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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2차

팅테솔스 리키피터 / 집





피터가 돌아올 때쯤이면 집은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매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번. 피터가 볼 때 리키 타르는 자살의 방법으로 질식사를 택한 듯 했다. 피터가 하는 일도 매번 똑같았다.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한숨을 쉰 뒤 창문을 열고 난 뒤 그가 삐딱하게 앉아있는 의자 다리를 걷어 찼다. . 리키는 매번 단발마의 비명을 질렀으나 의자는 그대로 있었고 그도 넘어지지 않았다. 그는 피터가 돌아올 때 문을 열어주지도 않았다. ‘꼭 당신이 기르는 개같잖아요. 싫어요실실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리키를 보며 피터는 하고 싶은 말을 참았다. 문 열어주는 개가 있다면 그걸 키우고 널 갖다 버릴거야.

 

조지가 서커스의 탑에 올라간 뒤 모든 문제는 해결됐다. 서커스는 새로운 심장을 맞이해 힘차게 돌아갔고 피터도 서커스로 복귀했다. 그러나 단 한 명, 리키 타르만은 제 자리를 찾지 못했다. 사실 그는 반쯤 미쳤다. 프랑스에서 돌아온 그를 만났을 때 피터는 생각했다. 드디어, 완전히 미쳤군. 리키는 쉴 새 없이 화를 내고 술을 마시더니 갑자기 웃었고 바닥을 굴렀다. 조지가 그를 만났다.


한 시간의 면담 끝에 조지는 그를 정의내렸다. '주시가 필요한 불안한 상태' 왜인지는 굳이 설명도 필요 없었다. 이리나. 그녀는 죽었다. 그리고, 약아빠졌으나 순진했던 리키 타르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그뿐이었다. 그게 뭐 어쨌다고? 피터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피터의 세상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하나의 일 다음에는 또 다른 일등이 병정처럼 죽 늘어서 있었다.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결코 인생의 단 한 부분에 모든 걸 걸지 않았다. 무모함은 피터 긜럼과 거리가 먼 단어였다. 그건 리키의 언어이자 리키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리키의 거처를 결정하는 일에, 피터의 이해는 필요치 않았다. 조지가 직접 피터에게 그를 맡겼다. 피터는 그 방식이 매우 약았다고 생각했다. 조지는 피터가 리키와 상극인 것을 알았다. 동시에 그가 내리는 명령을 피터가 거절하지 못할 것도 잘 알았다.

 

"너서리에 보내죠"

 

피터의 반항은 그게 최선이었다. 조지는 보다 간단하게 그를 너서리에 보낼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 서커스 내부에 퍼져있던 이중첩자의 일은 극비였다. 그 핵심을 알고 있는 리키를 무작정 너서리에 보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자네는 그를 잘 알잖나." 조지는 그렇게 말을 끝냈다. 내가? 내가 리키, 타르를 잘 안다고? 그 제멋대로인 망나니를? 피터는 면담을 끝내고 나오면서 자문해보았다. 아니다. 리키 타르는 그에게 풀 수 없는 매듭과도 같았다. 그런 연유로, 리키 타르는 피터의 집에 '유배'되었다. 피터의 집에 대해서는 프랑스로 가기 전에 며칠 머문 적이 있어서 따로 설명해줄 필요는 없었다. 아니 사실 그에게는 말을 걸 필요가 없었다. 못 알아듣는 것 같았으니까. 그는 끊임없이 딴 소리를 하고 히죽거렸다.

 

피터는 퇴근길에 식료품을 샀다. 평소보다 두 배의 베이컨을 주문하자 가게주인은 처음엔 파티를 하냐고 물었다가 나중엔 은근히 결혼했냐고 물었다. Nope. 피터는 효과적으로 잘라 말했다. 그보단 유기동물을 부양하는 쪽에 가깝죠. 식료품을 약간 더 사는 것 외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리키는 진상을 떨며 그곳에 있었지만 그의 존재의 무게 자체는 유령과도 같았다. 같은 집에 살면서 그는 거의 먹지 않았다. 그래서 보기 좋은 체격이었던 리키는 점점 말라갔다. 유일하게 피터가 신경써야하는 것은 담배였다. 피터는 퇴근길에 담배 두 보루를 샀다. 매일. 그걸 하루에 다 피진 않았지만 그렇게 사지 않으면 금방 떨어질 것 같았다. 피터의 집에선 술도 약도 금지되었기 때문에 담배는 리키의 유일한 자유였다. 리키는 담배를 종교처럼 다뤘다. 맹신했으며 그게 없으면 죽을 것처럼 굴었다. 뺏어본 결과 그냥 담배를 주는게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뒤 피터는 아무 소리도 안했다. 리키는 마치 반항하듯 온 집안을 너구리굴로 만들었다.

 

피터는 간단히 손을 씻고 나와 냉장고에 넣어둔 계란과 베이컨을 꺼냈다. 리키는 아직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엔 해바라기처럼 솟은 담배 꽁초가 가득했다.

 

"그거 압니까 미스터 긜럼. 당신 집엔 유령이 살아요. 소름끼치는놈이죠"

 

소금을 어디에 뒀더라. 피터는 찬장을 열었다. 피터가 대답하지 않아도 리키는 혼자 떠들었다. 그가 대답을 기다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나는 여기 이렇게 앉아서 똑똑히 그 놈을 보죠. 저 복도 끝에서부터 제 다리를 질질 끄며 나타납니다. 무슨 계란 썩은 냄새를 내면서요. 나는 초연하게 버티죠, 남자니까요. Bloody hell, 사실 나도 무섭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유령한테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그냥 닥치고 다리에 힘주고 앉아 있는거죠"

 

리키가 낄낄 웃었다. 요리가 끝났다. 피터는 베이컨 두 장과 끝이 좀 탄 에그 스크램블을 두 접시에 각각 담고 하나를 리키 앞에 내려놨다.

 

"그 역겨운 재떨이 좀 치워"

 

리키는 순순히 그렇게 했다. 그의 손이 덜덜 떨렸다. 니코틴 과잉 이었다. 피터는 맞은편에 앉았다. 창문을 열어뒀지만 집안에 배인 담배냄새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베이컨을 씹으며 피터는 담배를 씹는 기분을 만끽했다. 리키는 여전히 유령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접시를 제 포크로 휘저었지만 전혀 먹지 않았다.

 

"먹어, 리키 타르. 너는 내 집에 두 번째 유령으로는 영 낙제야."

 

피터는 그렇게 말했다. 여자들이 좋아한다던 리키 타르의 반반한 얼굴은 상당히 빛을 잃었다. 뺨이 마르고 눈이 푹 꺼졌다. 리키가 유령이야기를 할 때마다 피터는 그가 거울을 본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요!"

 

리키가 식탁을 내리치며 웃었다.

 

"대장도 본거죠. , , 그 유령 말입니다. 얼굴이 잿빛인 그 망할 망령 말이에요."

 

리키의 뺨이 파르르 떨렸다. 피터는 스크램블을 먹어 치우는 중이었다.

 

"너무 두려워요. 그것이요." 두렵지 않으십니까, 미스터 긜럼? 리키가 속삭였다.

 

"이리나가 죽은 걸 알고 있었잖아요. 미스터 피터 긜럼. 당신은 알고 있었죠."

 

피터는 어쩔까하다가 계속 무시하기로 결심했다. 알고 있는 줄 몰랐는데. 리키는 갑자기 제정신으로 돌아온 사람처럼 진중했다. 그의 손 끝은 계속 떨렸지만 그 눈만큼은 똑바로 피터를 보고 있었다.

 

나만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 멍청한 리키 타르만요. 모두가 나를 무시하죠.”

 

리키가 식탁 위에 손가락을 더듬거렸다. 담배를 찾는 것이 분명했다. 피터는 새로 산 담배 포장을 뜯어 그에게 주었다. 리키는 성급하게 담배를 받아 물었다. 피터는 천천히 성냥을 그어 그에게 담뱃불을 붙여 주었다. 리키가 손바닥으로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그 끝에 걸린 빨간 담뱃불이 위협적으로 흔들렸다.

 

미스터 긜럼. 당신은 나를 이해할 수 없어요.”

사실 이해해보려 한 적도 없네, 리키.”

맞아요. 그렇죠. 그러나 당신은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합니다. 당신과 나는 너무 다르니까요. 그러나 이리나는 나와 같았죠. 불쌍하고 아름다운 카나리아. 그녀가 무슨 잘못을 했죠, 미스터 긜럼? 아무 잘못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이 나라를 사랑했어요. 지긋지긋한 눈발에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을 뿐이죠. 나는 그녀에게 약속했어요, 피터, 약속했다고요. 반드시 이 곳으로 데려오겠다고. Oh, God.”

 

음식은 이미 차게 식었다. 스크램블은 다시 한 덩어리의 계란이 되어 있었고 베이컨은 딱딱하게 굳었다. 피터는 오늘도 음식을 버리다니 낭비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세상이 뒤집어 졌다. 리키의 두 손이 피터의 멱살을 잡고 있었고 피터는 바닥에 나뒹구는 접시와 포크, 베이컨과 계란 덩어리를 보고 리키가 식탁을 엎으며 자신을 그대로 땅에 내다 꽂았다는 걸 알았다. 어쩐지 뒷머리가 몹시 아프더라니. 피터를 내리 누른 리키가 피터의 목을 조를 듯이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피터는 리키의 팔만 붙잡은 채 가만히 있었다.

 

대체 그녀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왜요. 왜 죽어야 했죠.”

그 여자를 죽인 건 서커스가 아니야, 리키 타르. 카를라가 죽인거지. 그녀는 그 곳에서 배신자였어. 그리고 그땐 우린 그녀의 존재조차 몰랐어.”

틀렸어요, 피터, 틀렸다고요. 그녀를 죽인 게 뭔지 아십니까. 그녀를 죽인 건 카를라가 아닙니다. ‘사람이에요, ‘사람이 그녀를 죽였어요. 사람들의 추악한 이기심과 은밀한 욕망, 저 이데올로기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천박한 이론들이 그녀를 죽였단 말입니다. 나는, 오 이런 맙소사, 나는 그녀를 구했어야 했어요. 내가 그녀에게 방아쇠를 당겼어요.”

 

리키는 점점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으로 지껄였다. 종국엔 그 떨리는 손으로 피터의 멱살을 쥔 채 짐승 같은 소리로 울었다. 무겁다. 피터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제야 집안의 담배연기가 빠져나가고 있음을 느꼈다. 리키 타르는 피터를 올라탄 채 그의 가슴에 머릴 박고, 그 자신이 볼품없는 짐승의 꼴로 소리내어 울었다. 그를 그렇게 안달하고 미치게 만드는 유령은 분명 이리나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고문당한 다리를 절고 관통 당한 머리의 상처를 드러낸 채로 리키 타르를 맴돌겠지. 죄책감이 빚은 환상. 리키 타르는 충분히 그럴 인간이었다. 제 손으로 끊은 사람 목숨 수도 적지 않은 주제에, 걸맞지 않는 순박함이 있었다. 피터는 아마 그 되먹지 못한 순박함에 평생 적응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필요한 순박함이기는 했다. 때문에 가끔은 지켜져야할 얇은 유리 상자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리키 타르는 예민하고 불안한 남자이고, 그가 겪는 모든 정신적 고통을, 피터 긜럼은 열에 하나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피터는 리키를 참고 있었다. 그게 피터 긜럼의 사과방식이었다. 제정신을 차릴 때까지 그를 참아내는 것. 그러나 가끔 소리내어 말해도 괜찮겠지.

 

미안해, 리키. 모두를 대신해 사과하지. 책상 위에서 서류로 자네와 자네의 카나리아를 지워버린 그 모든 권력자들을 대신해서 말일세.”

 

공식적인 건 아니지만. 사족을 붙이며 피터는 천장을 보고 말했다. 가슴팍이 축축했다. 1분만 기다렸다가 뺨을 치고 밀어낼 참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갔다.

 



+ 이 단문을 기반으로 Home이라는 이야기를 썼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