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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2차

미임파4 이단브란 / 사막



사막


빛이 점멸한다. 브란트는 그것이 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점멸한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위 아래로 흔들리고 점멸하고, 어쩌면 춤추는 것 처럼, 그것은 탱크일지도 모른다. 혹은 반군을 실은 트럭의 헤드라이트일수도 있고, 그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브란트는 가늠쇠 너머로 시선을 들었다. 확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또 마치 꿈이라도 꾼 것처럼 빛은 그 자리에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고운 모래가 함께 그를 쓸어내렸다. 그는 입술에서 모래를 뱉어냈다. 밤이라 다행인 일이었지만, 그래도 목이 말랐다. 수통에 물이 얼만큼 남아 있었지. 두 시간 전에 한 모금 마셨으니까 이제 반도 안 남았을 것이다. 브란트는 문득 어깨 아래로는 감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가 질 무렵부터 엎드려 있었으니 꼬박 네 시간 넘게 그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브란트는 천천히 다리를 구부렸다. 밝은 낮에 보면 꽤 웃길 것이다. 다행히 그는 사막의 칠흙같은 어둠 아래 엎드려 있었다. 낮은 모래언덕은 참호를 대신해서 몸을 숨기기에 적합했다. 브란트는 목에 건 스카프로 얼굴을 한번 쓸어 내렸다. 속눈썹 사이에 먼지가 앉고 숨을 내쉴 때 마다 흙냄새가 났다. 이런 것은 끝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아래에서 모래가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브란트는 전방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조용히 말했다.


"내려가."
"교대해야지."
"꺼져."


그러나 어둠 속에서 천천히 기어 올라온 머리는 내려가지 않았다. 그는 아주 천천히 올라와 브란트의 옆까지 올라왔다. 브란트 옆에 있는 망원경을 들어 앞을 본다. 브란트는 코를 한번 훌쩍였다. 쇠냄새가 난다. 피 냄새, 쇠 냄새. 그런 비린 냄새들이 섞였다. 브란트는 다시 조용히 말했다.


"내려가, 이단 헌트. 피 냄새나 숨기게 땅파고 들어가 앉아 있어."
"교대해야지. 엎드려 죽을 순 없잖아."
"저 앞이나 확인해. 저기 빛 말이야. 점멸하는 것 같은데."


이단은 망원경으로 앞을 확인했다. 저건 그냥 별이야. 확실해? 브란트는 못 미더운 투로 되물었지만 이단은 마치 낮에 바로 앞에 있는 물건을 본것처럼 확신에 차 말했다. 확실해. 브란트는 입을 다물었다. 옆에 있는 이단의 숨소리가 낮아졌다 높아졌다가 희미해졌다. 이단은 통신기를 꺼내 들었다. 손가락 두 마디정도되는 송신기가 그들의 위치를 본부에 알려주고 있었다. 브란트는 희미한 시야속에서도 그 손에서 번들거리는 액체를 구분했다. 이단은 또 그 손으로 수통을 건냈다. 


"마셔."
"됐어."
"두 시간 전에 한 모금 마셨잖아. 더 마셔."
"됐어."
"눈 앞이 잘 안보이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골로 가는 거 알지?"

브란트는 짜증이 났다. 피 냄새가 넘어와서 집중을 흐렸다. 아직 저 너머 어딘가에는 브란트와 이단을 쫓고 있는 반군들이 있을 것이다. 근데 왜 자꾸 방해하는거야? 브란트는 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그래 어쩌면 갈증때문일지도 모른다. 

"너나 조심해. 두 시간만 이대로 있어도 넌 죽을거야."
"그럴거야 아마."

브란트는 자세를 잡은 뒤 처음으로 눈을 돌렸다. 이단은 몸을 뒤집어 등을 바닥에 기댔다. 달빛에도 선명하게 배에 물든 핏물이 보였다. 브란트는 그 과정이 생각나지 않았다. 손쉬운 구출임무였다. 인원도 최소한으로 줄여서 이단과 브란트만이 투입되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기억나는 것은 기지가 폭발한 것, 이단이 자신의 머리를 붙잡고 누른 것, 이단의 배에서 뜨끈하게 쏟아지는 피 정도였다. 그리고 구출을 기다린다. 아마 오지 않을 거야. 브란트는 곱씹었다. 우린 구조되지 않을 거야. 사막에 버려진 채 죽게 될 거야. 먼저 이단이 죽고 그다음 내가 며칠 더 살다가 자살하겠지. 이단 헌트가 죽는다. 그 말이 현실감있게 들린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브란트."

갑자기 이단이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브란트는 자신이 너무 오랫동안 시야를 돌리고 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앞을 보았다. 아주 작은 빛을 노려보며. 

"왜."
"떨지마."

브란트는 개소리하지 말고 밑으로 얌전히 꺼지라고 말했다. 이단의 손이 브란트의 손 위에 얹혀졌다. 브란트는 왜 이단의 손이 그리도 제 손을 꽉 누르는지 깨닫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떨지마."

이단 헌트가 죽는다. 그 생각이 암담한 하늘에 가득차서 그만 브란트는 마른 눈을 질끈 감았다. 무슨 말을 하려면 지금 해야 한다. 그가 죽기 전에. 그동안 많은 무덤 앞에 서 봤으니 알겠지만, 묘비에 하는 말은 모두 부질없는 말 뿐이다. 죽은 사람보다 더 억울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이단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난 못 죽어. 송신기에서 번쩍이는 빨간 불빛이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가늠하고 있었다. 브란트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2014-10-12 도록님생일축하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