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을 가진 남자
조폭AU
우린 담배때문에 시작되었다. 그는 담배를 문 채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심히 불안정해보였기 때문에 나는 그를 피해야 겠다는 생각에 서너걸음쯤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그러나,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는 내 옆으로 정확하게 다가와서 물었다. '불 없어?' 나는 고갤 저었다. 그쯤이면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문 담배를 도로 손에 쥐더니 갑자기 팔을 흔들었다. '내가 진짜 담배 끊으려고 했거든? 담배 이제 내가 더럽고 치사해서 안핀다하고 아주 뚝 부려뜨렸는데 이게 이놈이 이게 아요 요망한, 그래서 불 없어?' 나는 아무래도 확실히 말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불 없어.' 그가 눈을 깜빡거렸다. 동그랗고 장난기 많은 눈이었다. '난 끊었거든.' 내 말에 그가 히익하고 요란을 떨었다. 다분히 연극적이었지만 어쩐지 어울렸다. '독한 놈이네, 이거. 와 진짜 무서운 사람이구나, 너. 와 어떻게 담배를 끊냐, 야박하고 무서운 놈.' 그는 실컷 나를 비난하는 건지, 무서워하는건지, 아니면 그저 웃을만한 일을 찾는 건지 한참 떠들었다. 그리고 말 끝에 자연스레 물었다. '근데 넌 이름이 뭐야?' 난 그쯤 이미 빈정이 상해있었기 때문에 톡 쏘았다. '넌 이름이 뭔데?' 그는 갑자기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공손하게 두 손을 맞잡더니 -한쪽손엔 여전히 담배가 들려 있었다- 나에게 말했다. '난 한석율이라고 합니다. 그쪽의 존함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가 그냥 내 이름이 입술 밖으로 새어나왔다. '장그래.' 그게 전부였다.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우린 '한 식구'였다. 어찌어찌 흘러 들어온 뒷골목 조직 말단들도 일단은 조직원이었으니까, 식구였다. 나와 한석율이 '근무'했던 가게는 '포에버'라는 룸싸롱이었는데 가게가 오래되긴 했어도 단골손님도 많고 예쁜 아가씨도 많고 마담 장사수완도 좋아서 꽤 수입이 좋은 곳이었다. 나는 손님을 배웅하거나 룸을 돌면서 손님들 잔심부름을 했고 한석율은 아가씨들을 데려오고 배치하는, 한마디로 '관리실장'이었다. 거긴 실장이 참 많았다. 가게안에서는 한실장님, 장실장님 그렇게 사근사근 불렀다. '포에버'에서 먼저 일하기 시작한 것은 한석율이었고 나는 작은 가게에서 그곳으로 옮겨간 것이었다. 가게에서 일 시작하고 삼일쯤 지나고 한석율을 마주쳤는데, 그는 선배임을 주장하며 어깨에 힘을 주었다. 그렇다고 진상을 부린 건 아니었다. 그저 그는 말이 많았고 뭐든지 과장되게 행동했다. 내가 문을 지킬때면 슬그머니 다가와서 내내 내 옆에서 수다를 떨다 갔다. 아가씨들 데려다 주는길에 같이 가서 선지국과 소주 한 병으로 아침 해장을 하고 헤어지기도 했다. 그는 그놈의 담배를 못 끊어서 안달이었는데 고심끝에 생각해낸 것이 성냥이었다. '라이터는 너무 쉽잖아. 불을 탁 키면 탁 나오니까,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근데 그래야 봐봐, 성냥은 붙이려면 시간이 걸리잖아. 그 사이에 생각하는거야. 내가 진짜 이 담배를 필까 안 필까. 어때, 끝내주지?' 나는 선지국을 후루룩 마시며 말했다. '뭔소리야.' 한석율은 포기하지않았다. 그는 정말 성냥을 들고 다녔다. 요즘은 업소에서도 전부 찌라시용 라이터를 쓰니까 성냥을 구하기도 어려울텐데, 어찌어찌 잘도 구해서 주머니에 한갑씩 넣고 다녔다. 나는 그가 담배를 물고 성냥 갑에서 성냥을 꺼내 긋는 광경을 자주 보았다. 그의 말대로 시간이 더 걸렸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간이 그가 담배를 피지 않도록 도와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늘 한석율은 기어코 그 담배에 불을 붙였고 울렁거리는 성냥 불에 비친 얼굴은 시간 탓인지 더욱 피곤해보였다. 그러나 성냥불을 훅 끄고 담배를 빨아들이는 한석율은 또 즐거운 얼굴이었기 때문에 나는 혀를 차고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보통 피곤하고 모든 것에 귀찮아 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거진 다 그랬다. 한석율만 빼고. 그가 피곤해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지내고 싶어했다. 요즘 뜨는 여자모델이야기나 시청률이 잘 나온다는 드라마 이야기라면 모르는게 없었다. 웃긴 영화같은 것도 잘 알아와서 우린 우습게도 술과 담배냄새를 풀풀 풍기며 조조영화를 보기도 했다. 난 그를 보면 그가 '보통 사람'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뒷골목에서 주먹 휘두르고 남의 돈 뒤로 빼돌리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평범하게 출근하고 평범한 일을하고 평범하게 퇴근하는, 보통사람같아 보였다. 맞는 말이었다. 한석율은 보통사람같이 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가 성냥불을 당길 때, 그 성냥을 담배 끝에 갖다 붙일 때, 그 너울거리는 얼굴을 보았다. 피곤한 얼굴. 보통 사람의 탈을 뒤집어 쓰기 위해 소진하는 그의 모든 기력들을. 나는 입을 다물었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함부로 훈수를 둘 처지는 아니었다.
큰 일이 하나 있었다. 아가씨 중에 하나가 2차를 나가서인지 아니면 남자친구때문인지 임신을 했다가 유산을 했다. 가게에서는 당장 낙태할 병원에 접수를 해놨기 때문에 자연유산 된 것이 잘됐다는 분위기였다. 아가씨들한테는 침울한 분위기가 돌았다. 한석율은 웃으면서 그 아가씨 어깨를 토닥거렸다. '아 어차피 키울 것도 아니잖아. 잊어, 잊어! 내가 술한잔 살게.' 아가씨는 따라 웃었다.
나는 뒷문에서 한석율을 만났다. 그는 성냥을 당기고 있었다. 그리고 울었다. 울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자꾸 성냥불이 담배에 닿기도 전에 꺼져버려서 그는 담배를 못 피웠다. 나는 다가가 그의 손에서 성냥갑을 뺏어들고 성냥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의 담배에 붙여주었다. 한석율은 씩 웃었다. 눈물로 번들거리는 그의 얼굴은 성냥불을 불어끄면서 같이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오래도록 그 골목에 서 있었다.
+ 곧 뒤를 이어 쓰고 싶은 마음...마음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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