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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2차

미생 해준그래 단문 / 경계

그래 사수가 김대리가 아니고 강대리일때.





내가 대기업 상사에 입사한다고 했을 때 집안 어른들은 혀를 찼다. 왜 하필 상사야? 거기 말고도 갈 곳 많지 않아? 아버지도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이셨다. 신문지를 소리나게 접거나 이따금 혀를 찼다. 왜? 나는 혼자 있을 때 자문했다. 나는 열심히 했고 좋은 결과를 얻었는데 왜 아무도 인정하지 않지? 그리고 난 결코 답을 얻은 적이 없다. 답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참아낼 수도 없었고, 그런 반응들을 무시하는 편이 훨씬 빠르고 나에게 어울렸다.

"장그래씨 보고서 다 됐습니까?"
"아, 네, 대리님. 지금 파일 보냈습니다."
"1부 출력해서 저 주세요. 그리고 재무팀 연락해서 오후에 회의 일정 조정해주시고요."
"네, 대리님."

나는 사무실로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작은 머리를 향해 쉴새 없이 말을 건넸다. 건네고 보니 그게 말인지, 아니면 소리의 형태로 뭉쳐진 일더미인지 조금 헷갈렸다. 어쨌든 나에겐 그게 말인데, 듣는 사람에겐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장그래는 정신없이 손을 놀리고 통화를 하고 움직였다. 그는 부산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앉아 있을 때 집중력은 굉장해서 난 가끔 그를 쳐다본다. 그가 집중할 때에는 이상하게 사위가 조용해지는 것 같다. 그를 중심으로 공기가 빙빙 돌아서 온전히 그가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나는, 휘말리고.

"장그래씨, 또 틀렸네요. 마지막 표의 단위는 일별이 아니라 월별로 계산해야 합니다."
"아.... 죄송합니다. 대리님. 시정하겠습니다."

그는 이름만 부르면 내 옆에 와 서서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와 헛점들을 모두 받아들인다. 그는 실수에 변명하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까지 스스로의 일에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을 많이 보지 못했다. 굳이 찾자면, 내가 그렇다. 창백한 얼굴의 장그래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동안 나는 내 일을 한다. 낙하산 고졸 계약직 사원은 회사에서 일하는데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똑같은 일을 같은 기수의 다른 신입들이 뛰어다니면서 하고 있다면 그냥 열심히 하는 거지만, 장그래가 뛰어다니면 '발악'하는 것이 된다. 사람들은 절대로 같은 평가를 내려주지 않는다. 그들은 장그래를 모르니까.

"대리님 여기 수정해왔습니다."
".... 예 맞습니다. 수고했어요, 장그래씨."

수고했어요. 이 말 한 마디면 장그래는 씩 웃는다. 아무리 비난받고 무시받더라도 그저 수고했어요, 한 번이면 웃고 마는 것이다. 이상한 사람이야. 나는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다. 뭐든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 노력은 양과 질이 다른 신상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말간 얼굴로 내뱉는 포부는 다른 이들과 사뭇 달랐다. 절박함이 있었다. 이상하네. 그게 시초였던것 같다. 내가 종종 장그래의 옆모습을, 혹은 동그란 머리를 쳐다보며 중얼거린 것은. 이상하네. 
장그래가 철강팀에 소속됐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과장님은 난처해하셨다. 어떤 놈인지도 모르고, 낙하산 들이면 껄끄러운데. 과장님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장그래는 팀에 잘 적응했다. 과장님은 나에게 그의 교육을 일임했다. 덕분에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관찰할 수 있는 시간과 명분을 얻었다. 

석달의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장그래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선 나와 같지만 어떤 면에선 나와 전혀 같지 않다. 그게 더 날 궁금하게 한다. 장그래, 당신은 어떤 사람이야? 나는 퇴근길에 피곤이 묻어나는 작은 어깨를 만났다. 바로 앞에 있었다. 말을 걸면 바로 돌아볼 위치에. 문득 나는 그가 내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는 늘 열심히 하고 좋은 결과를 이루어내지만 아무도 그것을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모든 것을 무시해버리고 앞으로 달려온 나와 달리 그는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장그래씨."
그러나 지금 내가 그를 불러 세우는 것은 단순히 퀴즈의 답을 찾기 위함은 아니다. 동그란 눈이 천천히 돌아 나에게로 온다. 대리님. 휘면서 웃는다. 웃는다.
"나랑 술 한잔 합시다."
-나에겐 장그래가 그 어떤 문제보다도 풀고 싶은 숙제가 되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