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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2차

신세계 청자성 / 염






여름날씨답게 변덕스러운 비가 절간 마당을 온통 진창으로 만들던 날, 장의사 이씨한테는 그날이 조금 별스런 날이 되었다. 연락을 받고 절에 도착해보니 준비된 재료가 하나같이 억 소리나는 고급품이라 유난한 사람이 죽었구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절에 으리으리하게 상을 차리는 사람치고 돈 없는 이는 없으니 그건 그렇게까지 별스런 일은 아니었다. 다만 별스러웠던 것은, 유족이 직접 염을 하고 싶다고 나선 것이었다. 요즘은 소염작업부터는 유족들이 보는 앞에서 진행하니까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이씨는 유족에게 그렇게 말했다. 무슨 변덕인지는 몰라도 필시 자신이 대충 할까봐 그런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 유족, 죽은 사람의 동생된다나 부하가된다나 하는 사람은 '고갤 젓더니만 하고싶습니다' 라고만 했다. 거참 각별하기도한 형제지간이었는가보다. 


결국 그래서 이씨는 그 유족과 함께 염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시신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수도 있으니 언제든 얘기해주세요. 유족은 고개만 끄덕였는데, 정말 말을 할 것인지 걱정은 그쯤 그만두라는 무언의 표시인지 알 수 없었다. 절에 차린 염습실 앞에서 이씨는 한 차례 염불을 외며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었다. 시신은 작업대 위에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사람이 죽으면 몸이 쪼그라들거든요. 이걸 펴는 작업까지는 이미 마친 겁니다. 이씨가 부단히 설명을 했다. 시신은 몸에 흉이 많았다. 이씨는 유족의 안색을 한번 살폈으나 별로 놀라지도 않는 무던한 얼굴이어서, 어쩐지 절간 앞에 줄줄이 늘어서던 검은 스용차들이 오버랩되어, 역시 범인들은 아니구나 싶었다. 이씨가 탈지면을 뜯었다. 이걸로 몸을 깨끗이 닦아드릴겁니다. 제가 해도 될까요? 유족이 말했다. 괜찮으시겠어요? 아뇨, 괜찮을 일은 이미 하나도 없는걸요. 이씨는 그 유족이 정신이 이상한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에게 시범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솜과 살이 닿는 소리는 영 서걱해서 마른 행주로 탁자를 닦느니만 못했다. 유족은 의외로 눈쌀 한번 찌푸리지 않고 묵묵히 시신을 닦았다. 얼굴, 목, 손가락까지. 이씨를 따라 하는 것이 제법 눈썰미도 있고 손도 야무진 사내였다.


마음을 놓은 이씨가 한지를 가져왔다. 가볍고 부드럽기가 비단같은 고급 한지였다. 수의는 거칠기 때문에, 행여 살갗이 쓸릴까봐 이렇게 한지로 감싸줍니다. 유족은 이씨를 도와 시신을 살짝 들어올리거나 부분부분 한지가 잘 감겼는지 확인했다. 시신은 이제 흰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이씨가 상자에서 수의를 꺼냈다. 향내가 나는 최고급 삼베수의였다. 땅에 들어가면 잘 썩을 것이다. 이씨는 버선부터 꺼내 시신의 발에 씌웠다. 그때 내내 조용히 이씨를 도와주던 유족이 한 마디 했다. 그 버선은 안 신기면 안 됩니까? 이씨는 평생 장의사 일을 해오면서 그럼 말은 처음 들어서 그만, 세트인데요? 하고 되묻고 말았다. 그리고 곧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래도 가시는 길에 버선도 신기지 않고 어찌 보냅니까했다 그러자 유족은 갑자기 웃었는데, 이씨는 그제야 그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이마엔 식은땀마저 촉촉히 비친다는 걸 알았다. 그런 안색을 하고 갑자기 웃으면서 말하는 내용이 가관인데, 이 사람은 버선발이면 덥다고 성질을 부려 저승으로 못 갈지도 몰라요 였다 그러더니 수의에서 버선을 꺼내 돌돌 말아 저가 챙겼다. 이씨는 할 말이 없어 입만 턱 벌리고 있다가 어쩔 수 없이 그 다음으로 홑바지를 입히고 두루마기를 입히고 했다. 


유족은 또 마냥 잘 도와주다가 한다는 말이, 사람이 이렇게 딱딱한 것은 처음 봅니다 라고 했다. 이씨는 말이나 붙여볼까하고 장례는 처음이오? 하고 물었다. 부모님은 어릴 적에 돌아가시고 이제까지 이런 제대로 된 장례를 치뤄본 적이 없습니다. 염하는 것은 처음 봅니다. 유족은 그렇게 얘기하며 시신의 팔을 억지로 두루마기에 우겨넣었다. 참으로 가볍고 딱딱하네요. 유족은 그렇게 감상을 달았다. 마치 가구를 고르는 목소리같아서 영 소름이 돋은 이씨가 삼베끈을 가져오며 화제를 바꿨다. 염할때는 매듭을 매지 않습니다. 이렇게 풀리지 않게 꼬아서 넣어주지요. 이씨는 시신의 발치부터 목까지 단단히 여몄다. 마찬가지의 삼베끈은 총 7개로, 시신은 살아돌아온들 꼼짝도 못할 정도로 꼼꼼하고 세게 묶였다. 이씨가 버선도 신지 않은 발 위에 비단신을 신겼다. 제가 할게요. 유족이 이씨의 손목을 잡더니 그 손에 들고 있는 비단신을 가져갔다. 시신의 발치에 서서, 아직 얼굴을 가리지 않은 시신을 한번 쳐다보더니 유족은 천천히 제 손으로 시신의 발을 어루만졌다. 한참을 그런 후에야 유족은 그 맨발에 비단신을 신겼다. 


자, 이제 얼굴까지 완전히 봉하면 앞으로는 얼굴 보실 일이 없을 테니 마지막으로 전할 말씀 있으시면 하세요. 유족은 여전히 발치에 서있었다. 이리 가까이 오셔도 돼요. 이씨가 손짓했지만 유족은 그 손짓을 못본듯이 발치에 서 있었다. 유족은 한참 시간을 끌다가 나중에야 머리맡까지 갔다. 솜으로 채워진 입과 코까지 살핀 후에 유족이 그 뺨을 한번 쓸었다. 맨날 빨갛던 인사가 이렇게 분까지 발라 놓으니 환하고 좋네요. 유족이 말하는 동안 이씨는 물품을 정리했다. 


천국도 지옥도 아닌 곳으로 가요, 부디 다음생에는 우리 만나지 맙시다. 형님.


유족은 그렇게 우물거렸다. 이씨는 듣다듣다 그런 소리는 처음 들었으나 그냥 그 입에 솜을 채운 시신마냥 조용히 있었다. 더 이상 말이 없어 이씨가 다가가 시신의 얼굴을 염의로 둘러싸자 유족은 그제야 한발자국 뒤로 물러나 지켜봤다. 이씨는 연꽃문양 띠를 꺼내 세개씩 놓고 끝을 꼬았다. 그 작업을 반복하자 시신의 반이 연꽃문양으로 덮혔다. 가시는 길에 연꽃을 깔아서 극락정토로 가는 길 편히 가시라는 의미입니다. 유족은 묵묵히 이씨를 도와 연꽃대를 묶었다. 자 이제 됐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모두 끝났습니다. 이씨가 손을 닦으며 물러나 준비된 관을 가져 왔다. 관 안은 꽃으로 채워져 있었다. 입관하시겠습니다. 이씨는 윗쪽을 들고 유족은 다리를 들었다. 시신은 번쩍 들렸다. 고작 이렇게 가벼운 사람이었는데 말입니다. 꽃무덤 위로 염습을 마친 시신을 내려 놓으며, 유족이 그렇게 말했다. 사람 무게는 대부분 혼이 지고 가는 거지요, 혼이 떠난 몸은 바짝 말라버립니다. 유족은 가만히 고갤 끄덕였다. 그래요, 그렇겠죠. 형님 혼은 그만한 무게가 있을 겁니다. 이씨가 혼과 백이라는 한자어가 적힌 종이를 들고 와서 시신 위에 올렸다. 그리고 기다란 탑이 그려진 그림을 시신의 위에 덮었다. 형님 혼이 저 세상에서 시왕님들께 재판을 받으며 지나가실 길이 그려진 그림입니다. 한분께 재판을 받을때 7일이 걸린다고해서 그동안 49제를 올리는 것이죠. 이씨는 관 뚜껑을 들었다. 이제 이 관을 닫으면 이승과의 연은 끊어지게 됩니다. 더 하실 말씀있으신가요. 유족은 가만히 서 있다가 관에 들어 있던 국화꽃 한 송이를 챙겼다. 이씨가 가만히 쳐다보자 유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닫으시죠. 좋은 관을 썼기 때문에 관 뚜껑이 상당히 무거워 이씨와 유족은 함께 뚜껑을 닫았다. 쾅 하고 관뚜껑 닫히는 소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유족은 한 손에 버선과 국화꽃을 든 채 그 관을 한참 내려다 보다가 이씨에게 반듯하게 인사를 올렸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씨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마주 절을 했다. 유족은 그 인사를 끝으로 염습실을 나섰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고 손에 들린 국화꽃 줄기만 힘없이 흔들렸다. 이씨는 남은 천이며 염의등을 정리하면서 문득 관뚜껑 위에 떨어진 물방울을 발견했다. 물이라도 샜나 싶어 천장을 봤으나 물자욱은 없었다. 빗소리가 한창 들려서 이씨는 정리를 재촉했다. 긴 세월 염을 해온 장의사로써 처음 있는 일이라며 그 이상한 유족을 기억 속에 마무리지으며 그는 절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