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 another day
의식은 솜처럼 젖어 가물거렸다. 아직 눈을 감지 않은 것은 복부를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통증덕분이었다. 총알이 팝콘처럼 튀던 전장은 저물었고 나는 피를 흘린 채 죽어가고 있다. 어떻게 죽을 것 같아요? 태너였나. 그렇게 물었다. 아마 태너일거야. 난 뭐라고 대답했지. 난 안 죽어 였던가 하는 시시한 대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상처를 손으로 틀어막고 흙투성이 바닥에 누워 생각해보니 어쩌면 이게 나에게 맞는 죽음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흙바닥 속에 혼자 저물어가며, 피투성이로. 적어도 슈트는 입었잖아. 내가 좋아하는 타이도 했다고 그럼 됐지. 난 해내지 못할거야. 배를 누르고 있었지만 뜯겨 나간 것 같았다. 란손처럼, 난 안될거야. M은 내 새로운 부고를 작성해야겠지. 제발 쓸만한 걸로 만들어주면 좋겠는데.
오른손에는 아직 월터 ppk가 쥐여있었다. 이제 고요하고 모두가 죽었으니 그만 놓자. 그러나 굳은 손 때문에 그것도 맘대로 되지 않았다. 어쩌면 지옥에서 필요할지도 모르지. 또 반납안했다고 잔소리하겠군 난 그 생각을 하며 웃었다가 통증에 눈을 찡그렸다. 그리고 누가 내 손 위를 꾹 누르는 느낌에 욕이 나왔다. 죽으려면 곱게 죽는 시나리오가 좋을텐데 그러나 촉감은 환상의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난 억지로 눈을 떴다. 뻗친 머리, 구부정한 등, 안경따위가 보였다. 오 맙소사.
"설마 장비 회수하러 여기까지..?"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내 배를 누르고 옆에 있는 하얀 상자를 열었다. 내 손위로 겹친 마른 손이 떨렸다. 오 맙소사 넌 여기 왜 온거야. 여긴 빌어먹을 영국도 아니라고.
"Q."
"..."
"Q."
"Shut up, 007."
"Q"
나는 끈기있게 불렀다. 그는 붕대를 꺼내고 지혈대를 꺼내고 부산스럽게 굴었지만 흐린 눈으로 봐도 엉망이었다.
"Q, 자네 꼴이 엉망이야."
"당신보다는 나아요"
"지금은 반박 못하겠네. 설마 네가 후송팀이야?"
"그래요"
"맙소사, 난 죽겠군"
그는 대꾸하지 않고 셔츠 -"300달러짜린데"-를 찢고 내 손을 치우고 환부에 지혈제를 뿌렸다. 그걸론 안 돼, Q, 그걸론 안 된다고. 거즈를 내 배위로 겹쳐 누르고 그는 고갤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조금만 기다려요 의료팀이 올거니까"
"그 전에 죽겠는데"
"빌어먹을, 헛소리 그만 하고 입 다물어요. 말할 때마다 피가 더 나온다고요"
"하지만 말을 안 하면 잠들거고 그러면 다신 눈을 못 뜰거야"
나는 그의 뻗친 머리, 자켓 안에 구겨진 셔츠깃, 시계도 차지 않은 손목을 봤다. 키보드 위에나 얹혀져 있던 손에 피가 묻었다. 별로 보고픈 광경은 아니었다.
"Q, 궁긍한게 있어."
"그럴 때가 아니에요."
"궁금한게 있어."
"그럴 때가 아니라고요."
"Q, 날 위해 비행기를 탔어?"
여긴 미국이잖아 기차도, 차도 못오고 배였다면 내년쯤에나 도착했겠지. 그러니 Q, 말해봐, 어제 내가 이 지역에 고립됐을 때 비행기를 탔어? 나를 위해서? 그는 대답하지 않고 내 배를 누르는 지혈대를 더욱 세게 눌렀다.
"이거 아주 영광인데, 정말이야. 난 이 곳에서 자넬 볼 거라곤 생각도 못했거든. 기껏해야 런던의 그 음습한 MI6본부나 자네의 엉망인 집이 아니라면 말야. 내 말은, 늘 찾아간 건 나였잖아. 그건 내가 전문이지. 누가 날 찾아온 적은 없어. 난 그런 방문을 받아 본 적이 없어. 물론 날 죽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문을 두드린 사람은 많지만 도어놉을 두드리며 차 한잔 하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Q, 그러니 자네가 날 위해 여기까지 날아와줬다면, 그것도 비행기로, 내가 얼마나 기쁘겠어."
"Shut up, Mr.Bond. please stop talking."
그가 말할때마다 손끝으로 진동이 느껴졌다. 그는 떨고 있었다. 왜 떨어, 피 흘리며 죽어가는 건 난데. 젠장 춥군.
"죽기에 나쁘지 않은 날이야. 날씨도 좋고 옆에 목격자도 있고."
"죽고 싶어요, 007?"
Q가 으르렁거렸다.
"글쎄 생각 안해봤어 사실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어 하지만 살고 싶다고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으니까,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상관없는거잖아."
"역설하지마요"
"진짜야. 미련은 없어."
미련이 없다니 정말 늙은 개같잖아.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장이 찢어지는 건지 이미 찢어진 건지 통증은 이미 극에 달해서 차라리 감각이 없었다 Q는 다시 날 눕히려다 결국 자신의 다리로 내 등을 받쳐주는 것에 만족하고 말았다.
"봐, Q, 하늘 좀 보라고, 저기 창문 너머 말이야. 미국인들은 늘 저런 햇빛을 보고 사는 모양이야, 나 같으면 눈이 멀겠군."
Q는 내 말을 듣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통신기에 뭐라 소릴 지르고 있었고 난 그 목소리 음량이 제멋대로 작게 들렸다 다시 크게 들렸다.
"Q,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고 대답해봐"
"기분 나쁠 말은 아예 안 하면 되잖아요"
"혹시 내가 죽으면 울거야? 내 무덤앞에서?"
"아니요"
"야박하네. 인공눈물이라도 넣고 우는 시늉이라도 해줘."
"내가 왜요" "아무도 안 울 것같은데, 그럼 장례식이 너무 초라하잖아. 누가 올지도 모르는데. 누구 하난 울어줘야지, 부탁할게 자네뿐이야."
"그걸 지금 유언이라고 남겨요?"
"그래 유언이야. 내 장례식에 와서 울어, Q, 크게 울진 마 촌스러우니까"
나는 내 배를 누르는 그 피투성이 손을 꽉 잡았다 아파요? 라고 묻는 Q의 말에 난 웃었다.
"당연히 아프지 배가 상어한테 물어뜯긴 느낌이라고 내가 지금 정신을 놓지않는 건 내가 고도로 훈련된 더블 o 섹션 요원이기 때문에-"
"살아남아요, 본드."
"뭐?"
나는 내 말을 자른 Q에게 물었다
"살아남으라고요"
"날 본드라고 불렀지, 그렇지?"
"당신은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이니까 상관없다면서요 하지만 나는, 당신이, 살아남는 쪽이 좋겠어요"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생각해봤으나 이 경우에 맞는 비꼬기 기술이나 농담이 생각나지 않아 어물쩍 넘어가기로 했다.
"왜?"
Q는 날 보고 있지 않았다 고갤 돌리고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Q, 날 봐."
그는 여전히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당신은 미련이 없지만 난 있어요 아주 많이요"
"자네는 컴퓨터 코드, 괴물같은 숫자공식들 외엔 관심없잖아"
"맞아요"
"근데 왜 내가 죽는데 미련을 가져"
"그러게요"
"Q, 자네 고장났군"
"맞아요"
Q는 내 배를 누른 채 고갤 숙였다. 얼굴이 아주 가까워진다고 생각했는데 까슬한 입술이 닿았다. 아주 서투르고 제멋대로인 키스였다. 키스라기 보단 그냥 입술이 닿은 수준이었다. God, 정말 못한다. 내가 제대로 보여줘야 하는데, 젠장 몸이 너무 힘들어서 여력이 없었다. 나뭇잎처럼 가벼운 입술이 떨어지고 난 뒤 Q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안경 너머로 습기가 차고, 눈가는 번져 있었다.
"Q, 왜 울어?"
"당신이 죽어가니까요, 더블오세븐, 당신이 죽어가고 있어요"
"울지마, 난 전부터 우는 여자는 그냥 놔두지 못했는데, 이제보니 우는 남자도 그냥 못두겠어, 울지마. 미안해, 안 죽을게"
Q는 울면서도 실소를 터뜨렸다.
"그게 맘대로 돼요?"
"돼. 내 취미가 부활이니까"
"입술에 핏기가 없어요, 죽어가고 있어요."
"자네 입술은 아주 붉어"
"장난하지마요, 그럴 때가 아니잖아요."
"Q, 그럴때라는 건 없어 그냥 하거나 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라고. 그러니 다시 한번 고개 좀 숙여주겠어, 좀 더 깊숙이."
Q는 순순히 그대로 해줬다 나는 아직 피가 닦이지 않은 손을 들어 그 뺨을 쥐고 키스했다. 길고 진득한, 어른다운 키스였다. 간격이 벌어지고 난 뒤에 내가 말했다.
"내가 살아남으면 자넬 고쳐줄게"
"고장난 컴퓨터를요?"
"아니 그 이상한 키스실력을. 중학생보다 못한."
Q는 웃었다. 그러나 울었다. 나는 눈이 감겼다. Q가 부르는 소리가, 내 얼굴을 흔드는 느낌이 아득해졌다. 아냐, Q, 난 깨어날거야. 난 아무래도 좋지만, 자네가 원한다면, 살아남아야지. 난 살아날거야. Q가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데, 내가 못 할것도 없지. 그러니 울지마. 나는 잠이 들었다.
'연성 > 2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킹스맨 팅테AU 해리+에그시+멀린 / 원탁의 남자들 (0) | 2015.02.25 |
---|---|
팅테솔스 리키피터 / 집 (0) | 2015.02.24 |
신세계 청+자성 단문 모음 (0) | 2015.02.24 |
신세계 청자성 / 염 (0) | 2015.02.24 |
스카이폴 00Q(19금) / 밤 (0) | 2015.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