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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창작

당신은 나쁘다


당신은 나쁘다





산이는 이쁘다. 나는 이산을 만날 때면 늘 그 생각을 한다. 그 오동통한 입술하며 흰 피부며 반달처럼 휘는 눈이며. 이쁘지 않은 것이 없다. 나는 이쁘고 잘생긴 것을 좋아하는 솔직한 인간이므로 이산의 이쁜 얼굴을 참 좋아한다. 성격도 착하다. 기다려 하면 기다리고 가 하면 가는. 그렇다고 성질이 없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가끔 가다 한번씩 팩 하고 토라져서 성질 부릴 때가 있는데 그것도 이뻤다. 그런 의미에서 산이는 100점 만점에 99점짜리 애인이었다. 그런데 왜 1점을 깎았느냐고 하면,

 

 

100점을 채우면 재미가 없으니까. 인간은 원래 모자라게 만들어진 동물이다. 끊임없이 실수하고 실패하고 그렇게 살아가라고 프로그램 되었는데 100점이라니, 완벽한 인간은 재미가 없다. 100점짜리 애인은 슬프게도, 헤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이쁜 이산이 스타벅스의 크리스마스 시즌 메뉴인 토피넛 라떼를 아이스로 쭉쭉 빨아들이고 있을 때 나는 별 맛도 안 나는 페리에를 마시고 있었고 그냥 우연히 시계를 봤다. 손목시계의 디지털 화면에는 11 / 1이라고 써있었고 나는 불현듯 오늘이 111일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11월이다. 201011. 나는 핸드폰의 달력을 확인했다.

 

 

자기야.”

, ?”

주말에 우리 뭐하기로 했지.”

내셔널 지오그래픽 전 보러 가기로 했잖아. JJ 네가 꼭 보고 싶다며-”

 

 

나는 핸드폰 모서리로 이마를 긁적거렸다. 이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얼음컵에 따라 놓은 페리에를 들이키며 말을 뱉었다.

 

 

그거 다음주에 가야겠다. 선약이 생각났어.”

 

 

산이의 얼굴은 금새 울상으로 변했고 나는 최대한 돌려 말하는 선에서 그를 달래 주어야 했다. 진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났어, 미안. 그의 볼을 쓰다듬어 주면서 그렇게 말했는데 아무리 마이 페이스인 나라도 완전히 사실대로 털어 놓을 수는 없었다.

 

 

100점짜리였던, 전 애인을 만나러 간다고 말하면 이 자리에서 울어버릴 게 분명했으니까.

 


 -

 

 

오랫만에 가본 용산역은 낯설었다. 거의 모든 터미널이 그렇듯이 각자 어딘가를 향해 떠나거나 어딘가에서 떠나온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이니까. 쇼핑몰인지 백화점인지를 연결시키켜 놓아서 더 하다. 민자역사인지 뭔지 해서 기차역들 몸통만 커지는 것 같은데 서울역만 해도 그렇다. 텅텅 비어보이는 건물보다는 지금은 한쪽구석으로 몰려난 벽돌건물이 훨씬 다정한 느낌이다. 서울토박이인 나지만 적어도 모르는 대도시에 상경할 땐 파란 아스팔트보다는 저런 건물을 통해 나오고 싶지 않을라나. 모르겠다. 나는 원래 그렇게 자주 돌아다니는 타입이 아니다.

 

겉모습만 보고 역마살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편이지만, 정작 나는 한 곳에서 잘 움직이지 않았다. 여행은 정말 큰 맘먹고 여름 휴가 때 근교로 나가는 수준으로, 겨울이면 모를까 여름 바닷가는 질색팔색이었다. 일단 사람이 너무 많아. 거주지역 밖은 피곤하다. 모르는 것 투성이에 낯선 것 투성이에. 선천적인 낯가림을 안고 태어난 나에게 그런 것은 모두 귀찮거나 싫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러니 내가 용산역 같은 곳에 나오는 일은 몹시 드문 일이다. 나는 쌀쌀해진 바람에 자켓 깃을 세워 막으며 담배를 바닥에 버렸다. 지나가는 아저씨가 나를 쳐다봤지만 어차피 쓰레기통 옆이니까 상관 없겠지.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니 오전 11. 나에겐 너무 이른 활동시간이다. 어딘지 머리도 멍해서 나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허공을 응시했다. 오늘이 116일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그리고 그때쯤 허공에, 점이 하나 나타나더니 그것은 점점 길쭉한 형체를 갖추었고 마침내 내 앞에 섰을 때 그것은 김무운이 되었다.

 

 

"기다렸어요?"

 

 

내가 널 왜 기다리니. 하면서 나는 발로 바닥에 버린 담배꽁초를 비볐다. 그냥 척 봐도 다섯개는 되어 보이는 꽁초를 고맙게도 김무운은 애써 지적하지 않고 그냥 한번 픽 웃기만 했다. 녀석이 안 쪽으로 손짓을 했고 우리는 딱히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역 안으로 들어갔다. 온갖 소음이 휘몰아치는 그 곳에서 나는 의자에 앉아서 녀석이 발권해오기를 기다렸다. 키가 큰 김무운은 어디에 있어도 잘 보인다. 마치 표지처럼. 이상스럽게 추운 날씨 치고는 퍽 감이 얇아 보이는 검은 코트가 휘적휘적 나에게 걸어온다. 티켓 하나를 나에게 내밀며 옆 자리에 앉길래 야 가서 콜라 좀 사와 하고 발을 툭툭 건드렸더니 다른 손에 쥐고 있던 콜라를 건낸다. 이미 샀어요.

 

 

나는 그것을 받아들고 표를 읽어본다. 무궁화호 전라선 여수행 1130분 열차. 매번 같은 곳인데 읽을 때마다 활자가 달라지는 느낌이다. 뭐라도 먹을래요? 라고 묻는 말에 고갤 저으며 콜라를 마셨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김무운은 혼자 주섬주섬 빵을 먹기 시작했다. 델리만쥬라고 하는 전철역이나 기차역에 흔히 파는 엄청 달디 단 슈크림만 잔뜩 든 빵을 잘도 주워 먹으며 김무운이 눈으로 내 머리를 가리켜 보였다.

 

 

머리 다시 내렸네.”

추워서.”

 

 

그 말에 김무운이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에 봤을 때도 겨울이었으니까. 그때 당시 옆머리를 싹 밀고 가운데 머리만 삐죽 세우고 나타난 나를 보고 김무운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형 엄청....... 엄청나요. 라고만 말했다. 그때 사진은 내가 다시 봐도 좀 무섭다.

 

 

....”

 

 

나는 고개를 약간 뒤로 빼고 김무운을 아래위로 훑었다. 서 있었으면 오래 걸렸을 텐데 앉아있으니 한눈에 들어온다. 갈색으로 염색한, 단정한 커트. 콧대는 높고 얼굴은 말랐고 목이 길고 손가락도 길고. 매번 보는 검은 옷에 약간 침울하게 다물어진 입매. 나는 혀를 찼다.

 

 

, 넌 왜 변하질 않아?”

, 형도 변하는 건 없어요.”

 

 

옷 하고 머리를 암만 바꿔도 형은 JJ잖아, 그거랑 비슷한거에요. 늘 말은 청산유수다. 내가 보기에 김무운은 그냥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있는 존재다. 시골 동네 어귀에 서 있는 서낭당처럼, 언제까지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시간을 보내는 거다. 변화가 싫어서일수도 있고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1년에 적으면 두 번 많아도 다섯손가락을 안 넘기게 만나는 김무운은 그래서, 언제만나도 늘 어제도 만난 사람같다. 사실 처음 봤을때부터 그랬다. 처음 봤는데, 어디서 본 사람 같았다. 그래서 난 자꾸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냐고 물었고 김무운은 고갤 저으며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김무운의 첫 인상은 거짓말쟁이였고 김무운이 받은 내 첫인상은 일진이였다고 한다. , 잘도 어울리는 첫 인상이다.

 

 

 

 

-

 

 

 

 

 

정적인 이미지의 -실제로도 정적이지만- 김무운을 맞닥뜨린 것은 의외로 클럽 안에서였다. 나는 그때 피크타임의 DJ박스를 맡고 있었다. 그 클럽은 내가 거기서 일한지 2년뒤에 망했는데 그때부터 망조가 들었는지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게이 클럽이었는데 서로 무대에 못 올라가서 안달하는 끼순이 부대를 보며 나는 멍하니 손만 턴테이블 위에 올려 두고 딴 생각을 하고 그랬던 것이다. 그때 사장이 입구에서부터 누굴 데리고 들어왔다. 이쪽 저쪽 가리키는 폼이 클럽 안을 설명하는 모습이었다. 썩 좋다고 할 수 없는 눈에 힘을 주고 그쪽을 보니 왠 멀대 같이 키가 크고 시원하게 뻗은 녀석 하나가 심각한 얼굴을 하고 고갤 끄덕거렸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제법 정중하게 꾸벅 인사까지 했다. 나도 얼결에 따라 고갤 숙였고. 그땐 몰랐지 나보다 어릴 줄은.

 

 

알고 보니 나보다 두 살 어린 김무운은 대학생, 아니 1학년만 마친 휴학생이었고 머지않아 군입대를 할 작정이었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왔었다. 녀석은 주로 bar안에서 일했는데- 그때 바짝 장사 잘 됐지. 허우대 멀쩡하고 잘생긴 놈이 바에서 맥주를 꺼내 주는데 안 마실 놈이 얼마나 되겠어. 그냥 게이 클럽이 어떤 곳인가 염탐하러 온 기집애들도 김무운 앞에선 맥을 못 추고 몸을 베베 꼬곤 했다. 나는 공공연히 김무운이 그냥 돈 궁해서 들어온 일반남자일거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짜건 떼짜건 그 앞에 불나방처럼 몸을 던지는 애들이 하룻밤에도 수두룩 했는데도 김무운은 아무하고도 만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알기론 그랬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옆자리를 갈아치우던 내가 볼 때 김무운은 고자던가 스트레잇이던가 둘 중 하나였다. 일 끝나고 쉴 때 내가 그렇게 말하면 김무운은 그냥 웃고, 그랬다.

 

 

김무운은 금요일, 토요일 이렇게 이틀 일하러 나왔다. 학교를 휴학하긴 했지만 학원에 다닌다고 했다. 23, 대학은 고사하고 고등학교도 간신히 졸업한 채 밤새 놀고 술마시고 자고 다시 출근하는 나의 일상과는 다르게, 아니 그 클럽에서 일하던 애들 중에서 제일 건실했을 거다, 아마. 김무운이 들어온지 3개월 쯤 지나서, 여전히 녀석이 게이가 아닐거라고 생각하던 어느 가을 쯤에, 김무운이 잔을 닦으며 나에게 물었다.

 

 

형은 언제가 오프에요.’

내가 꼴리는 날이 내 오프다,

그럼 내일 오프해요.’

내가 왜?’

데이트 있잖아요.’

 

 

나는 그때, 뭘 했지, 담배를 피고 있었나. 아무튼 그랬는데, 데이트 라는 말에 기억 속을 아무리 더듬어 봐도 그런 약속이 없었다. 그때 마침 공을 들이던 이쁜이 하나가 있었는데 만날 약속은 없었던 것이다. 나는 머릿속으로 한참 헤아려 보고서 인상을 썼다. 그새 김무운은 제 할 일을 다 해놨다.

 

 

없는데?’

있어요.’

누구랑?’

나랑요.’

 

 

이 미친놈이. 나는 경악을 하고 김무운을 봤다. 김무운은 어깨를 한번 으쓱해보이고는 메모지에 핸드폰 번호를 적어 내 앞으로 슥 밀어두었다. 11시요, 늦지 말아요, . 그리고는 잔을 내려 놓고 퇴근해버렸다. 나는 메모지를 들여다보다가 욕을 했다. 이 미친놈은, 시간만 말하고 어디로 나오라고는 왜 말을 안 하냔 말야.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건 결국 내가 지한테 전화를 걸게 하려는 고난이도의 수작이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 다음날은 일요일이었고 나는 처음으로 낮에 김무운을 밖에서 만났다. 늦지 말라고 해놓고 나보다 늦게 도착한 건 그 녀석이었다. 뛰지도 않고 걸어와서는 미안하다고도 안 했다. 하긴 1분인가 2분 늦긴 했지만 나는 퍽이나 가소로운 마음을 가지고 그 곳에 나가 있었기 때문에 그 것이 전부 아니꼬웠던 것이다. 게다가 만난 장소 하고는.

 

 

내가 왜 너랑 케이블카를 타야 되니?’

타고 싶잖아요, . 안 타본지 오래됐죠.’

 

 

타본지 오래 된게 아니라 한번도 타본 적이 없었다. 그래 사실 케이블카 타 보고 싶었다. 그러나 푹 후드를 눌러쓰고 익숙치 않은 햇빛 아래 끌려 나온 나는 적어도 고까운 자존심은 살아 있었다. 문제는 내 자존심을 세울 김무운이 그런 쪽으론 영 생각이 없는 녀석이었다는데 있다. 남산 중턱에서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내 앞에서 이미 끊은 표를 살랑살랑 -별로 웃지도 않는 표정으로- 흔들어보이는 김무운 때문에 결국 나는 소리를 지르며 김무운의 엉덩이를 한 대 걷어찼고 결국은 케이블카를 탔다. 결과적으로 케이블카는 무서웠다. 덜컹거렸고 드라마에서처럼 여유롭지도 않았고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들어찬 채 내가 케이블카를 타는지 만원전철을 타는지 헷갈렸다. 사람사이에 치여 좀 떨어진 곳에 서 있던 김무운 얼굴만 빼꼼하게 보였다. 바깥풍경은 보지도 못했고 케이블 카에서 내렸을 때 난 이미 녹초가 되었다. 그런 나를 보고 김무운은 실컷 웃었고 난 녀석의 정강이를 걷어차며 화를 풀었다.

 

 

그래도 덕분에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면서 케이블카 한번 못 타본 놈에서 케이블카를 타본 놈으로 바뀌었다. 그 뒤로 종종 김무운은 그렇게 만났다. 껄끄러워서 난 한번 써보지도 않는 데이트라는 단어를 들먹이며. 만나는 장소가 참 가관이었는데. 코엑스 아쿠아리움, 63빌딩 수족관, 서울 대공원의 동물원 같이 20대 초반의 성인 남자 둘이 다니기엔 퍽이나 안 어울리는 코스만 콕콕 찝어 다녔다. 게다가 나는 남자를 만날 때 그런 곳에 가본적이 없다. 어두운 클럽, 술집, 그도 아니면 그냥 집에서. 기껏해야 까페, 영화관. 그래서 그런지 김무운이 들먹이는 데이트란 단어가 나에게 낯설기만 했다. 언젠가 돌아 다니다 저질 체력인 내가 벤치에 앉아 투덜거리자 녀석이 손을 내밀었다. 잡아 주겠다고. 내가 정색하며 낯간지럽다고 역정을 내자 김무운은 내 앞에 반쯤 무릎을 꿇고 앉아서,

 

 

, 나 게이 맞다니까요.’

 

 

하는 쌩뚱맞은 소리를 하며 내 손을 잡았고 끌면서 걸었다. 나는 그걸 또 뿌리칠 기운도 없어서 그냥 잡고 걸었다. 입으로는 열심히 거지같다고 중얼거렸는데 김무운은 못 들은 척 했고.

 

 

정신 차려 보니 어느새 나는 녀석과 사귀고 있었다. 나도 김무운도 아직 군 입대 전인, 6년전 이야기다.

 

 

 

 

-

 

 

 

 

먹을래요?”

 

 

안 먹어. 눈을 뜨자마자 녀석이 디미는 초콜릿을 밀어내며 나는 콜라를 마셨다. , 그렇게 콜라만 마시다가 뼈 다 삭아요. 이미 삭고 있거든? 나는 콜라병을 쥔 채 빈정거렸고 차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풍경은 빠르게 찢겨져 나갔다. 연쇄적인 풍경만 봐서는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 앉아 있던 허리는 통증을 호소했다. 몸을 굽히며 허리근육을 늘려보려 애쓰는데 갑자기 김무운이 내 어깨를 툭툭 쳤고 나는 짜증스럽게 반응했다.

 

 

"안 먹는다니까."

"아니 형, 바다."

 

 

나는 몸을 바로 올리며 창밖을 내다 보았다. 바다가 보였다. 시퍼렇고 어두워 보이는 바다가 멀찍이 놓여 있었다. 누가 가져다 놓은 것처럼. 쉽게도 지나가던 풍경과 달리 바다는 꽤 오래 차창 위에 떠 있었다. 이내 다시 산인지 나무인지 사이로 바다는 숨어 버렸고 나는 시계를 보았다. 이때쯤 되면 거의 다 왔다는 뜻이다. 시계는 5시를 넘기고 있었다. 거진 6시간을 함께 앉아있었지만 우린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야 너 그거 봤냐, 새로 나온 맥도날드 햄버거. , 먹어봤어요. 그거 맛있어? 그냥 고기가 많아요. 그런 수준의 대화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종종 김무운이 내 이마를 짚어본다거나 빤히 쳐다보는 일이야 있었지만 나는 그 모든 시선을 무시했다. 차라리 김무운이 괜찮아요? 라고 물어봤으면 그럼 안 괜찮았음 좋겠냐? 하고 비꼬기라도 할 텐데 김무운은 그냥 쳐다만 봤다. 그럼 비꼴수도 없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그렇게 남에게 예의바르고 착하게 구는 인간은 아니다. 그러나 김무운 옆에 있으면 그게 더 심해지는 것이다. 녀석의 말을 끊고 못 들은 척 하고 비꼬고.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던 것 같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김무운과 나의 '' 연애는 그렇게 길진 않았다. 6개월. 좀 넘치거나 모자라거나 아무튼 그 즈음일것이다. 그래도 나에겐 꽤 긴 연애였다. 최단연애기간이 3일인, 사실 연애 라고 이름붙이는 것도 별로인 내 애정전선에서 6개월이면 꽤 길었다. 김무운은 착실한 편이었고 연애에서도 그랬다. 잠자리에서도 그랬고. 녀석은 꽤 전희를 충분히 갖는 타입이었다. 처음 녀석과 잘 때, 누가 위로 올라가냐에 따라 약간 티격태격거렸는데 녀석이 하도 집요하게 애무해대는 통에 내가 먼저 사정했고 결국은 아래로 내려갔다. 그 뒤로 종종 내가 녀석의 위로 올라갈 때에도 녀석은 굉장히 충실했다. 충실하다. 김무운과 만남에 있어서 그 보다 더 적절한 설명은 없다. 그래서 난 녀석이 더 낯설었다. 그렇다고 김무운이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6개월의 연애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김무운이 지독한 이기주의자라는 것이다. 상대에게 충실한 것은 결국 자신이 만족하기 위함이다. 상대를 배려하고 그에 따른 애정을 얻고 그에서 행복을 얻는 사고과정을 두고 나는 변태라고 말하곤 했다. (김무운은 그냥 웃었다) 결국은 지 좋자고 하는 일이다. 형은 사람을 잘 보는 것 같아요. 김무운은 나에게 그렇게 말했고 그렇게 인정해 버리니까 나는 할 말이 없어지고, 그랬다. 헤어지고 난 뒤 곧 녀석은 군대를 갔고 나도 미루고 미뤘던 군 입대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지경이 되서 군대를 갔다. 그때 우리가 만난 적이 있나. 두어번, 만나기도 했었다. 바짝 짧은 머리의 군인 둘이 마주 앉아 있는 꼴은 지금 생각해도 별로 좋진 않다. 그게 어디었지. 여름날의 맥도날드였나. 얼음 잔뜩 넣은 콜라 한잔을 마시고 우두커니 앉아 우리는 제법 심각하게 서로의 자대에 대해 얘기했던 것이다. 맙소사, 왜 그랬지.

 

제대 후에 녀석은 계속 학교를 다녔고 나는 DJ일을 계속 했다. 그리고 가끔 만나고 싸우고 다신 안 본다고 외쳤다가 또 어느 샌가 만나고. 그러나 녀석을 다시 옆자리에 세운 적은 없다. 늘 애인은 있었다. 김무운도 그랬고. 그냥 늘 머리 맡에서 울려대는 알람시계의 존재처럼, 거기 있는 지도 몰랐던 탁상달력의 존재처럼 잊으면 잊히고 생각나면 연락이 되는 그런 관계. 가끔은 몸을 섞었고 가끔은 그냥 돌아다녔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만남도 뿌옇게 흐려지듯 연락이 거의 닿지 않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우린 만나야 할 이유가 있었다. 정확히는, 흘러가듯이 맺은 별 것 아닌 약속이 기억 났을 뿐이었다. 정식적으로 헤어진지 3, 연락이 완전히 끊긴지 반년 후에.

 

 

 

 

 

 

 

 

 

", 바다냄새 난다."

 

 

여수역에 내리면서 김무운은 어김없이 바다냄새가 난다고 했다. 난 잘 모르겠는데. 김무운은 올 때마다 바다냄새가 난다고 설레발을 친다. 고작해야 1년에 한번 오는 여수를 김무운은 제 고향처럼 받아들였다. 적어도 받아들이려고 시도했다. 거기서 나지도 않았고 자라지도 않았으나 김무운은 거길 고향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한번도 말 한적은 없지만, 가끔은, 그것이 제법 안쓰러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절대 그것을 입밖에 내지 않는다. 동정이나 안쓰러움 따위는 우리 사이에 금기시된 일이었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 그런 것이 끼어들면 이 이상한 관계는 더욱 이상하게 굴러가 버릴테니까.

 

 

 

여수는 항구도시답게 바람이 쎘다. 아직 6시도 되기 전인데 하늘이 발갛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우리는 여수역 앞에서 시내버스를 탔다. 김무운이 내 몫까지 돈을 내고 우린 나란히 섰다. 버스 안은 하교하는 학생들, 어시장 나가는 할머니, 퇴근하는 아저씨들로 북적거렸고 시끄러웠다. 버스 안은 낯선 방언으로 가득했으며 나는 그 곳에서 완전한 이방인이었다. 그것이 나를 불편하게 하진 않았지만 더불어 이방인이었던 김무운의 존재를 각인시키기엔 충분했다. 거칠게 운전되는 버스 에서 나는 이리저리 흔들거렸고 김무운이 내 왼쪽 어깨에 손을 얹어 잡아준 다음에야 중심을 잡고 서 있었으니까. 난 뭐라도 이죽거리려고 김무운을 쳐다봤지만 녀석은 침착하게 가라앉은 모습으로 창밖만 보고 있어서, 나도 창밖만 쳐다보았다.

 

 

모르는 거리, 모르는 시장이 지나가고 사거리에서 내린 뒤 다시 한번 버스를 갈아 탔다. 두번째 버스는 좀 더 한산했고 나와 김무운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뉘엿뉘엿 지는 노을은 눈을 찌를 듯이 창을 파고 들었다. 눈이 부셔서 나는 눈을 잠시 김무운에게로 돌렸다. 김무운은 기차에서보다, 서울에서보다 말수가 좀 줄었다. 늘 이렇다. 그 곳에 가까워질수록 김무운은 조금 굳어버렸다. 어쩜 이런 것도 한결 같니. 나는 그를 팔꿈치로 쿡쿡 찔렀다. 나를 돌아볼 때의 김무운은 본래의 약간은 멍하고 약간은 침착한 눈으로 돌아와 있었다.

 

 

"요즘 만나는 사람이 누구라고?"

"있어요, 학교에서 만난 형."

"이름 말해봐."

"윤서진."

", 나 알아, ."

"성격 좋아요."

"그게 좋은 거냐, 좋은 건 걔 바디겠지."

 

 

김무운이 웃었다. 형은 그 사람 만난다면서요. 누구, 산이? . 클럽에서 유명하잖아. 그럼, 얼마나 이쁘게 생겼는데. 저도 전에 봤어요- 진짜 이쁘더라. 그럼 내 안목이.. 라고 말하다가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내 안목이- 뭐요 형."

"아냐."

"안목이 좋다고요?"

"아냐."

"그럼 훌륭한 형 안목에 따라 나도 참 훌륭하게 잘생겼죠?"

 

 

입이 방정이지. 나는 입을 닫아 버렸고 김무운이 계속해서 잘생긴 제 얼굴을 들먹거리는 동안 침묵으로 항변했다. 인정한다. 김무운은 잘 생겼다. 내가 본 사람 중에 제일 잘 생겼다. 그렇다고 굳이 그걸 미주알고주알 말해주고 싶지는 않다. 이상하게 나는 녀석에게 칭찬에 있어서 박했다. 다른 애인에게 립서비스를 마구 퍼주는 것에 비하면 특이하긴 했다. 왠지 비꼬고 구박하고 싶은 녀석. 김무운은 그걸 다 알고도 나에게 잘 해주었다. 천성이다. 그리고 녀석이 그럴수록 나는 더욱 녀석에게 퉁명스럽게 굴었다. 야 넌 왜이렇게 무운이한테 못되게 굴어, 라고 클럽사장이 퉁박을 놓을 정도로. 내가 왜 그랬냐하면. 왜냐하면.

 

 

 

버스에서 내렸다.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을 보며 김무운이 내 손목을 잡았다. 나는 김무운이 내 손목을 잡기 전에 싹 빼내고 빨리 걷기나 하라고 투덜거렸다. 내린 곳은 한적한 어촌마을 입구 어귀였다. 우리 둘은 버스 정류장이 있는 길을 따라 걷다 숲 사이로 난 샛길로 들어섰다. 작년에 왔을 때보단 길이 좋아졌네요, . 그러게. 손 잡아 줄까요? 꺼져, 임마. 별로 가파른 길도 아닌데 평소 운동량이 형편없는 나는 금방 숨이 찼다. 김무운은 앞에서 걷다가 간간히 뒤를 돌아보며 나를 확인했고 나는 그 시선에 오기가 생겨서 계속 내미는 손을 거부했다. 그리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절벽같이 숲 사이에 갑자기 시야가 트인 공터는 별로 높은 지대는 아니였지만 몇몇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어촌의 집들이 한눈에 들어왔고 그 앞으로 새까만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낮이었다면 터키석처럼 파랬겠지만 저녁 시간엔 까맣게 보인다. 내가 팔짱을 낀 채 숨을 고르는 사이 김무운은 잠깐 바다를 보며 서 있었다. 이제 거의 꺼져가는 노을빛이 잠깐이지만 눈이 부셨다. 김무운의 등은 움직일 줄을 몰라서 나는 다가가 그 등을 건드렸다.

 

 

"김무운, 해 지기 전에는 내려 가야지."

 

 

, 하면서 김무운이 그제야 내가 기억난 사람처럼 나를 돌아 보고서 주섬주섬 한쪽 어깨에 둘러멘 가방을 열어 소주 한병을 꺼냈다. 서울에서부터 사온 소주는 이 곳에 오기 위한 유일한 준비물이다. 엄마는 참이슬을 좋아했어요, 잎새주는 맛이 없데. 이 동네에서 나기만 났지 살기는 서울에서 살아서 그런가봐. 김무운은 소주 뚜껑을 따면서 매번 하는 소리를 또 했고 나는 그냥 지켜봤다. 공터의 한 구석에 볼품없는 흙무덤에 김무운이 소주를 부었다. 잔디를 입히긴 했지만 돌보지 못해 누렇게 떴고 그마저도 이곳저곳 패인 흔적이 있었다. 김무운은 그 무덤을 한바퀴 소주로 둘렀다. 천천히, 하지만 신중한 의식이었다. 그 위로 김무운의 그림자가 가라앉는다. 흙밑으로, 절벽밑으로 묵직하게 가라앉는 환영을 떨치기 위해 나는 눈을 문질렀다.

 

 

 

 

 

', 엄마가 누군지 알아요?'

 

 

나는 김무운이 그렇게 물었을 때 짜증을 냈다. 아마 술을 많이 마셨을 때였을 것이다. 아직 사귀고 있을 때고. 지금 나 고아인거 놀리냐? 내 타박에도 굴하지 않고 김무운은 답지 않게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 그때쯤 되면 능수능란하게 이빨을 까며 무슨 말이라도 해야하는데 조용해서 나는 어색함에 입을 한번 닫아야 했다.

 

 

'갑자기 그건 왜 묻는데.'

'나는요, , 내가 엄마를 몰랐으면 좋겠어요.'

 

 

우리 김경희씨.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녀석이 늘어놓는 뻘소리에 눈만 꿈뻑거렸다. 평소에 김무운은 제법 다정하고 착실하고 온화한 녀석이기는 하지만 절대 자기 속얘기는 하지 않았다. 내가 만인에게 까칠하게 가시를 세우는 것과는 다른 종류로 녀석에겐 유리벽이 있었다. 화가 나도 녀석은 두눈에 힘을 주며 입은 꾹 다물어버렸다. 그런 녀석이 갑자기 쏟아내는 엄마라는 단어는 나를 좀 놀라게 했다.

 

 

그리고 그 밤에 김무운은 갑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토해냈다. 별다른 날도 아니었고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신 날도 아니었다. 그냥 적당했다. 모든게 적당했던, 어느 평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요즘 같은 세상에 흔할 법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김무운의 어머니는 미혼모였고 고향에서도 가출해서 서울로 상경한 혈혈단신이 덜컥 애를 가져서 키우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악착같이 노력했던 것 같다. 사글세방에서 엄마와 둘이 살았던 기억이 있다고 했으니까. 엄마가 일을 나갈 때면 하루 먹을 밥을 차려주고 밖에서 문을 잠그고 나갔고 유일하게 그 문이 열릴 때는 엄마가 돌아올 때였다. 김무운은 방에서 자고 먹고 볼일을 해결하며 엄마를 기다렸다. 몇 살때부터 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인 것은 기억이 난다고 했다.

 

 

엄마를 기다리는 일을 즐겁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엄마는 때로 술을 마시고 왔는데 술을 마시고 온 날이면 무운을 때렸다. 너 때문이라고 원망하면서. 늘 그렇진 않았지만 점점 술을 마시고 오는 빈도가 늘어났다. 나중엔 아예 출근도 하지 않고 술만 마실 때가 많았다. 김무운의 세상은 작은 사글세방과 그에 딸린 부엌이 전부였다. 엄마는 녀석이 밖으로 나가는 걸 원치 않았다. 아마 애가 있단 걸 숨기고 방을 얻었던 것 같다고, 어렴풋이 회상하는 김무운이 그렇게 말했었다.

 

 

어쩌다 엄마가 바쁘게 일을 나가느라 문을 잠궈놓지 않은 날 김무운이 문을 열고 골목 어귀에 나갔던 날 마주친 동네 아이들에게 거지라고 놀림받고 그 모습을 본 엄마에게 귀가 잡혀 방에 끌려 오면서, 엄마는 누가 볼새라 녀석을 거칠게 방으로 밀어 넣었다고 했다. 그날은, 하필, 엄마가 술에 취해 귀가한 그날이었다. 실컷 김무운을 때리고 나자 다 죽자고, 지겨운 인생 살아서 뭐하냐고 엄마는 현관문을 단단히 닫고 집에 있던 이불을 찢어 틈을 막고는 LPG가스통의 밸브를 열었다고 했다.

 

 

거기까지 말하고 김무운은 눈을 몇번 깜빡이더니 짧게 몇 마디로 과정을 압축해 버렸다. 엄마는 내 몸위에 올라타서 목을 조르고 있는데, 나는 좀 정신이 없었고 아프다기 보다는 놀란 쪽에 가까워서 엄마 엄마하고 부르고 있었는데요, 근데 멀리서 쾅쾅 소리가 나더니. 다음에 눈을 뜨니까 병원이었어요, 마법같죠. 집주인의 신고로 김무운의 엄마는 경찰조사를 받게 되고 결국 엄마와 김무운은 따로 떨어지게 되었다. 주민등록도 비로소 그때 생겼고 그때가 되서야 김무운은 자기가 9살 남자아이 이름은 김무운 이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그 이후로 시설에서 자란 김무운은 잘 자랐다. 학교도 다니게 되었고 공부도 잘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굴었고 어른들의 말도 잘 들었다. 엄마는 1년에 두 번 명절 때만 면회가 허락되었다. 엄마는 늘 우는 얼굴을 하고 나타나 울기만 하다 가버렸다. 그러나 그것조차, 무서웠노라고, 김무운은 취기가 사라진 얼굴로 덤덤하게 고백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장학금 제도의 혜택을 받으며 학교를 다니는 동안 한번도 엄마를 보지 못했고-이 부분에서 무운은 말했다. 보지 못한건지 않은건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간간히 사회복지사를 통해 소식만 들었는데 여수에 있는 고향에 내려가 산다고 들었다.

 

 

그리고 20살이 되던 해, 김무운은 대학입학이 확정되고 며칠 후 부고를 전해 듣는다. 뭐 그런 이야기다.

 

 

'왜 나한테 얘기해.'

 

 

나는 그렇게 물었다.

 

 

'형이니까요. 형은 어디까지나 JJ, 아니 이정준이고, 그러니까 형은-'

 

 

이런 이야기에 신경쓰지 않을 유일한 사람이잖아요. 이름부르지 말랬지. 나는 짜증을 냈으나 그러나 그 이상 대답하지 않았고 김무운은 웃었다. 그리고 그날 잠들기 전에 김무운은 막 잠이 설풋 들었던 나를 흔들어 깨우더니 내 가슴팍에 파고 들었다. 너 뭐하니- 하고 밀어내려던 나는 잠기운과 귀찮음을 빌어 그 녀석을 그냥 두었다. 갈색으로 염색한 작은 머리통은 평소와는 달리 내 얼굴보다 아래에 놓여 있었다. , 이 자식 쌍가마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망할자식 내가 신경을 쓸지 안 쓸지 지가 어떻게 안담. 웃긴 놈이네. 나쁜 쌍가마다.

 

 

이자식이 처연한 것은 모두 쌍가마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손을 들어 녀석의 정수리에 얹었다. 그 처연하고 불쌍해 뵈는, 쌍가마를 내 손으로 가리려고. 녀석에 대한 연민을 가리려고, 버리려고.

 

 

', 나 아직 엄마 무덤에 한번도 안 가봤어요.'

'가고 싶으면 가고 말고 싶으면 마는거지.'

'무서워서요.'

'그럼 가지마.'

'가보고 싶긴 해요.'

'그럼 가.'

우리 엄마 이름은 김경희였어요. 경희씨.’

그래.’

', 나중에 나랑 같이 가줄래요?'

 

 

나는 졸음이 쏟아지는 눈을 하고 창밖에서 날아드는 나트륨등의 오렌지빛을 쳐다보았다. 이놈의 도시는 달빛이라는 걸 보기가 힘들다. 가로등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눈을 감았고, 그러면서, 그래- 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절 안해?"

"안해요."

 

 

절은 무슨 절. 김무운은 답지 않게 투덜거리듯 대답하며 빈 병을 다시 제 가방에 챙겼다. 그냥 버리면 되지. 제 엄마 무덤에 쓰레기 만들기 싫은 건지 그냥 버릇인지 모를 일이다. 코트 주머니에 두 손을 우겨 넣은 김무운의 뒷모습이 우두커니 별 볼일 없는 무덤을 지켜봤다. 바람만 뭐라고 속살거렸다. 바람결에 김무운이, 왜 그랬어 경희씨 하고 속삭이는 것을 들은 것도 같지만, 그 또한 모두 바람의 짓이다. 나는 들은 바가 없다. 마침내 김무운이 나에게 고갤 돌리며 뭐 먹을래요? 하고 물을 땐 이미 해가 완연히 저버린 상태였다. 내려갈 땐 반대편의 계단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추웠다.

 

 

 

 

 

저녁은 바닷가 근처 술국집에서 먹었다. 나도 김무운도 회를 싫어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공톰점은 그거 하나구나. 대충 몇 술 뜨는 나와 달리 김무운은 참 야무지게도 잘 먹었다. 생긴 건 양식만 먹게 생겼는데 안 가리고 잘 먹는다. 특히 이 곳에 오면 김무운은 전에 없이 살갑고 무던한 녀석이 되어서 뭐든 -회만 빼고- 다 잘 먹고 모든 풍경을 좋아했다. 적어도 그러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렇게라도 하면 제 어머니와 제가 그 먼 시간을 돌고 돌아 연결 될거라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녀석과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할 필요가 없는 건지도 모른다.

 

 

", 작작 먹어. 체해."

"안 체해요. 형은 왜 안 먹어요, 약 먹으려면 먹어야지."

"그놈의 약 소리는. 누가 보면 니가 약장사하는 줄 알겠다."

 

 

김무운이 구태여 밥을 먹자고 하는 이유가 내 약을 먹이기 위함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녀석은 이 웃기지도 않은 여행길에 오를 때면 어린 시절 기억을 헤매이면서도 나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열은 안나요? 안 어지러워요? 약은 언제 먹어요? 나는 녀석의 소원을 풀어주는 기분으로 가방을 뒤적여 약을 꺼냈다. 7알은 족히 되는 형형색색 가지가지 다른 약이다. 김무운이 물을 따라줬고 나는 그걸 한꺼번에 삼켰다. 알약들이 내 목을 타고 식도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는게 느껴진다. 간질거리는 기분이다. 물을 더 마시라고 권하는 김무운의 손을 밀어내며 나는 마른 기침을 했다. 약을 먹는 건 기분이 이상하다. 멀쩡한 것 같은 내 몸이 갑자기, 아픈 환자의 몸이 되는 것 같다. 약은 나를 약하게 만든다, 정신적인 측면에서.

 

 

"검사 받았어요?"

"그저께."

"그럼 언제 봐요, 우리."

"다음주 목요일."

 

 

김무운이 숟가락 놓기가 무섭게 나는 일어섰고 김무운은 부랴부랴 계산을 했다. 그리고 식당에 딸린 구멍가게에서 담배를 두 갑 사고 콜라를 한 병 사서 모두 다 나를 주었다. 담배를 두 갑주는 것에는 좀 머뭇거렸지만 내가 인상을 쓰자 별 수 없다는 듯 마저 주었고.

 

 

아까 내렸던 버스 정류장에서 시간을 확인하니 앞으로 한 시간은 넘게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8시도 훨씬 넘겼고 곧 있으면 뉴스 데스크가 시작될 판이었다. 김무운은 바닷가 구경이나 하자고 했고 나는 투덜거렸지만 결국 따라갔다.

 

 

마을은 작았고 조용했다. 집집마다 그물을 걸어 놓거나 뭔가 널어 말리고 있었다. 이 곳은 확실히 바다 냄새가 났다.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김무운은 모든 것을 어색한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이 곳의 공기마저 버거워 보일정도로. 엄마는 왜 고향에 내려왔을까요, 이미 가족도 없었다는데. 김무운은 그렇게 중얼거렸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김무운은 이 모든 것을 제 뿌리로 받아들이려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다.

 

 

 

", 나 이제 알 것 같아요, 왜 엄마가 고향으로 내려왔는지."

"뭔데."

 

 

나는 담배를 물었다. 자갈돌은 차가웠고 검은 바다와 자갈로 이루어진 해변가는 마치 한 몸같아서 어디가 바다고 어디가 땅인지 구분이 잘 안됐다. 가로등은 띄엄띄엄 늘어져 있어서 바로 옆에 있는 김무운 얼굴도 간신히 옆으로 비치는 윤곽만 보이는 정도였다. 내 담뱃불이 빨갛게 올라왔다가 연기가 되어 바람에 날린다.

 

 

"아름답잖아요, 여기."

 

 

그 딴말은 나도 하겠다. 그렇게 말하자 김무운이 웃었다. 바닷가는 추웠다. 내가 춥다고 말하자 김무운이 코트를 벗어주었다. 가오 상한다고 거절하려다 너무 추워서, 그냥 받아들였다. 나도 한 대 줘요, . 너 이거 안 피잖아. 안 가려요. 담배 한 대를 건내주고 친절하게 불까지 붙여 주었다. 빨간 불이 너울거리고 김무운의 얼굴도 같이 음영이 졌다가 사라졌다. 우리 둘은 멀리 깜빡이는 불빛을 쳐다보았다. 좀 더 옆으로 고갤 돌려보면 멀리 여러 화려한 불빛이 많은 여수항이 보였다. 그러나 지금 당장 이 곳은 텅 빈 해변가였다.

 

 

, 뭐 물어봐도 되요?”

안돼.”

에이-”

뭔데.”

그때요. 형이 나한테 전화했을 때.”

 

 

왜 전화했어요? 그냥, 모른 채 지나갔어도 됐잖아요. 나는 그 말에 대답 않고 담배만 피웠다. 김무운이 말하는 그 때는 3년전이다. 새벽에 퇴근하다가 교통사고가 났었다. 다리가 부러지고 갈비뼈가 살짝 부러졌다. 클럽 앞 횡단보도에서 술 취한 운전자가 나를 받았는데, 아우디였다. 일단 입원을 했는데 누워있다보니 열이 받아서 어차피 나를 친 새끼 돈이니까 하는 생각으로 검사 중에 제일 비싼 걸 골라서 받았다. 덕분에 이것저것 귀찮은 걸 많이 했지만. 단순히, 돈 많은 놈 돈 끌어다 써버리자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결코, 어두운 얼굴을 한 의사가 내 침대 머리 맡에 서서 ‘HIV항체검사가 양성으로 나왔습니다.’ 라고 말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나는 그게 에이즈라는 것도 단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2주 후, 바이럴 로드 검사 결과마저 나왔을 때 나는 문득 김무운이 떠올랐다. 이미 못본지 반년, 몸을 섞지 않은지도 거진 1년은 되어가던 김무운인데- 그때 만나던 애인보다 녀석이 먼저 생각나서 나는 전화를 걸었다. 놀랍게도 나는 녀석의 번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똑똑한 내 머리덕분이던가 녀석이 지독한 습관이던가 둘 중 하나인데 아무래도 후자라는 것을 부인 할 수가 없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나는 속사포처럼 말했다. , 내일 나 좀 만나. 내일? 형 저 내일 데이트하는데- 중요한 일이야, 혜화역으로 나와. 나는 잠시 말을 끊었다.

 

 

부탁이야.’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음날 말쑥하게 차려입은 김무운이 혜화역 앞에, 정확히는 마로니에 공원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아직 깁스를 풀지 않았던 다리를 절뚝거리며 그 앞으로 걸어갔고 김무운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얼굴을 했다. , 다리 왜 그래요.

 

 

따라와.’

 

 

나는 길을 건넜고 녀석은 날 부축하는 듯한 동작 -내 몸에 손을 못 대게 했으니 폼만 그렇게 잡은 채-으로 나를 따라왔다. 내가 서울대 병원으로 들어가자 녀석은 잠깐 갸웃했으나 계속 따라왔다.

 

 

나는 병원 입구에서 녀석에게 말했다.

 

 

나 에이즈래.’

 

 

녀석이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나는 그냥 마저 말했다.

 

 

검사 받아, 김무운.’

 

 

김무운은 그날 결국 데이트를 취소하고 검사를 받았다. 2주 후에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그 전화를 받을까 말까 오랜 시간 고민했으나 오랫동안 울리는 핸드폰을 끝내는 집어 들었다.

 

 

난 아니래요.’

잘됐네.’

 

 

나는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정말 잘됐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때가 처음이다. , 잘 됐다. 그런데 김무운이 계속 말을 했다.

 

 

, 예전에 한 약속 기억나요?’

무슨 약속?’

나랑 같이 우리 엄마 산소 가주기로 했잖아요.’

기억 안 나는데.’

나는 기억나요.’

 

 

좀 있으면 우리 엄마 기일인데, 같이 가줘요, . 김무운은 침착하게 말했다. 대신 형 검사 결과 받을 때 내가 같이 갈게요. 나는 그때 사실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약간 취기에 돌아간 김무운의 발음과 가슴팍에 뱉던 숨과 녀석의 갈색 머리 정수리 위의 쌍가마 같은 거. 그러나 기억 난다고 말하면 꼭 녀석을 동정하게 될 것 만 같아서 기억을 지웠다.

 

 

난 필요 없는데.’

, 같이 가줘요. 우리 그 정도는 되는 사이잖아요.’

 

 

그 정도는 되는 사이라니, 그딴 말이 어디 있담. 그러나 결국 나는 그해 김무운과 함께 여수에 처음 내려갔다. 길을 헤매고 산소를 못 찾아 헤매고 버스를 놓쳐가면서. 그 모든 시간, 김무운의 어두운 기억을 공유하며. 그리고 그 다음주에 내 면역세포 검사결과가 나오는 날 김무운은 내 집으로 날 데리러 와서 친구에게 빌려왔다는 차로 날 태워서 병원까지 데려다 주었다. 결과를 보고 하루 종일 내 옆에 귀찮을 정도로 붙어있던 김무운은 나를 다시 집에 데려다 주었다. 12시도 넘긴 늦은 밤이었다. 잘 있어요, . 몸 조심하구요. , 임마. 그렇게 우리는 또 헤어졌다.

 

1년 뒤 용산역 처음 기차표를 샀던 자동판매기 앞에서 또 만나게 될 줄은 그때야 몰랐지.

 

 

 

 

너한테 옮은 줄 알고 죽여버리려고 전화했다, .”

에이- 거짓말.”

너 죽을래?”

, 난 슬슬 엄마를 용서할 준비를 하고 있어요.”

거참 기특하네요, 김무운 어린이.”

그러니까 형도, 형을 좀 용서해봐요.”

 

 

형 잘못이 아니에요. 김무운 주제에 그럴싸한 말을 한다. 김무운 주제에 갑작스럽게 내 허점을 찔러서 나를 휘청이게 한다. 김무운 주제에, 예정된 나의 죽음이 나의 탓이 아니라고 말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김무운은 100점짜리 애인, 아니 100점짜리 인간이고 옆에 두면 과분해서 옆에 두면 안 되는 인간이다.

 

 

왜 나는 너와 어둠을 공유하는가. 너의 어머니와 나의 병, 가슴 가장 밑바닥에 있는 어두운 통로로만 연결된 우리. 그러나 옆 자리에 서지 않는 우리. 나는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건 그런 말랑하고 달콤한 장밋빛 단어로 표현될 것이 아니다.

 

 

키스해도 되요, ?”

안돼.”

왜요?”

우리가 무슨 사이라고 키스를 하니.”

우린 무슨 사이에요?”

 

 

넌 가끔 너무 어려운 걸 물어봐.

 

 

그냥.. 화장실 같은 거. 들어가서 수도꼭지 틀어놓고 혼자 처 울고 그런 거, 드라마에서 못 봤니.”

 

 

모든 것, 감정이건 오물이건 모든 것을 갖다 버리는 공간인 화장실. 그만큼 우리에게 어울리는 곳도 없다. 모든 걸 물소리에 쓸려 내려가 버리면 남는 것은 공허함 뿐. 동정도 아니고 연민도 아니다. 혹자는 이런 관계를 위로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너의 존재가 나에게 위로가 되고 나의 존재가 너에게 위로가 되는 그런 관계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도 거부한다. 그런 굴레를 너와 나 사이에 만들어 묶기 싫다. 너를, 나에게 옭아맬 수 없어. 그것이 내 마지막 의지다. 유언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내가 서른살 생일을무사히 맞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까. 그때까지는 부디, 네가 네 어머니를 용서하기를 빈다. 나는 그 모든 말을 꾸역꾸역 삼키고 담배연기로 날려 보냈다. 희뿌연 담배연기가 가로등 빛에 둥실 떠다닌다. 이쁘다.

 

 

그럼 손은요.”

“.....”

손은 잡아도 되죠?”

 

 

나는 대답하지 않았고 김무운은 제 담배를 꺼뜨리고 왼손으로 내 오른손을 잡았다. 손은 따뜻했다. 어깨에 벗어준 그 코트보다 그 손이 더 따뜻했다. 그래서 나는, 그 손은 그냥 두기로 했다. 손 정도로 옮지 않는 병이니 나름 장점이라고 생각하자. 나는 담배를 한 대 더 피웠다. 시계를 보니 버스가 오기까지는 15분이나 더 남아있었다. 끝이 안 보이는 검은 바다, 낯선 어촌 마을의 짭조름한 바다 냄새와 함께 나는 김무운과 함께 그렇게 앉아서 버스를 기다렸다.

 

 

 

 

 

 

 

 

 

+최종 수정 날짜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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