 하루 이틀도 아닌 사이에 그쯤은 당연히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지원은 자신에게 맡겨진 바닥 청소 미션에 집중했다. 장연우는 지원에게 부탁해서-태성에게 말해봤지만 무시당했다- 뜨거운 커피까지 한 잔 얻어 마시면서 앉은 자리에서 시간을 때웠다. 꺼지라고 한 뒤 김태성은 아예 장연우를 없는 사람 취급했는데, 연우는 전혀 아랑곳 하지 앉고 가방 안에서 두툼한 종이봉투를 찾아 꺼내더니 그 안에서 족히 수 백 장은 될 사진묶음을 쏟아냈다. 언젠가 장연우는 혜미-오후에 출근해서 연우를 보자마자 죽은 친구라도 돌아온 듯 살갑게 인사를 했다-를 붙잡고 자신이 ‘헬리오스’에서 빈둥거리는 이유를 설명했다. 온 벽면에 빼곡히 붙은 수 백, 수 천 장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내가 경험했던 그 순간들이 다시금 막 반짝반짝하게 떠올라서 또 어디론가 떠나는 기분이 들거든, 것도 내 방에 누운 채로. 혜미는 머리 회전이 빠른 여학생답게 처신했는데, 즉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 모양이었지만 이야기를 털어 놓는 사람은 몹시도 진지했다. 장연우는 그 놈의 ‘여행’을 다녀오면 거기서 찍은 사진들을 전부 가져와 추려서 ‘헬리오스’에 붙였다. 처음 헬리오스가 생길 때만 해도 ‘여백의 미’라며 휑하게 남겨두었던 벽들은 이미 사진들이 점령한 지 오래였다. ‘헬리오스’를 검색하면 간혹 후기에 사진 이야기를 쓰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사진들이 얼마나 오랜 역사와 전통의 산물인지는 몰랐다. 장연우가 구석에 앉아 사진을 고르고, 몇 장의 사진을 다른 직원들과 나눠보며 잡담을 하다가, 그새 엎드려 자기를 반복하는 동안에도 태성은 그쪽으론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연우 역시 구태여 그의 관심을 끌어오려 노력하지 않았다. 한참 피크타임에 자리가 부족해서 뒤돌아 나가는 손님이 있을 때마저, 태성은 연우에게 비키라고 하는 대신 들어온 손님에게 ‘지금 자리가 없어서 대기하셔야 해요.’ 라고 안내했다. 카페 손님들은 카운터 앞은 차지하고 앉은 노숙자 몰골의 손님을 흘긋거렸지만, 카페 직원들은 개의치 않았다. 태성은 내내 오픈키친에서 와플을 구웠다. ‘헬리오스’의 일등공신 메뉴는 벨기에 와플이었다. 말로만 벨기에 와플이 아니라 ‘진짜’ 벨기에식 와플이었다. 갑자기, 정말 갑자기라고 밖에 설명 할 수 없는 타이밍으로 낼 모레 서른을 앞둔 20대의 마지막 날을 보내던 때에, ‘까페 차릴 거야. 뭘 팔까?’ 라고 물어보던 김태성에게 장연우는 그거 좋지, 라는 영혼 없는 리액션과 함께 대충 생각나는 대로 ‘벨기에에서 와플 먹었을 때 진짜 맛있던데, 그런 거 팔아.’라고 대답했었다. 한 달 쯤 뒤에 김태성이 벨기에행 비행기 표를 끊었을 때, 장연우는 전화기를 붙잡고 설마라고 생각했다. 설마 정말 와플을 배우러 갈 건 아니겠지. 하지만 김태성은 벨기에의 1년 동안 허름한 와플가게에서 일하면서 ‘일’을 배웠다. 한국에 들어올 때 이미 우박설탕 수입 계약을 마쳤고 가게 자리를 알아보고 계약하는 것도 일사천리였다. 장연우에게 뜬금없이 물었던 날로부터 딱 1년 반 만에, 김태성은 까페를 차렸다. 그러고 보면 늘 ‘설마’라는 놈의 뒤통수를 치는 게 취미이자 특기인 놈이라는 걸, 장연우는 알면서도 매번 새삼스러웠다. 오픈식이랄 것도 없었지만 인테리어 공사를 끝내고 개업만 앞둔 카페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으면서 김태성이 말했다. 왜 안 물어봐? 장연우는 단무지를 깨물며 뭘 묻냐고 되물었고 김태성은 젓가락에 짜장면 면발을 휘휘 감으며 말했다. 갑자기 무슨 카페냐고 안 물어보냐? 장연우는 그런가하고 잠깐 제 그릇을 들여다보다가, 한 입만 베어 문 단무지를 서너개나 찾고 실의에 빠졌다. 차릴만 하니까 차렸겠지. 시무룩해진 장연우가 그렇게 대답했을 때 김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건성과 짜증은 언제나 대화의 기본이었다. 적어도 둘 사이는 그랬다.
분명 카페가 처음 생기던 때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누가 발을 툭툭 차서 눈을 떴다. 언제부터였는지 장연우는 고개를 처박고 자고 있었다. 아이고, 목 디스크 올 것 같아. 그의 발을 찬 것은 태성이었다. 카페는 언제 그랬냐는 듯 텅 비어 있었고 유리 너머는 깜깜했다. 사람들이 형성했던 더운 공기가 식으면서 문득 장연우는 목덜미에서 서늘함을 느꼈다. 아마 그냥 잠들었다면 김태성은 그를 놓고 카페 문을 잠가 버린 뒤 혼자 가버렸을 것이다.
“이거 여기다 붙일까? 어때? 맘에 드냐.”
장연우는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스트레칭 하다가 테이블 위에 펼쳐놓은 사진 몇 장을 들어 튀어 나온 기둥 빈 틈새에 올려놨다. 김태성은 가타부타 말도 안 하고 코트를 입으며 나갈 채비를 했다. 장연우는 그걸 오케이로 받아 들였다. 그것은 포도밭 사진이었다. 사막같이 척박한 땅에 수천그루의 포도만이 넝쿨째 자라고 있었다. 대충 붙일 자리에 사진을 끼워두고 장연우는 잽싸게 가방을 집어 들었다. 공항에서 내려 공항철도를 타고 곧바로 들린 곳이 이곳이었던 터라 그는 아직도 여행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기사 저놈의 새끼는 인생이 여행이지. 김태성은 키를 찾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영원한 떠돌이를 자처하는 셀러리맨. 말에 어폐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김태성은 장연우가 허겁지겁 문밖으로 나올 때 일부러 그 몸통에 부딪히게 문을 빠르게 닫았다. 정강이뼈를 부딪친 연우가 고통스러워하는 사이 김태성은 문을 잠갔다. 밤 11시다. 새벽까지도 영업하는 홍대 쪽 카페와 달리 조용한 편인 상수역 주택가에 위치한 ‘헬리오스’는 일찍 닫는 편이었다. 태성이 코트 주머니에 양손을 넣고 걸었다. 옆에 세워둔 차를 타고 15분만 가면 태성이 사는 집이었다. 그 뒤를 연우가 부지런히 따라갔다.
“뜨듯한 거 먹고 싶다. 오뎅 먹고 갈래?”
그 말에 김태성이 휙 하니 뒤를 돌아봤다.
“날 왜 따라와?”
“왜라니, 나 태워다 줘야지.”
“내가 왜?”
“내가 이 짐을 지고 어떻게 전철을 타냐. 차도 끊겼단 말야.”
연우는 어깨를 늘어뜨리며 무거운 배낭을 어필했다. 그 꼴을 보더니 갑자기 김태성이 짧게 소릴 질렀다.
“아 그러니까 여긴 왜 기어 오냐고!”
“한국 와서 첫 날에 얼굴 안 비치면 네가 날 살려두겠냐!”
“그런 새끼가 한 달 동안 연락을 안 하니? 뒤지지 그래?”
“그러니까 오늘 기어와서 미안하다고 하잖아! 잘못했습니다, 김태성님. 부디 제 어깨와 다리만은 살려 주십시오.”
같이 언성을 높이던 장연우가 별안간 무릎을 꿇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마치 화를 내는 것처럼 들렸지만, 그는 쩌렁쩌렁하게 사죄하며 무릎을 꿇었다. 그 값싼 무릎을 보며 기가 찬 김태성이 코웃음을 쳤다. 아, 장연우 진짜 짜증난다. 김태성은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서른 넘어 아저씨 다 되니 그 짜증스러움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문제는 장연우가 김태성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또 김태성은 아 짜증나 하면서 눈가를 찡그리고, 그 바람에 웃고 마는 것이다. 웃으면 게임 끝이다. 장연우는 잽싸게 일어났다. 배낭 때문에 고꾸라질 뻔 했지만 용케 벌떡 일어나는 걸 보니 과연 체력 하나는 좋다. 김태성은 다시 몸을 돌려 앞으로 나갔다. 부지런하게 따라 잡은 장연우가 옆에서 히죽거렸다.
“야, 너 풀렸지? 내 무릎에 감동받았지?”
“꺼져. 그딴 값싼 무릎에 누가 감동을 받냐. 고등학교때 이미 단물 다 빠졌거든?”
“야, 너 눈에 물기 비치는 거 다 봤거든?”
“닥치고 차에 짐이나 실어, 이 푼수새끼야.”
“진짜 오뎅 안 먹을 거야?”
“동네로 갈 거야.”
장연우가 신난다는 얼굴로 차문을 열다 말고 다급하게 김태성을 불렀다.
“야, 솔티드 핫초코로 해.”
김태성은 대꾸도 안 하고 먼저 차에 탔다. 짐을 실고 운전석과 조수석에 올라 탄 뒤, 두 사람은 한 차례 더 언성을 높였지만-‘차에 쓰레기 버리지 말랬지!!’- 차는 조용히 화려한 거리로 나아갔다. 17살에 만나 34살을 먹도록 질기게 이어진 두 사람은 이내 낄낄거리다가 싸우기를 반복하고 노점에서 오뎅을 사먹었다. 질리도록 평범한 날이었다.
***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일 년에 한 두 번쯤은 반드시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에 있다. 20대때에는 거하게 술 약속이나 잡지 않으면 각자 살기 바빴던 학창시절 친구들은 30줄을 넘기면서부터 결혼식장에서, 아니면 장례식장에서 꼬박꼬박 보게 되었다. 연락을 안 하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만나다보면 자기와 똑같았던 친구들이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아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 중 제일 싫은 것은 돌잔치였다. 이미 결혼한 놈들은 쌍쌍으로 참석하고 여자친구가 있는 놈들도 결혼 생각이 있으면 만나는 사람을 데려와 인사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김태성은 돌잔치에 가는 것이 제일 싫었다. 남자들끼리 만나 술이라도 한 잔 하면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느니, 조금이라도 늦게 하는 게 제일이라며 부러워하는 놈들이 옆에 부인이 있으면 갑자기 세상에 둘도 없는 결혼예찬론자가 되어서 결혼이 가져오는 장점들을 랩처럼 줄줄 외며 아직 결혼하지 않은 독신자들을 핍박한다. 그것은 일종의 박해다. 그런 장단에 맞춰서 제수씨들이 자기 친구를 소개시켜주겠다고 나서면 그것도 곤란하다. 전 결혼 생각 없는데요. 이렇게 말하면 모두 ‘이 철없는 놈’하는 시선으로 그를 쳐다본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돌잔치는 따로 봉투를 보내면서 어떻게든 자리를 피하는데 문제는 장연우였다.
“야, 나 혼자 가면 완전 사자 앞의 가젤이잖아!”
결혼한 것들이 날 물고 뜯고 맛보고 삼키고 할텐데 날 어떻게 적진에 혼자 보낼 수가 있어! 김태성은 아침 일찍 새벽같이 전화 온 장연우의 목소리를 듣다가 아직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가젤은 목이 길고 넌 짧…
“제발, 제발 같이 가줘라. 친구야, 새끼야. 내가 다음에 네 소원 하나 들어 줄게. 난 지금 네가 나랑 같이 형석이네 돌잔치 가는 게 소원이란다.”
소원 한 번 경박하다. 김태성은 열심히 그를 비난했지만, 장연우는 빌고 또 빌었고, 결국 둘은 나란히 고등학교 동창인 형석의 둘째 돌잔치에 참석하게 되었다.
“태성씨는 어쩜 그렇게 동안이에요? 우리 그이는 점점 살만 찌고 진짜 아저씨 같아지는데, 태성씨는 피부도 너무 좋고 너무 세련됐다.”
“그러니까. 진짜 총각이라 다른가보다.”
김태성은 뷔페에 들어오면서부터 웃는 얼굴을 걸어놓고 마치 표정이 그거 하나뿐인 사람처럼 마냥 웃고 있었다. 예민하고 괴팍한 성정이지만 남의 잔칫집을 망칠 수 없다는 의외의 도덕관념이 투철한 김태성은 이런 기념일 행사에 오면 늘 그냥 웃고 있었다. 자연히 친구 놈의 부인들은 김태성을 ‘매너 좋고 성격도 좋고 잘생긴 남편 친구’로 대했고, 그럴 때면 그 옆에 앉은 친구 놈들은 김태성의 이중성에 대해 들고 일어나려 했지만 부인들에게 발언권을 빼앗겨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우,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 형석 씨는 벌써 둘째가 돌이고 첫째는 유치원 다니잖아. 우리애도 그렇고. 남자나이 34살이면 마냥 안심할 때는 아니에요, 나중에는 너무 늦는다니까. 이렇게 미남인데 왜 여자가 없을까.”
“태성 씨가 너무 일밖에 모르나보다. 요즘 카페가 대세라던데 장사 잘되죠? 돈이 암만 좋아도 이제 벌어다 쓸 가족이 있어야지.”
“연우씨도 아직 미혼이죠? 어머 왜들 그래, 왜들. 너무 아깝다.”
김태성은 앞에 놓인 새우 머리를 포크로 찍어 분해하면서 하하하 웃었다. 장연우는 어디 갔을까. 아마 튀김코너 앞에서 죽치고 있을 것이다. 접시에 담기도 전에 낼름낼름 집어먹다가 직원한테 저지당해서 곤란해하고 있을 것이다. 나를 가젤로 만들고 저만 빠져나가다니, 죽여 버려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김태성은 경련이 나기 직전인 뺨을 문질렀다.
“근데 꼭 태성 씨랑 연우 씨는 같이 오네. 총각동맹이에요?”
아기를 안고 있는 정우의 부인이 물었다. 그제야 틈을 찾은 듯 그 옆에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던 정우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원래 학교 다닐 때부터 장연우랑 김태성 이놈 둘이 맨날 붙어 다니고 그랬어. 얘네 삼년 내내 같은 반 이었다니까. 장연우 찾으려면 김태성 있는 곳 찾으면 되고, 김태성 찾으려면 장연우 있는 곳 찾으면 되고.”
“어머, 그래? 원래 절친이었구나~”
“얘네 둘은 진짜 유명했어요. 처음엔 사이가 안 좋기로 유명했는데, 나중엔 하도 붙어 다녀서 그냥 세트로 묶었다니까요. 원수 둘이 친구 먹은 거에요.”
김태성은 그저 하하하 웃으며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넘겨들었다. 처음이라는 말은 조금 이상하다. 그러니까 장연우와 김태성의 이 지겨운 인연은 ‘처음’이라는 것을 특정하기에는 너무 모호했다.
***
반 배정을 받기 전부터 장연우는 김태성을 알고 있었다. 가까운 중학교를 다녀서 ‘우성중 전교 1등 김태성’하면 인근 애들은 다 알았다. 공부를 잘 해서 유명하기도 했지만, 모난 성격으로 더 유명한 탓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암묵적으로 그를 ‘개태성’이라고 불렀다. 그런가하면 김태성은 입학식 때 장연우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입학식은 한겨울의 운동장에서 이뤄졌는데, 모두들 입학 축사랍시고 고장 난 테이프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는 교장의 휑한 이마를 쳐다보며 추위와 지루함에 지쳐가고 있었다. 맨 앞줄에 서있던 김태성은 이미 딴 생각 중이었는데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저 우연히 눈을 돌렸을 때 운동장 건너편 담벼락에 무언가 움직이는 것을 봤다. 처음에는 고양이나 새 따위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점점 또렷하게 사람의 형체를 갖췄고 곧 주변에 서 있던 선생님이 귀를 잡고 끌고 오자 ‘그것’은 온전히 사람이 되었다. 와, 입학식 날 월담이라니 저 새끼도 앵간한 또라이구나. 김태성은 그렇게 생각했다. 웃긴 건 귀를 잡혀 끌려오던 장연우도 단상에 올라가 대표로 상을 받는 김태성을 보고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와, 쟤가 바로 개태성이구나. 이렇게 알음알음 알기만 하는 두 사람은 같은 반에 배정되었다. 처음 일주일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첫날 월담을 해서 단단히 찍히긴 했지만, 장연우는 성적도 중상위권이었고 사교성도 좋은, 굳이 따지자면 놀기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어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교실 앞 쪽에 앉아 제 자리에서 문제집만 들여다보던 김태성 역시 다른 애들과 말 섞을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둘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말 한 마디 나눌 일이 없었다. 그렇게 교실이라는 컵 안에서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던 장연우와 김태성이 드디어 얼굴을 마주한 역사적인 날은 학기가 시작되고 일주일하고도 정확히 삼일이 지난 뒤였다. 김태성은 배치고사 성적으로 담임의 편애를 받아 뽑힌 임시반장이었다. 방과 후 보충학습 신청서를 걷는 마지막 날이었다. 소위 논다는 놈들마저 건성으로라도 모두 제출을 했는데 딱 한 명의 이름이 비었다. 장연우. 때는 점심시간, 식당의 길고 긴 줄을 뚫고 드디어 배식을 받아 막 한 수저를 뜨려던 장연우 옆에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식당에 커튼이라도 쳤나 하고 고개를 드는데 마주친 것은 김태성의 냉하디 냉한 눈이었다. 앞에 자리가 비어 있었기 때문에 처음엔 거기 앉으려는 줄 알고 신경쓰지 않았으나 곧 그 두 손이 비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연우가 수저를 문 채 김태성을 올려다 봤다.
“반장, 나한테 할 말 있어?”
“방과 후 보충학습 신청서.”
“어?”
“방과 후, 보충학습, 신청서.”
그러면서 태성은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장연우는 눈을 깜빡이며 그 빈손을 쳐다보다가, 다시 고갤 들었다. 이 새끼는 말 할 거면 앞에나 앉지 서 있어가지고는 올려다 봐야해, 기분 나쁘게.
“아, 나 그거 안 할 건데. 그래서 안 낸 거야.”
“무조건 내라고 하셨어.”
“안 할 건데 뭐 하러 내.”
“네가 수업을 듣든, 나가서 별 지랄을 다 하든 나는 관심 없고, 그 신청서만 내라고.”
장연우가 숟가락을 내려 놨다. 주변에서 밥을 먹던 학생들이 조금씩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김태성은 그런 수군거림은 익숙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무시하는 것인지 여전히 빈손을 장연우에게 펼쳐 보였다.
“너 말 곱게 한다?”
“밥 먹을 시간 있으면 뭐라도 적어 내. 사람 짜증나게 하지 말고.”
오늘 끝나기 전까지 제출해. 태성은 그렇게 말하고 가버렸다. 수군거림은 짧게 끝났고 연우는 곧 다시 친구들과 떠들며 밥을 먹었다. 그렇게 조용히 넘어가나 했던 소동은 그러나 인터미션을 거쳐 본격적인 2막을 올렸다. 5교시가 끝나고 난 뒤 교과서를 정리하던 김태성의 책상 옆으로 장연우가 다가왔다.
“야, 반장, 네가 말 하는 게 이거 맞지?”
장연우 손에 들린 것은 갱지로 복사된 신청서였다. 김태성은 고갤 끄덕이며 그걸 받으려고 손을 뻗었다. 그러나 장연우는 김태성이 그 신청서를 확인하자마자 빠르게 신청서를 쫙쫙 찢어버렸다. 시끄럽게 떠들던 같은 반 친구들이 일시적으로 조용해졌다. 장연우는 웃고 있었는데 갈기 갈기 찢은 종이조각을 김태성의 교과서 위에 올려놨다.
“이제 됐냐? 이 개 싸가지 새끼야.”
그 다음이 어찌 됐느냐. 놀랍게도 전교 1등 김태성은 벌떡 일어나 장연우를 들이 받았다. 교실 앞쪽에서 벌어진 난투극은 요란했고 주변에서 뜯어 말려도 도무지 끝나지 않던 싸움은 6교시 시작종과 함께 들어온 수학선생의 고함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끝이 났다. 그날의 싸움을 두고 김태성과 장연우는 각자 자기가 이기고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진실은 언덕 너머로 넘어가 버렸다.
싸움 소식을 들은 담임은 두 사람을 불러다 놓고 왜 싸웠는지 물었지만 둘 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화가 난 담임은 둘이 함께 한 달 동안 화장실을 청소하게 시켰다. 그것도 모자라 둘을 같은 책상에 앉힘으로써 둘 모두에게 심리적인 고통을 주는데 성공했다. 둘은 짝꿍으로 앉아 있는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책상 아래에 우연히 발이라도 닿으면 그때부턴 조용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소리 없이 허벅지를 주먹으로 내려친다든지, 발을 밟는다든지, 샤프심을 모조리 부숴버린다든지 하는 유치하고 집요한 전쟁은 계속 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람취급 안 하는 장연우와 김태성의 나쁜 사이는 전교에 소문이 날 정도로 유명해 졌다. 오히려 화장실 청소를 할 때가 평화로웠다. 각자 치울 것만 치우고 쌩하니 가버리는 나날이 계속 되었다. 일 할 것을 나누기 위해 최소한의 대화만 했는데, 장연우가 쓰레기를 버리고 김태성이 대걸레로 닦기로 했다. 한 달 동안 하루 종일 붙어 앉아 있고 같이 청소를 했지만 둘의 사이는 나아질 줄을 몰랐다.
화장실 청소라는 형벌이 끝나는 마지막 날이었다. 장연우가 그나마 가벼운 기분으로 화장실 청소를 하러 왔을 때 김태성은 먼저 대걸레를 빨고 있었다. 장연우는 코를 막은 채 각 칸에 있는쓰레기를 한데 모아 비닐봉투에 우겨 넣었고 김태성이 바닥 청소를 위해 뿌리는 물이 바짓단에 튀어서 짜증이 날 대로 난 상태였다. 한데 모은 쓰레기봉투를 들고 1층 학교 뒤편에 내다 버리면 한 달 간의 형벌도 끝이었다. 그 생각을 하며 화를 참은 장연우가 막 화장실을 나서려는데 김태성이 수도 앞에 서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김태성의 어깨 너머로 물이 튀어 올랐다. 수도가 터진 모양이었다. 화장실에 난데없이 분수같이 물이 솟았다. 김태성은 두 손으로 틀어 막고 있었는데 튀는 물을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장연우는 참기름이라도 마신 양 고소해져서 웃으면서 화장실을 나섰다. 발걸음도 가볍게 쓰레기를 버리러 나와 쓰레기 집하장에 던져 놓고 손을 털었다. 이제 집에 가야지. 장연우는 벽돌건물을 올려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개싸가지 새끼, 쌤통이다. 고생 좀 하겠네. 그는 교복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교문으로 걸어갔다. 아직 쌀쌀한 바람이 목을 스쳤다. 무의식 중에 목을 움츠리던 장연우가 문득 뒤를 돌아 봤다. 아직 건물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고 멀리 보이는 화장실 창문에는 불이 켜 있었다. 그럼 그렇지, 그게 쉽게 해결 될 리가 없지. 장연우는 다시 교문으로 걷다가 다시 멈췄다가 다시 걸었다. 그런 새끼는 고생 좀 해야 돼. 바람이 좀 차지만, 어쩔 수 없지. 장연우는 부지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장연우는 다시 화장실로 돌아왔다. 김태성은 몹시 피곤한 얼굴로 수도 옆에 물러 서있다가 갑자기 들어온 사람에 깜짝 놀란 듯 장연우를 쳐다봤다. 상대가 장연우인 것을 알자 금방 표정이 없어지긴 했지만. 장연우는 복도에 가방과 교복재킷을 벗어 놓고 셔츠의 소매를 걷었다. 그리고 수도 앞에서 꼭지를 쥐어틀었다. 완전히 풀렸는지 계속 헛돌기만 했다. 뒤에서 떨떠름한 김태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지금 뭐하냐.”
“뭐 하는 것처럼 보이냐. 아오, 차가워.”
곧 김태성이 옆에 붙었다. 가까이서 보니 꼴이 가관이었다. 홀딱 젖은 김태성과 슬슬 그렇게 되가고 있는 장연우는 수도 앞에서 한참을 씨름했다. 거의 한 시간 넘는 시간 동안 고생을 한 결과, 경비실에서 청테이프를 빌려와 수도를 완전히 감싸놓는 것이었다. 청테이프 하나를 거의 다 써서 드디어 물이 새어나오지 않게 되었을 때 홀딱 젖은 장연우와 김태성은 지쳐서 멍하게 물이 똑똑 떨어지는 수도꼭지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미 창밖은 어두웠고 더럽게 추웠다. 화장실의 휴지를 끊어서 얼굴과 옷의 물기를 대충이라도 닦으려는 장연우에게 김태성이 볼멘소리를 했다.
“혼자도 할 수 있었어.”
“어련히 그러시겠죠, 네네.”
“진짜거든?”
“그래, 너 졸라 똑똑하다.”
“처음으로 맞는 소리 한다.”
“아오, 미친놈.”
장연우가 혀를 찼다. 둘은 나란히 학교를 나왔다.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있는 건물의 가장 위층을 빼면 모두 깜깜했다. 아오 씨발 추워. 장연우가 비명처럼 발을 동동 굴렀다. 김태성은 창백해졌다. 아직 겨울의 찬 기가 남은 저녁은 가차없이 추웠고 둘은 비명을 삼키며 운동장을 가로 질렀다. 교문을 나서고 나서 장연우가 ‘야, 나 간다.’라고 말을 던지고 오른쪽으로 내려 가려는데 김태성이 그를 불렀다.
“야.”
“왜.”
“오뎅먹을래?”
장연우가 몸을 잔뜩 움츠린 데 김태성을 쳐다봤다.
“너랑??”
“싫으면 따로 앉아 처먹든지.”
“아이고 말 하는 거 봐라. 안 먹어, 새끼야.”
연우가 그를 무시하고 가려하자 태성이 좀 더 크게 외쳤다.
“빚지는 거 싫다고!!”
“빚은 지랄.”
“먹으러 가, 빨리.”
김태성은 완강했고 너무 추운데 길에서 실랑이 하기 싫었던 장연우는 결국 김태성을 따라갔다. 그리고 정말 다른 테이블에 앉아 각자 떡볶이랑 오뎅을 먹었다. 분식집 아줌마는 ‘니들 싸웠니?’하고 웃으며 지나갔고 가끔식 눈이 마주쳤지만 정말 끝까지 다른 테이블에서 오뎅 국물을 마셨다. 몸도 어느 정도 마르고 속이 따뜻해 진 뒤에 둘은 뒤도 안 보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 다음날부터 장연우와 김태성은 자연스럽게 한 마디씩 섞게 되었고 같이 앉은 자리 때문에 대부분의 수행평가를 같이 하게 되면서 벌 청소가 아니어도 계속 붙어 있게 되었다. 싸울 때는 요란하게 소문이 났는데 싸우지 않게 된 것은 소문이 나지 않았다. 다만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학교에 들어온 것처럼, 장연우와 김태성은 한 세트로 불리게 되었다.
***
언제부터 친구 타이틀을 달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김태성은 앞에 높게 쌓여가는 접시들을 보면서 열심히 헤아려 봤지만 도통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옆에서 고갤 박고 새우를 까먹고 있는 장연우를 쳐다봤다. 새우를 입에 문 채 장연우가 눈을 치뜨며 ‘왜?’라는 얼굴로 쳐다봤지만 김태성은 고개를 저으며 ‘처먹어라, 처먹어.’라고 대답했다. 술이 한 바퀴 돈 테이블은 왁자지껄했다. 각자 직장 상사를 욕하고, 결혼생활의 안정감과 구속에 대해 말하고, 아이에게 어떤 이유식이 좋은지 토론하고 있었다. 직장을 다녀 본 적이 없는 김태성과 결혼하지 않은 장연우가 낄 수 있는 대화는 아니었다. 지루해 죽겠네. 김태성은 앞에 놓인 콜라를 마시면서 생각했다. 오늘 가게에는 사람이 많이 왔을까. 깜빡깜빡하는 혜미가 또 실수는 하지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오늘은 태성이 자리를 비워서 와플을 팔 수 없다. 와플 때문에 가게로 오는 사람들은 분명히 투덜거릴 것이다. 시즌메뉴인 솔티드 핫초코나 주구장창 팔아. 태성은 돌잔치에 오기 전에 그렇게 말해뒀다.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 테이블의 대화 주제가 다시 태성과 연우에게로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너 이번엔 또 어디 갔다 왔다고 했지?”
“칠레, 페루, 에콰도르.”
“어머어머, 너무 낭만적이다.”
“아, 역시 제수씨가 뭘 좀 아시네요.”
결혼 날짜를 받아뒀다는 병규의 여자친구가 감탄하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연우가 장단을 맞췄다. 병규가 혀를 찼다.
“낭만이 문제냐. 얘 회사도 그만 뒀다니까.”
“장연우 역마살이 하루 이틀이냐. 어디 붙어 있는 꼴을 못 봐요. 그래도 용케 계속 일을 하긴 하는 걸 보면 참 신기해. 이제 뭐하게?”
장연우는 음식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내일 면접 보러 가. 대식이 감탄했다. 와 진짜 용한 새끼, 이 취업난에 맨날 놀다 오면 일 할 곳도 있고. 처음 모임에 와서 이 상황이 낯선 병규의 여자친구가 계속 물었다.
“연우 씨 능력이 되게 좋은가 봐요.”
“얘 회계사에요, 회계사.”
“네? 정말요? 되게 의외다. 공부 진짜 잘하셨나보다.”
“공부는 태성이가 제일 잘 했지. 그치? 얘가 입학할 때부터 우리학교 전교1등이었는데 뭘.”
“와, 대박이다. 그럼 태성 씨는 전공이 뭐에요?”
병규의 여자친구가 순진하게 물었을 때 테이블에 아주 짧은 침묵이 지나갔다.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병규와 정우가 눈이 마주쳤고 대식이는 헛기침을 했다. 장연우가 뭔가 말하려는 찰나, 김태성이 여전히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전 대학 못 갔어요.”
“그럼 그때부터 쭉 카페가 꿈이셔서 진학 안 하신거에요? 멋지다…”
“아뇨, 성적이 안 돼서 못 갔어요. 카페는 아버지가 뭐라도 해보라고 차려주신 거에요.”
병규의 여자친구는 그제야 조금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약간 울상이 되었다. 착한 것 같은데 눈치가 없네. 장연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요란하게 일어났다.
“야, 아이스크림 먹을래?”
“아니 난 별로. 뷔페 아이스크림 싸구려라 맛없어.”
“그냥 처먹어, 인마. 일어나, 일어나.”
생각이 없다는 김태성을 억지로 끌고 일어나 아이스크림 기계 앞에 줄을 선 아이들 뒤에 가서 섰다. 장연우는 뒤를 흘깃 보고 팔꿈치로 김태성을 툭 쳤다.
“야, 그냥 몰라서 그런 건데 대충 대답하면 돼지.”
“내가 틀린 말 했어?”
김태성이 짜증을 냈다. 낮은 소리로 짧게 말해서 주변 사람은 거의 듣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고, 이 새끼 많이 참고 있네. 김태성이 덧붙였다. 성적 바닥 쳐서 대학 못 간 것도 사실이고, 아버지가 카페 차려준 것도 사실이잖아. 그걸 굳이 뭐라고 포장해야 되는데? 그들의 허리만큼 차는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받아가고 아이스크림 기계 앞에 덜렁 그 둘 뿐이었다. 태성이 그릇을 집어 들었다. 그는 잠시 그렇게 한참 서 있었다. 옆에 서 있던 장연우가 그 모습을 보다가 한숨을 쉬며 그 손에 든 그릇을 뺏어 들었다.
“뭐 먹을 건데.”
태성은 한참이나 더 버티다가 퉁명스레 말했다.
“바닐라.”
장연우가 레버를 내리고 아이스크림을 담았다. 김태성은 팔짱을 끼고 그걸 지켜봤다. 어쩐지 내내 웃는 얼굴이다 싶더니 치솟는 스트레스를 억지로 누르고 있는 게 맞았다. 연우가 그릇을 건네주자 혼자 쌩하니 그릇을 들고 가버렸다. 장연우는 샐쭉한 그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자기 그릇을 들고 아이스크림을 담았다. 병신, 숟가락은 안 가져갔네. 장연우는 한숨을 쉬며 숟가락 두 개를 챙겼다.
전교 1등 김태성이 대학을 못 간 것은 그가 아이스크림 기계 앞에서 한참 서 있는 이유와 같았다. 고등학교 2학년의 겨울방학은 김태성에게, 어쩌면 장연우에게도 비극이었다. 한 번도 입 밖으로 내어 말한 적은 없었지만.
***
우성중 전교 1등 김태성은 고등학교 와서도 공부를 잘 했다. 왜 특목고를 가지 않고 일반계열 고등학교에 진학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에 대해 태성은 연우에게 ‘외고는 멀어.’라고 말한 바 있다. 멀다는 이유로 외고를 안 가다니, 정말 성격대로다. 장연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튼 김태성은 1학년 때부터 2학년까지 한 번도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머리가 좋기도 했지만 팽팽 놀면서 점수를 받는 것도 아니었다. 하고자 하는 일은 끝장을 봤고, 한번 파면 끝까지 했다. 그러니 그 놈의 신청서 종이쪼가리를 내라고 그 성질을 부렸으리라. 그래서 그 성격머리, 좋게 말하면 예민하고 나쁘게 말하면 싸가지 없음의 경계에 걸친 성격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은 모두 태성을 예뻐했다. 내년엔 무조건 서울대 한 명 깔고 간다는 말이 돌 정도로 누구도 김태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태성의 부모님 역시 그랬다. 아버지는 저명한 법학 교수였고 어머니는 도예가였다. 집도 잘 살았으니 뒷바라지야 문제없었다. 1학년 입학 배치고사 끝에 장래희망을 적는 란이 있었는데, 대부분 아예 쓰지도 않는 칸에 김태성은 당당하게 ‘판사’라고 기입했다. 장연우는 ‘한량’이라고 적었다가 담임과 면담을 했었다. 김태성이 1등을 할 때마다 장연우는 독한 놈이라고 욕했고 김태성은 그걸 칭찬으로 들었다. 모든 것은 순조롭고 평화로웠다.
비극은 새싹처럼 갑자기 머릴 내밀었다. 2학년 겨울방학을 고작 2주 남겨 놓은 어느 날, 정확히는 수요일에, 태성의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다가 쓰러져 있는 것을 제자가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겼다고 했다. 김태성은 수업 도중에 조퇴를 하고 병원으로 가야 했다. 장연우가 교문까지 따라 나왔지만 김태성은 침착하게 ‘땡땡이 칠 궁리 하지 말고 교실로 돌아가.’라고 하고 택시를 잡아타고 가버렸다. 장연우는 투덜거리며 택시가 출발하고 나서 교실로 돌아갔다. 야자 전에는 돌아오려나. 문제집은 다 두고 가방만 가볍게 들고 갔으니 아마 책 가지러 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김태성은 야자가 끝나도록 오지 않았다. 다음 날에도, 다음 다음날에도. 유례없는 결석에 반 전체가 의아해했다. 삼 일째 되던 날 장연우는 야자를 빠지고 병원에 찾아갔다. 핸드폰에 전화도 해보고 문자도 보내봤지만 답이 없던 터라 귓등으로 들었던 병원 이름 하나만 알고 무작정 찾아갔다. 병원을 다 돌고 돌아 찾은 김태성은 중환자실 앞에 앉아 있었다. 사복을 입은 채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은 모습이 꼭 잠든 것 같았다. 장연우는 슬그머니 그 옆에 앉았다. 김태성은 눈을 뜨지 않았다. 장연우는 잠자코 기다리다가 ‘야, 자?’하고 물었고 눈을 뜬 김태성은 바로 옆에 앉은 장연우를 보고 눈을 깜빡거렸다.
“넌 여기 왜 왔어.”
감기라도 걸린 것처럼 목소리가 갈라진 김태성이 또 퉁명스러워졌다.
“네가 연락을 씹었잖아. 학교도 안 오고.”
그 말을 듣고 김태성이 고갤 두리번거렸다. 내 핸드폰 어디 갔지? 찾는 폼이 영 모르는 눈치였다. 곧 아 모르겠다 하고 다시 벽에 등을 기댔다. 두 친구는 나란히 앉아 있었다. 중환자실 앞엔 피곤한 얼굴의 사람들이 잔뜩 앉아 있었다. 장연우는 문득 그들의 지친 얼굴이 김태성의 얼굴에서도 얼핏 비치는 것 같아 두려워졌다.
“어머니는 어떠셔?”
김태성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말을 했다.
“내 물건은?”
“응?”
“내 책 하나도 안 가져 왔어?”
“어어, 안 가져 왔는데.”
그럼 뭐 하러 왔어. 김태성이 그렇게 말하면 장연우를 보는데, 그때의 장연우가 느낀 감정은 정확히 설명 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어둡고 고요한 중환자실 앞 복도의 긴 형광등들과 푸석해진 김태성의 얼굴, 건조하게 묻는 목소리 따위가 한 번에 장연우를 덮쳤다. 두렵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으며 안쓰럽다가도 끝에는 서운해 졌다. 여기까지 와서 무슨 책이야. 한 마디 쏘아붙이려다 관두었다. 더 물어볼 것들도 마땅치 않아서 둘은 마냥 앉아 있었다. 장연우가 일어날 채비를 했다. 얼굴 봤으니까 난 간다. 김태성이 시계를 보더니 장연우를 붙잡았다.
“조금 있으면 면회시간이야. 엄마 보고 가.”
그래도 되는 걸까. 물어볼 사람도 없어서 그냥 장연우는 다시 앉았다. 면회시간이 되었을 때 손을 깨끗이 소독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태성의 어머니는 중환자실 중에서도 의료진 외에는 출입할 수 없는 독실에 계셨다. 유리창 밖에서 태성과 연우가 멀뚱히 서있었다. 조도를 낮춘 방안 침대에 태성의 어머니가 누워 계셨다. 전에 길에서 태성과 함께 가다가 만난 적이 있었다. 따뜻하고 조용한 미인이었다.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는데 어머니는 너무 수척해지셔서 다시 길에서 만난다면 못 알아보고 지나칠 것 같았다. 5분동안 그렇게 유리 밖에서 서있다가 둘은 다시 복도로 나왔다.
“정문까지 데려다 주고 싶지만, 자리를 못 비울 것 같아.”
가시 없는 말투는 차라리 아팠다. 장연우는 그냥 고개만 재빠르게 끄덕이고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그래도 김태성은 복도 끝까지 같이 걸어 왔다. 그럼 잘 가. 일반 병동으로 이어지는 경계선에 멈춰서서 김태성이 손을 흔들었다.
“야자 땡땡이 칠 생각하지 말고.”
“안 한다고, 인마.”
그때 그날 처음으로 김태성이 살짝 웃었다. 아주 살짝 힘없이. 그리고 다시 중환자실로 돌아갔다. 나중에야 듣게 된 이야기지만, 태성의 어머니는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머릿속에 큼직한 종양이 자랐는데, 그것 때문에 핏줄이 눌렸고 결국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 버린 것이다. 어머니는 계속해서 혼수상태였다. 의식은 간헐적으로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했지만 의사소통을 할 수준도 못 되었다. 김태성은 방학동안 보충학습을 듣지 않았다. 아버지와 교대로 병실을 지키기는 했지만 아버지는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거의 하루 종일 어머니 옆에 붙어 있는 건 태성이었다. 장연우는 자주 병원으로 찾아갔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겼지만 여전히 의식은 없었다. 어머니 옆에 앉아서 꼬마주스를 마시며 두 사람은 별다른 말도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있었던 시덥잖은 일 두어 가지를 말해주고 나면 침묵이 흘렀다. 그래도 장연우는 꼬박꼬박 찾아갔다. 김태성은 좀 더 예민하고 까칠해졌다. 갑자기 짜증을 내기도 하고 엉뚱한 얘기를 하기도 했다. 귀찮으니까 오지 마. 그런 소리도 했지만 장연우는 귓등으로 넘겨들었다. 겨울 내내 장연우도 병원에서 살다 시피 했다. 가습기 아래에서 귤을 까먹고 창 밖의 시든 플라타너스들을 구경하면서 김태성과 함께 병실을 지켰다.
태성의 어머니는 새 봄을 맞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갑작스런 장례식엔 사람이 많았다. 거의 부모님쪽 사람들이었다. 반 친구들이 문상을 오긴 했지만, 장연우만이 삼일 내내 장례식장에 있었다. 연우의 부모님도 문상을 오셨다. 김태성은 묵묵히 인사를 받았다. 사람이 거의 오지 않는 새벽 두시 쯤, 장연우는 기둥 옆에 쭈그리고 앉아 졸다가 문득 향 앞에 모셔 놓은 영정사진을 보고 참으로 태성과 닮은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김태성은 어머니 닮았네. 태성은 거의 자지도 먹지도 않았다. 계속 빈소를 지켰고 의젓하게 굴었다. 장연우는 그곳에서 계속 지냈지만,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김태성이랑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장연우는 빈소에 우두커니 서 있는 김태성을 보며 생각했다. 힘든 일을 겪을 때 옆에 있어 주어야 하는가, 혼자 놔둬야 하는 것인가. 어찌해야 하는지 답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답을 알려줄 사람은 정작 입을 닫고 있어서 장연우는 난감하게 기다릴 뿐이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장지로 가서 관을 하관하자마자 김태성이 쓰러졌다. 사람들에 의해 집으로 옮겨진 김태성은 포도당 링겔을 맞고 거의 이틀간 잠만 잤다. 그때는 봄방학 기간이었다. 봄도 아닌데 봄방학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성급하다. 아직은 겨울이었다.
개학하고나서야 장연우는 김태성을 다시 만났다. 고3 타이틀을 달게 된 첫 날이었다. 아직 수척한 얼굴이었지만 교문을 향해 걸어오는 얼굴은 평범했다. 만나자 마자 교복이 구겨졌다고 면박을 주는 것도 겨울이 오기 전의 김태성과 같아서 장연우는 안심했다. 반 친구들이 김태성을 둘러싸고 힘내라는 이야기를 하고 지나갔다. 김태성은 개의치 않았다. 수업종이 울리자 모두 우르르 몰려가 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1교시는 국어였다. 교과서를 펼치고 난 뒤에도 장연우는 자주 시선을 옆에 앉은-이것은 순전히 뽑기운이었다- 김태성 쪽으로 돌렸다. 그러다 이상한 것을 봤다. 분명히 페이지가 넘어갔는데도 김태성은 계속 같은 페이지만 보고 있었다. 피곤해서 조는 건가. 장연우는 다시 칠판과 김태성을 번갈아 봤다. 첨엔 조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김태성은 창백해지고 식은땀을 흘렸다. 1교시가 끝나고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장연우가 김태성의 팔을 붙잡았다.
“너 어디 아파?”
“아니.”
태성은 장연우를 보며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냐는 얼굴을 하는 바람에 장연우는 정말 한 순간 자기가 헛소리라도 한 줄 알았다. 그러나 여전히 태성의 이마엔 땀이 맺혀 있었고 얼굴은 창백했다. 김태성은 화장실을 갔다 온다고 했고 갔다 오자마자 바로 수업이 시작됐다. 2교시도 마찬가지였다. 김태성은 계속해서 굼떴고 페이지를 불안하게 넘겼고 필기도 거의 하지 않았다. 괜찮냐고 물을 때 마다 김태성은 짜증을 냈다. 그가 3교시를 마치자마자 화장실을 ‘또’ 간다고 했을 때, 장연우는 같이 짜증을 냈다. 휑하니 가버린 놈을 쫓아서 화장실을 가는데 화장실에 들어간다는 놈이 들어가자마자 변기통을 부여잡고 속을 게워냈다. 장연우는 다만 놀라서 괜찮냐고 물었는데, 들려오는 답이라고는 꺼지라는 말 뿐이어서 화장실 밖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수업 종이 울렸는데도 태성은 나오지 않았다. 어쩌지 싶어 두리번거리다가 연우는 다시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태성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정상이 아니다 싶었다. 그냥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으니까. 평소의 김태성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이니까.
“태성아 왜 그래? 괜찮아? 어디 아프냐? 병원 갈까?”
김태성은 반응이 느렸다. 다른 생각에 빠져있는 건지 넋이 나간건지, 장연우가 하는 말을 채 듣지 못한 것처럼 ‘뭐라고?’하며 되물었다. 연우는 그를 일으켜 세우며 다시 한 번 또박또박 물어봤다.
“괜찮아?”
억지로 일으켜진 태성의 어깨를 살짝 흔들었을 때, 갑자기 무엇인가 금이 갔다. 태성의 얼굴에, 그 마음에 금이 가는 소리를, 절대 들었을 리 없는 소리를 분명 그날의 장연우는 들은 것 같았다. 총기를 잃은 눈으로 태성이 갑자기 울었다. 장례식 때도 울지 않던 놈이었다. 당황해서 말을 잊은 사이 김태성이 울음 사이로 넋 나간 목소리로 말했다.
“책을 못 읽겠어.”
"뭐?"
"글씨가 안 보여서 책을 못 읽겠어."
눈 다쳤어? 라고 묻는 장연우는 곧 김태성과 눈이 마주쳤다. 착 가라앉은 눈은 정확하게 연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연우는 괜히 태성의 부어오르기 시작하는 눈가를 만져봤다. 이상은 없는데. 탈진하기 직전인 김태성이 더 이상 울 기력조차 잃자 장연우는 그를 업고 양호실로 갔다. 수업시간 도중에 나타난 학생들을 보고 양호선생님은 놀란 눈치였지만, 김태성의 상태를 보고 침대 하나를 내줬다. 넌 교실로 돌아가야지. 양호선생님이 장연우를 보고 말했지만 그는 고집을 부려 거기에 남았다. 김태성은 등을 돌리고 있었다. 우는 것도 지쳐버린 녀석은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리고 있었다. 등이 원래 이렇게 슬펐나. 마르긴 했지만 길쭉한 체형이어서 든든하다고 생각한 등이 이상하게 좁고 차가워보였다. 문득 장연우는 결정을 했다. 곁에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혼자 둬야 하는가. 그러나 어떻게 이 등을 혼자 둘 수 있단 말인가. 막말에 짜증도 잘 내지만 말 하지 않는 부분에 더 많은 여린 감정을 숨겨둔 놈을 어떻게 혼자 둔다고. 곁에 있어야겠다. 장연우는 그 등에 손을 뻗어 가만히 얹어놓았다. 언젠가 다 나을때까지 같이 있어주자. 결심을 전하면서.
태성의 증상은 난독증이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들었지만 연우는 대체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김태성의 상태는 날마다 달랐다. 상태가 좋으면 핸드폰 문자 정도는 읽을 수 있었지만 심할 때는 간판도 똑바로 읽지 못했다. 수업시간에 오로지 귀로 듣는 것만으로 공부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고3 1학기 중간고사에서 김태성은 42등을 했다. 모두가 충격 받았다. 천하의 김태성이 42등이라니. 그 다음 시험은 60등이었다. 그는 점점 뒤로 밀려났다. 김태성이 없는 자리마다 사람들이 모여 혀를 찼다. 너무 불쌍하다, 그렇게 똑똑했는데. 아무리 소리로 외워도 문제를 못 읽어서 못 풀면 끝이잖아. 천재의 비극이네. 정작 김태성은 조용했다. 대학입시에 맞춰서 돌아가는 고3 학교생활에서 그는 서서히 멀어져 갔다. 태성은 스스로 그런 현상들에 대해 ‘도태’라고 말했다. 그는 도태되어갔다. 장연우는 장연우대로 바빴다. 성격이 유한 부모님도 수능이 다가오자 전처럼 자유롭게 놔두시지 않아서 몹시 빡빡한 생활이 이어졌다. 가만히 앉아 노트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던 김태성이 생각났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나서는 아예 학교를 빠지기 시작했다. 장연우는 집요하게 김태성에게 연락했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 때까지 계속 문자를 보냈다. 고3답지 않게 입시 얘기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잡담이었다. 가끔은 '김태성' 이렇게 석자만 보낼 때도 있었다. 그냥 그렇게 보내고 싶었다. 처음엔 적었던 답장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늘어났다. 태성에게 신경 쓰면서도 연우는 공부도 놓지 않았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냐고 선생님들이 모두 놀랄 정도로, 중상위권이던 성적은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갔다. 꼭 김태성을 대신해서는 아니었지만, 그가 잘하고 좋아했던 것을 이렇게라도 보상해주고 싶었다.
찬바람이 불고 나서 장연우는 명문대 일차수시에 합격했다. 입시부담이 사라지자마자 장연우는 김태성부터 찾아갔다. 집에서 거의 밖으로 나오지 않는 그 옆에 붙어서 만화책도 보고 티비도 보고 음악도 들었다. 김태성의 방은 굉장히 휑했다. 책꽂이에 가득 들어있던 책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자취를 감췄다. 벽과 가구와 빈 책장들이 늘어서 있는 방은 뼈를 드러낼 정도로 마른 공룡이 연상되었다. 김태성은 그런 황폐함 속에 있었다. 장연우는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모두가 머릴 맞대고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고 있었던 10월의 마지막 주에 그는 김태성을 주동하여 여행을 떠났다. 김태성은 귀찮아했지만, 장연우가 끊임없이 처들어와서 여행을 가자고 수선을 떠는 바람에, 그리고 아들만큼이나 충격을 받았던 아버지 역시 여행을 다녀오는 게 좋겠다고 해서 등 떠밀려 떠나게 되었다. 그들은 강원도로 갔다. 새벽기차를 타고 정동진에 갔는데 날이 흐려서 일출은 볼 수 없었다. 그래도 뿌연 하늘이 밝아지는 것을 찬찬히 지켜봤다. 한창 추울 때라서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도 많이 없었다. 고등학생 둘이 내려와 회를 한 접시 사먹었으니 잘 논 셈이다. 집으로 돌아갈 기차표를 끊으려고 매표소 앞에 줄을 서 있는데 문득 장연우가 전광판을 보더니 말했다.
“우리 저 밑으로 한번 가볼까.”
아니라고 하거나, 부모님이 걱정하신다고 하면 되는데 김태성은 같이 전광판을 올려다보더니 순순히 ‘그래’라고 대답했다. 장연우는 단양행 열차표를 끊었다. 부모님이 별도로 허락하시지 않는 한 거기서부터는 가출이었다. 돈이 넉넉지 않았으니 많이 굶기도 하고 라면으로 때우기도 했다. 그래도 좋았다. 우리나라에도 볼 것이 참 많아. 어릴 때부터 어딘가로 떠나기를 좋아했던 장연우는 훌륭한 가이드였다. 이미 그때부터 그는 한 곳에 붙어있지를 못했다. 태성이 같이 떠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혼자 훌쩍 사라져버릴 일이 태산인 사람이었다.
가출 아닌 가출 끝, 일주일 만에 집에 돌아왔을 때 태성의 아버지는 별말씀 하지 않으셨다. 김태성도 부연 설명은 하지 않았다. 다만 그 뒤로 집 밖으로도 나와 산책을 시작했다는 것은 굉장한 발전이었다. 장연우는 자꾸 김태성을 데리고 떠났다. 더 많은 것을, 더 좋은 것을 보게 해주고 싶었다. 수능 날에도 둘은 서울에 있지 않았다. 태성이네 별장 거실을 차지하고 누워서 빈둥거리는데 김태성이 말했다.
“야.”
“왜.”
“고맙다고.”
“알아, 인마.”
“그러니까 이제 날 그만 데리고 다녀도 돼.”
네 생활을 찾아야지. 김태성이 그렇게 말했을 때 장연우는 서운했다. 삐졌다고 봐도 할 말이 없다. 아무튼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는 김태성 본인도 맘이 깨진 사금파리같으리라는 것을 왜 그때는 몰랐는지, 알 수가 없다.
“넌 내가 어디 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할거냐? 만세 부를거야?”
장연우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새로 앉을 의사까지 꼼꼼하게 산 김태성이 고갤 들었다.
“너?”
“그래, 나.”
김태성이 갑자기 장연우의 다리를 찰싹 때렸다. 갑자기 다리에 통증을 느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오전 11시. 그는 진지하게 말했다.
“연락하는 거 빼먹지 마. 진짜 죽는다.”
그렇게 이어진 인연이라는 것이, 사실 큰 기대도 품지 않았는데 34살 먹도록 죽 이어지는 걸 보니 사람 일은 정말 앞날을 알 수가 없다. 장연우는 김태성이 전화기 앞에서 팔짱을 낀 채 전화기를 노려보는 모습을 자주 상상했다. 그는 사람들이 전화기를 붙들고 쏟아내는 말이나 그것들이 연걸되는 선같은 것으로부터 도망치는데 전력을 다하는 남자였지만, 김태성에게만큼은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어딜 가든, 세계 어디에서든 전화를 하게 되었다.
“얘네는 결혼하기도 힘들 거야.”
술에 얼큰하게 취한 정우가 테이블에 팔을 기댄 채 말했다. 이 둘 사이에 역사가 그렇게 깊은 데 그 사이로 파고들 틈이나 있겠어? 병규가 거들었다.
“그냥 니들 둘이 결혼해라. 잘 어울리네.”
장연우는 또 능청맞게 그럴까 하고 앉아있다. 자리는 파장 분위기였다. 각자의 부인과 여자친구가 술이 얼큰하게 취해 두리번거리는 남자들을 두고 다시 앉았다. 정작 돌잔치 주인공인 아기는 얼굴 한번 스쳐 지나가 본 것이 전부였다. 돌잔치 집을 나오자 이 주변에는 먹을 것이 별로 없다. 연말분위기까지 다들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어렵고 미련 맞은 인사가 이어지고 이어지다가 결국 그 거리엔 다시 장연우와 김태성 둘만 남았다.
“별로 먹을 게 없네.”
장연우가 오늘 먹은 뷔페에 대해 투덜거렸다.
“그런 놈이 여섯 접시나 먹니??”
김태성은 들을 가치도 없다는 양 양손을 주머니에 꽂고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장연우는 그 움츠린 등을 보다가 또 잽싸게 따라 붙었다.
“야, 김태성.”
“왜.”
“넌 진짜 왜 결혼 안 해?”
“먹고 살기도 불편한데 결혼은 무슨. 그러는 넌 왜 안하는데.”
장연우가 어깰 으쓱했다. 나야 네가 안 하니까 안 했지. 김태성이 혀를 찼다. 내가 죽으라면 죽을 거냐? 그걸 말이라고 하고 앉았어. 장연우는 그 투덜거림을 무시하고 또 친근하게 붙어섰다.
“생각해 보니 우리 결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결혼이란 단어는 어렵다. 그 복잡한 세월 때문에 잠시 잊었던 어떤 미련, 어떤 감정을 구태여 밑에서부터 끄집어내는 단어다. 까칠한 김태성과 변죽 좋은 장연우가 만나 아마 평생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속으로든, 밖으로든 결심했던 것은 아마도 친구고 어쩌면 친구가 아니었다. 가끔은 손이 스쳤고 입술이 반짝거렸고 심장은 늘 뛰었다. 그걸 다 친구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거인에게 작은 모포를 덮어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징그러운 소리 하지 마라.”
“내가 너 책임져야 하잖아?”
“꺼져.”
하지만 우린 너무 오래 됐잖아. 도태되고 시간 속에 정체된 나의 20대였다면 그래도 가능이라도 하겠다 싶겠는데, 그러기에도 우린 서른이 넘어 늦었고 너무 멀리 왔는걸. 김태성은 그 긴 이야기를 ‘꺼져’라는 말로 압축시켰다. 딸 수 있는 모든 자격증을 다 따려고 공부하고 사람을 적게 만나는 동안에도 장연우는 꼬박꼬박 고3의 겨울처럼 김태성을 찾았다. 오지 못하면 전화라도 했다. 유달리 방랑벽이 심해서 한 자리에 잘 붙어 있지도 않는 놈이 김태성만큼은 꼭 옆에 붙으려고 하니 참으로 유난한 우정이고 어쩌면 우정보다 더 진하다.
“친구끼리 결혼 하는 거 봤냐.”
“친구 안 하면 되지.”
뭐? 하고 돌아 묻는데 장연우는 한 걸음 뒤에 서 있었다. 친구 안 하면 되잖아. 김태성은 잠시 그것이 신종독설인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아니다. 장연우는 꽤 진지했다. 김태성은 당황했다. 살면서 몇몇 당황스런 순간이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다.
“누가 몰라???”
당황하면 윽박지른다. 아차, 장연우도 이걸 너무 잘 알고 있다. 장연우는 웃었다. 천천히 김태성의 앞에 걸어오더니만, 별안간 악수를 청했다.
“이걸로 우리 사이 끝내자. 마냥 서로가 기대기만 하고 미루어서 아무 일도 일어 날 수 없는, 우리 사이는 이만 끝내자.”
김태성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천천히 그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그 손을 잡았다. 악수를 한 번 하더니 이내 장연우는 잠깐 손을 내렸다가 다시 손을 올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장연우라고 합니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대체 이게 무슨 미친 짓이람. 김태성은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장연우는 기다렸다. 그가 웃음을 멈추고 결국은 첫 인사를 하며 손을 뻗을 것으로.
완전히 모르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오늘은 관계가 끝나버린 날이다. 낡고 오래된 감정은 쫓겨났다. 이제 새로운 장연우가 새로운 김태성을 잡아 끌었다. 슬쩍 손을 잡았지만 조용한 것이, 만난지 10여년이 지나서야 겨우 손 한 번이다. 물론 목욕탕도 가보고 옆에서 자기도 했지만, 오늘부터는 모든 것이 다를 것이다. 오늘부터는. 설령 준비가 덜 되었다고 하더라도, 괜찮다, 34살이면 앞으로도 시간은 많다. 장연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투덜거리는 김태성의 손을 확 잡아 끌었다. 춥다, 이리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