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서치열전 진짜 재밌거든요 여러분 제가 진짜 잘해드릴게요 간서치열전 좀 봐주세요..
수한의 수난시대
수한의 눈에 총기가 흘렀다. 오늘은 오랜만에 열린 책거래 장터였고 그 말인즉슨 수한이 사흘 전부터 뜬 눈으로 기다린 바로 그 장날이었다. 어머니께 등짝을 얻어맞으면서도 끝끝내 모아온 쌈짓돈을 드디어 오덕후답게 쓸 날이 온 것이다. 수한은 안면이 있는 책쾌 영감 노점 앞에 쭈그리고 앉아 영감을 닥달하고 있었다. 서자라고 해도 씨는 양반 씨인데 흙바닥에 서너살 아이처럼 쭈그리고 앉은 꼴이 여간 모양 빠지는 것이 아니었으나 그런 것을 신경쓸 간서치도 아니었고, 장터 사람들도 으레 있는 일이라 신경쓰지 않았다.
"아 거 그래서 뭘 가져왔길래 그토록 꺼내지도 않고 뜸을 들이는 것이오? 이러다 해 떨어지겠소오."
수한은 등 뒤로 감춘 짐짝을 펼치지 않고 수염이나 다듬고 있는 책쾌 영감을 향해 화를 냈다가 하소연을 했다가 바람에 나부끼는 솟대 깃발처럼 떠들고 있었다. 책쾌 영감은 자리 잡고 앉자마자 아주아주 귀한 책을 구했다며 거드름만 피우고 본전을 꺼내지 않고 있었다.
"아 나 진짜 가오? 이 온리전(蘊利廛: 유익함을 쌓는 가게)에 영감 혼자만 장사 하는 줄 아시오? 저 앞줄에 앉은 거간꾼은 나에게 구운몽의 귀한 판본을 넘긴다고 했수다. 생각 난 김에 거기나 가야겠.."
영감은 수한의 팔을 붙잡더니 은밀하게 속삭였다.
"내 장 선비니까 특별히 넘기는 물건이오."
하면서 수한의 품에 둘둘 말은 서책 하나를 안겨주는 것이 아닌가. 수한은 영감의 손을 붙들고 연신 신이 나서 흥얼거리다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책을 펼쳤다. 십구금. 허허 이름부터 별나구나. 수한은 겉장을 펼쳤다가 비명을 지른 뒤 다시 닫고 말았다. 빠르게 주위를 둘러 보았으나 다들 흘긋 쳐다만 볼 뿐 다시 자기들 할 일에 여념이 없었다. 수한은 빠르게 뒷장까지 파르륵 넘겨본 다음에 영감한게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질렀다.
"영감이 이제 노망이 났소? 춘화집이 무어가 귀하다고 이걸 내미는 거요?!!"
물론 수한의 목소리는 삿대질하는 행동과 달리 속삭이듯이 말하고 있어서 주변은 매우 조용했다. 책쾌 영감이 혀를 찼다.
"이게 보통 춘화집이 아니야. 이건 무려 세종대왕 시절부터 내려오는 것인데 작자가 적혀있지 않지만, 소문에 의하면 양녕대군이 절에 들어가기 전에 그렸다는 말이 있네."
수한은 얼굴을 찡그렸다. 말이 되는 소릴 하쇼. 그러거나 말거나 책쾌 영감은 주절주절 썰을 풀었다.
"그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조선 팔도 풍류가 흐르는 곳에 그 분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고 팔도 절색 중에 그분이 품어보지 않은 절색이 없다하지 않은가. 바로 그 경험을 담아 그렸다는 것이 바로 이 십구금이란 말일세. 이건 단순한 춘화집이 아냐. 역사적 증거지."
"그걸 누가 믿소??"
"자자 여기를 한번 보면 말일세."
영감은 춘화집을 태연히 펼치며 그 중 한 부분을 수한에게 들이밀었다. 수한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온갖 잡서에 능통하고 박수무당보다도 더 사람 속을 잘 보는 장수한이었으나 대낮에 낯뜨거운 춘화집을 시장 바닥에서 펼쳐보기에는 인간적 체면의 한계가 있었다. 수한이 그렇게 뒤로 물러나는데 별안간 그는 우뚝 섰다. 어라 내가 언제 일어섰지. 수한이 어안이 벙벙한 사이에 뒤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잡서나 보는 간서치인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제법 밝히는 한량이었구나."
"밝히다니! 누구보러 밝힌다는 거요! 이건 어디까지나 이 영감이.."
하면서 뒤를 보려는데 다음 순간 수한은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책쾌영감은 자꾸 멀어져 가고 수한은 팔다리를 허우적거려보았으나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영감!! 영감!! 나 좀 살려주오!! 춘화집으로 벌개졌던 얼굴은 다시 사색이 되어 허옇게 질렸다. 그 차가운 말투며 끌고가는 힘이며 아주아주 익숙하고 불길한 기운이다.
서랑 이청주. 밭다리 상거지보다 질긴 목숨으로 죽지도 않고 또 왔다.
"......"
"......"
"......"
"......"
"....저기..."
"왜."
"......몸은 좀..."
"괜찮다."
그러시겠지. 수한은 그 말이 목끝까지 찼으나 간신히 삼켰다. 더불어 이미 진즉에 식은 차를 또 들이켰다. 수한은 청주의 정자에 있었다. 한달 전쯤에 이곳에선 피도 흘렀고 사람도 다쳤다. 그 중에서도 제일 많이 다친 것이 이청주였다. 마냥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이가 약하게나마 맥이 뛰고 있었던 것은 기적이었다. 역시 피가 보통피가 아닌 모양인지, 왕실 종친 이자 연쇄살인범 이청주는 한달간 요양 겸 유배 겸 강화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무슨 유배가 한달만에 풀려. 수한은 투덜거렸으나 차마 입밖으로는 내지 못하고 또 후루룩 차만 마셨다. 그러니까 나는 왜 데려왔냐고. 속시원히 물을 수도 없는 것이 이청주는 또 파랗게 날이 선 검을 닦고 있었다. 입 한번 잘못 열었다가는 아직 보지 못한 장서들을 남기고 죽어야 할지도 모른다. 수한은 차라리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군."
"네?"
"춘화 말이다."
"아니 그것이.."
"그것도 남색을."
"네???"
"아까 그런 책을 보고 있던데. 촌뜨기인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엄청 개방적인 인사로군."
그런 내용이 있었던가. 수한은 당황하여 찻잔마저 떨구었다.
"아니오! 오해시오! 난 결단코 그걸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네가 남색을 하든 안하든 나는 신경쓰지 않네."
"아니오!!! 아니라고오!!"
"어쩐지 비실비실하고 천하의 계월이 옆에서도 별 관심이 없어 보이더라니."
아냐....아니라고 이 미친 왕실종친놈아. 수한은 그저 지친 얼굴로 허허 웃을 뿐이었다. 떨어진 찻잔을 도로 주워 상 위에 올리며 수한은 이렇게 된 거 어차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생각으로 물었다.
"저, 근데 나는 지금 여기 왜 있는 거요?"
"내가 데려왔지 않느냐."
"그러니까 날 여기 왜 데려오신거요?"
"필요하니까 데려왔지."
"무슨 일로.."
"혼자 차를 마시려니 심심해서 말이야."
왕실종친을 죽이면 일단 나는 사지가 찢어져 죽을 것이고 우리 어머니는 평생 관비로 허드렛일 하다 죽어야 하실 것이고 내 책들은 싹다 불에 타겠지?
"....그 그럼 찻주전자도 빈 것 같으니 저는 이만."
일어설 채비를 하는데 냉기가 목 주위에 서린다. 부지런히 닦고 아끼던 검의 날이 수한의 목으로 바짝 붙어 있었다. 조금 더 움직였으면 동맥이 잘렸을 것이다.
"앉아."
"네."
수한은 다시 앉아서 찻잔을 꽉 쥐었다. 아 차가 참 맛있구려. 좋은 차요. 하하하하. 평생 차만 마셔도 되겠소. 수한이 울 수 있다면 눈물로 다시 찻주전자가 찰 수도 있을 것이다. 수한이 앉자 만족했는지 청주는 다시 검을 닦았다.
"그 사이에 책은 많이 읽었나?"
"저야 뭐 늘 하는 일이 잡서나 뒤적이는 것인데요 무얼."
"내 이번 유배에서 얻은 것이 여럿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아주 귀한 것이지."
책때문에 사람도 죽이는 서랑이 말하는 귀한 것이라면 분명, 정체불명의 춘화집 따위가 아니라 정말 귀한 책일 것이다. 수한은 귀를 크게 열고 앞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무엇을 얻으셨소?"
이청주는 잠시 검을 내려놓고 수한에게 가까이 와보라는 손짓을 했다. 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던 수한은 목을 길게 쭉 빼고 그에게 물었다.
"무엇을 얻으셨소??"
가까이서 보니 이청주는 콧날에서 파리도 낙상할 정도로 날카롭게 생겼다. 늑대가 사람이 되면 그런 모양일 것이다. 눈은 위로 올라가 모양이 매서운데 한번 노려보면 오금이 저리게 생겼다. 그러나 그런 외모에도 불구하고 수한의 관심사는 온통 '귀한 것'에 팔렸다. 청주는 잠깐 웃었다. 아마 수한은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가 수한의 귀에 속삭였다.
"상촌(상촌 신헌:선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영창대군의 보필을 부탁받았다는 이유로 귀향을 가게되는 조선의 문장가. 훗날 인조반정 이후 배향된다.)의 야언집이요."
수한의 눈이 있는대로 크게 벌어졌다. 입도 이미 다물지를 못하고 떡하니 물러나 앉았다.
"그게 진짜요??? 그건 금서 아니요. 그것을 어찌 구하셨소? 상태는 어떠하오? 불에 타지는 않았소? 어디, 어디에 있소?"
수한은 정신나간 사람처럼 상을 뒤적거리며 찻주전자 아래에서 책을 찾고 있었다.
"그건 내 서가에 고이 모셔놨지."
서가 라는 말에 수한은 약간 정신이 들었다. 서랑의 서가라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책들만 모아놓은 천하제일의 보고로, 그곳에 들어가겠다는 것은 출입증으로 목을 내밀어야 하는 곳이었다. 순식간에 풀이 죽은 수한이 자리에 돌아와 앉으며 입맛을 다셨다. 청주는 차를 한 모금 하고는 목소리를 달리 해서 말을 붙였다.
"내 그것때문에 장 선비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청주는 수한의 눈이 또 동그랗게 벌어지는 것을 보았다.
"야언집이 두 권이다. 분명 하나는 진품이고 하나는 가품일터. 상촌의 작품을 잘 아는 이에게 감정을 해야하는데, 이것이 금서인지라 감정이 어려워.."
거기까지만 말했는데도 수한은 이미 상을 짚고 몸을 반쯤 일으켰다.
"제가 하겠습니다!! 저에게 시켜주십시오!! 잘할 수 있습니다!! 상촌의 작품이라면 외교문서 토막글부터 불쏘시개가 되어버린 재에 남은 글자까지 죄다 긁어모아 본 것이 나요! 제발 나를 시켜주시오!"
너무 쉽다. 이청주는 수한의 발갛게 달아오른 뺨을 보며 생각했다. 지식도 충만하고 나름대로 약은 인물이 책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칠푼이가 되어 버리니 그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청주는 내심 고민을 하는듯 고개를 갸웃했다.
"이 일이 워낙 중한지라, 일을 맡기면 내 집에서 먹고 자고 하숙하며 며칠을 보내야 하는데.."
거기까지 말했는데 별안간 큰 소리가 났다. 대문쪽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난다 싶더니 중문까지 열고 들어오는 자를 보니 분기탱천한 이 도사였다. 수한과 청주의 시선이 모두 정자 밖에 선 이도사에게 향했다. 청주의 하인이 난처한 얼굴로 달려왔다.
"제가 안된다고 말렸는데도 듣지를 않고.."
청주는 하인을 먼저 물리고 이 도사를 쳐다봤다.
"백주대낮에 의금부에서는 이 집에 무슨 일이시오? 나는 유배도 마치고 이제는 더할 죄도 없소이다."
이 도사는 청주를 노려보나 싶더니 별안간 수한에게 버럭 소릴 질렀다.
"장선비는 대체 뭐하는 사람이오!!"
수한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둘을 번갈아 보던 통에 갑자기 이도사가 자기에게 소릴 지르자 깜짝 놀랐다.
"아니 내가 뭘..뭘했다고.."
"정신이 있소 없소! 내가 마침 한미하여 온리전에 가보았기를 망정이지, 쥐도 새도 모르게 이 자 칼에 비명횡사 하고 싶소?"
이 도사는 무작정 수한을 끌어냈다. 어어, 이게 아닌데, 아니오, 이게 아니오. 수한은 이도사를 붙잡고 그렇게 말했지만 이미 또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오늘따라 왜이렇게 끌려다니는 거야. 내가 짐짝이야? 니들 내가 서자라고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수한은 어쩐지 냉한 표정인 청주에게 손을 흔들었다.
"서랑!! 그 일 내가 꼭 하고 싶소!!! 내가 하게 해주시오오오오 서라아아아앙"
수한의 외침은 중문 너머 또 대문 너머까지 아련하게 들려왔다.
"이도사 머리가 어떻게 된거 아니요? 내가 지금 얼마나 중요한 일을 부탁받았는데!!"
"장 선비야 말로 정신 차리시요. 그 자는 책때문에 사람도 죽이는 자요. 고작 한달 유배받은 것으로 모든 죄가 사하여진다고 생각하는 거요? 오늘도 바로 옆에 시퍼렇게 날이 선 검을 두고 있는데 장 선비는 그러고도 그 자 옆에 가고 싶으시오?"
이 도사는 전에없이 얼굴을 굳히고 흡사 친동생이라도 꾸짖듯이 엄하게 수한에게 따졌다. 이도사가 그렇게 나오니 막상 수한은 할 말이 없어졌다.
"아니 거 사람이 늘 그렇게 이상한 것 같지는 않고..또..귀한 책이.."
"그놈의 책!책! 정신 차리시오! 책보다 사람을 보란 말이오!!"
이 도사의 말에 꿀먹은 벙어리가 된 수한은 마침 집에 당도했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나오다가 수한과 이도사를 보고 아는 척을 했다.
"아이고 마침 오셨네. 제가 시원하게 토란국 끓였으니까 드시고 가셔요. 수한이 너 이놈은 얼른 어른 모시고 들어가 시중들어라."
아니 무슨 시중씩이나. 수한이 입을 삐죽이며 평상으로 이 도사를 데려가 앉았다. 어머니는 이 도사가 가져다 준 고기가 얼마나 실한지, 쌀은 또 얼마나 기름진지 찬양하느라 바빴다.
"아 그런거 그만 가져오시오. 내가 내 목숨 살리자고 했지 나라 위해서 한 일도 아니었는데."
수한은 괜히 또 면이 안 서고 쑥스러워 투덜거리며 말을 돌렸다. 이 도사는 자꾸만 고기며 쌀을 들고 와 사건 해결해 준 값이라고 둘러댔다. 의금부 도사 녹봉이 어느정도인지는 몰라도 마냥 얻어만 먹는 것도 힘든 일인 것이다. 이 도사는 '그런 생각이나 있으면 미친 놈 따라가지 말고 목 관리나 잘하시오'하고 면박을 줬다. 내내 투덜거리면서 두 사람은 평상에 앉아 토란국을 먹었다.
죽지도 않고 징하게 찾아오는 놈들을 상대하며 하루를 마친 수한은 이렇게 생각했다. 내일 날이 밝는대로 서랑을 찾아가야지. 이 도사야 바쁠테니 모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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