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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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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맨 해리+에그시 / 몽유 (단문)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뿌연 안개속에 있었다. 두 손을 늘어뜨린 채 눈을 힘을 주고 살피니 곧 안개의 틈새로 길이 보였다. 십자로. 안개 사이로 마치 허공에 떠있는 것같은 가로등 빛이 덜익은 오렌지색 연무를 뿌리고 있었다. 야심한 혹은 너무 이른 거리. 나는 뺨에 와닿는 축축함에 새삼 놀란다. 공기는 습기로 가득하고 나이만큼이나 무겁고 차갑게 달라붙는다. 나는 내 손이 비어있음을 깨닫는다. 무엇을 하고 있었지. 혹은 무엇을 하려고 했지. 손금은 나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나는 아마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다. 우산이, 영화처럼 길 위에 등장했다. 검은 우산이 우산으로 쓰인 일이 있던가? 그 전에 내가 저 우산을 알던가? 의문을 담아 쳐다보니 우산은 어느새 내 머리위로 드리운다. 나는 ..
참형사 / 어둠과의 조우 마티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진 뒤였다. 집의 창문은 너무 어두워서 마티는 러스트가 그 방랑벽을 못 이기고 루이지애나 주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있을거라 생각했다. 현관문을 열쇠로 따고 들어가자 먼지냄새가 풀풀 나는 집이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있었다. 현관문을 닫자 곧바로 마티는 어둠 속에 떨어졌다. 벽에 있는 스위치를 찾아 더듬으며 투덜거리는데 불쑥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정전이야" "이런 제기랄. 놀랐잖아! 대체 이 어두컴컴한 곳에서 뭘하고 있는거야?" 마티는 어둠 속이라 자신의 얼빠진 얼굴을 러스트가 보지 못한 걸 다행으로 여겼다. 스위치가 손에 닿아 달칵거려봤지만 전등은 아무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앉아있었지. 어두우니까." "넌 진짜 또라이새끼가 맞아." 문을 좀 열어놓는다거나 아..
킹스맨 해리+에그시 / 거리의 신사 킹스맨은 킹스맨인데 설정 쪼오오오금 다른... 렌트보이 에그시.. 거리의 신사 차창 밖에 소년이 서 있었다. 손을 눈썹 위에 붙이고 창문을 들여다보는 모습은 다분히 불량스러웠고 심지어 조금 친근하게 느껴질정도였다. 해리는 창문을 내렸다. 갑자기 내려간 창문에도 소년은 놀라지 않았다. 워우, 하고 한번 뒤로 물러났지만 곧 다시 차 지붕에 손을 얹고 차 안쪽으로 몸을 숙였다. "딱봐고 공사가 다망하고 귀해보이는 분께서 뭐를 찾아 여기까지 오셨으려나. 말만 해요. 다 구해다 줄테니까." 창문을 내리고 자세히 보니 소년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 큰 성인 남성 취급을 하기에는 뺨이나 콧잔등에 덜 자란 심성이 묻어나왔다. '소년'은 지붕을 노크했다. "약, 사람 다 있어요." "게리 언윈을 찾아 왔는데" "게리요?..
미생 석율그래 / 아무것도 아니지만 미생 전력 키워드 '옆모습' 아무것도 아니지만 안녕. 고갤 들었더니 앞에는 한석율이 서있었다. 웃는 얼굴은 멀쩡했지만 귀도 목도 시뻘개진 것이 회식을 한건지 접대를 한건지 술을 옴팡지게 들이붓고 나타난 것은 틀림없었다. 네네. 장그래는 손등으로 입가를 닦으며 허릴 폈다. 방금 전에 벽 붙잡고 토하고 있던 장그래도 취해 있기는 매한가지인 밤이었다. 고깃집과 호프집이 늘어서있는 번화가 사이 골목에서 두 취객이 우두커니 섰다. 가방이 어딨더라. 더듬더듬하니 어깨에 잘 걸려있다. 그래 가방은 잘 챙겨야지. "회식 했어??" 한석율은 몹시도 즐거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크고 높은 소리로 물었다. 장그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마 주위가 소란스러워서 그 모양일 것이다. 술에 취해서 시계 바늘이 파도처럼 흔들리는 거..
킹스맨 팅테AU 해리+에그시+멀린 / 원탁의 남자들 + 저번에 썼던 '안개 속으로'와 꼭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같이 보시면 이해가 더 잘되는...그런.. 이런거 뭐라고 하지 한국말 어렵습니다.+빌 헤이든=해리 하트 / 짐 프리도 = 멀린 / 빌의 '어린 남자'= 에그시 언윈 팅테AU 해리 하트가 뛰어난 언변을 가졌다는 것은 말하기 조차 아까울 정도로 뻔한 사실이었다. 그는 혓바닥을 교묘하게 써서 상대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쓸데 없는 것을 쫓아가도록 만드는데 선수였다.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한 주제가 나오면 그는 태연하게 찻잔을 한번 기울이고 차 한 모금을 다 삼키기도 전에 주제를 바꿔버렸다. 에그시는 그에게 '뱀같다'고 지칭했고 해리는 '능숙한 편이지.'라는 또 다른 말로 넘어갔다. 그런 해리 하트가 친구 이야기랍시고 꺼낸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었다. 자..
팅테솔스 리키피터 / 집 집 피터가 돌아올 때쯤이면 집은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매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번. 피터가 볼 때 리키 타르는 자살의 방법으로 질식사를 택한 듯 했다. 피터가 하는 일도 매번 똑같았다.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한숨을 쉰 뒤 창문을 열고 난 뒤 그가 삐딱하게 앉아있는 의자 다리를 걷어 찼다. 악. 리키는 매번 단발마의 비명을 질렀으나 의자는 그대로 있었고 그도 넘어지지 않았다. 그는 피터가 돌아올 때 문을 열어주지도 않았다. ‘꼭 당신이 기르는 개같잖아요. 싫어요’ 실실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리키를 보며 피터는 하고 싶은 말을 참았다. 문 열어주는 개가 있다면 그걸 키우고 널 갖다 버릴거야. 조지가 서커스의 탑에 올라간 뒤 모든 문제는 해결됐다. 서커스는 새로운 심장을 맞이해 힘차게 돌아갔고 피터도 ..
스카이폴 00Q / Die another day Die another day 의식은 솜처럼 젖어 가물거렸다. 아직 눈을 감지 않은 것은 복부를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통증덕분이었다. 총알이 팝콘처럼 튀던 전장은 저물었고 나는 피를 흘린 채 죽어가고 있다. 어떻게 죽을 것 같아요? 태너였나. 그렇게 물었다. 아마 태너일거야. 난 뭐라고 대답했지. 난 안 죽어 였던가 하는 시시한 대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상처를 손으로 틀어막고 흙투성이 바닥에 누워 생각해보니 어쩌면 이게 나에게 맞는 죽음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흙바닥 속에 혼자 저물어가며, 피투성이로. 적어도 슈트는 입었잖아. 내가 좋아하는 타이도 했다고 그럼 됐지. 난 해내지 못할거야. 배를 누르고 있었지만 뜯겨 나간 것 같았다. 란손처럼, 난 안될거야. M은 내 새로운 부고를 작..
신세계 청+자성 단문 모음 1 나약한 인간 이자성은 죽었다. 그 날 그 병실, 산소호흡기를 그러쥔 채 손을 움직이지 못했던 그때, 정청이란 이름의 남자의 숨이 파르르 넘어갈 때 잠들듯이 가버린 것은 정청만이 아니었다. 나약한, 배신자, 이자성도 그때 죽었다. 2 본래 정청이란 인간은 구제불능이었다. 심장이 목 밖으로 튀어 나갈듯이 긴장한 채로 수술장에 들어섰던 그 첫 대면에 피 칠갑을 한 채 이마 위에 찢긴 상처가 아프다고 난리법석을 떠는 그를 처음 봤을 때 이자성 머릿속엔 빨간 원숭이가 떠올랐다. 하도 난리를 해서 말도 못 붙이고 서 있는데, 정청이 중국말로 욕을 했다. 대일밴드든 스카치테이프든 좀 가져와보라고 쌍것들아. 거의 반사적으로 이자성은 거기에 대답했다. 저 하나 있습니다. 중국어였고, 그 말에 정청이 쳐다봤다. 눈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