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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2차

킹스맨 팅테솔스AU 해리+에그시 / 안개 속으로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Au로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팅테솔스의 빌 헤이든(콜린 퍼스 역)가 마지막에 언급하는 그의 남자 애인에 해리 하트와 에그시를 넣어 싸먹어보세요.

+왼오모르겠어서 그냥 + 썼습니다




안개 속으로




그는 오지 않을 것이다. 게리, 아니 '에그시' 언윈은 알고 있다. 

물론 올 수도 있다. 가능성은 늘 있는거다. 그는 신사였지만, 연락을 제때에 주고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종류의 신사는 아니었다. 그렇게 신사다울 때도 있었다. 딱히 조건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 스스로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열흘이 넘도록 전화 한 통 없다가 불쑥 삐걱거리는 문을 점잖게 비난하며 낮은 현관을 밀고 들어오곤 했다. 그래서 에그시는 자주 현관을 쳐다봤다. 의자에 거꾸로 앉아 현관을 쳐다보며 에그시는 생각했다. 아니, 그는 오지 않아.


에그시와 해리 하트는 거리에서 만났다. 지독한 안개가 런던을 덮치면 안개를 장막삼아 에그시와 패거리는 거리를 내달렸다. 싸구려 맥주를 병째 들고 다니면서 신사들의 지갑을 빼내는 일은 에그시의 일상 중 가장 보람찬 일이었다. 주인으로부터 빼돌린 지갑들을 쌓아놓고 하나씩 펼치면서 낄낄거리고 있으면, 내것이라는 것이 희박한 생활이 잠시나마 풍요로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치과의사, 보험판매원, 광고회사 사장 등 다양한 명함들이 항상 테이블 위에 가득했다. 에그시는 그 위에서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고 엎어져서 자기도 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지갑을 노리고 거리로 나갔을 때, 에그시는 혼자 안개 속에 서 있었다. 비틀거리다가 차도에 뛰어들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에그시는 두 손을 점퍼에 욱여넣고 불안하게 길을 걸어갔다. 주머니 안의 손이 달달떨렸다. 약을 해서가 아니라 긴장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목에 밧줄을 건 것처럼 거리로 나설때면 늘 그렇게 바짝 긴장했다. 그러나 동시에 밀알같은 유쾌함들이 에그시의 뒷목을 굴러다녔기 때문에 그는 용감하게 안개 속 거리를 헤집고 다니는 것을 즐겼다. 건너편에 너무도 정석적으로 걸어오는 남자의 실루엣을 보고 에그시는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었다. 좋아, 가자. 그리고 마찬가지로 가벼운 걸음으로 남자를 스쳐지나갔다. 살짝 부딪히면서 품 안에서 지갑을 꺼냈고 미안요, 하고 짤막한 사과를 남긴 것까지도 완벽했다. 그러나 에그시는 나아가지 못했고 그대로 서 있었다. 지갑을 쥔 그의 손목을 남자가 잡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이 비로소 천천히 눈에 들어왔다. 안경을 쓴 눈은 몹시 흥미롭다는 듯 에그시의 손목을 보고 있었다. 곧 그는 상냥하게 물었다.


"지갑이 필요하니?"


에그시는 기분이 상했다. 정확히는 에그시의 자존심을 그 남자가 조금 뜯어먹고 금방 뱉어낸 것 같았다. 뚜렷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지만, 에그시는 기분이 나빴고, 그래서 손도 빼지 않고 불량하게 웅얼거렸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걸 가져가렴."


남자는 에그시가 들고 있던 지갑을 가져가더니 다른 쪽에서 또 다른 지갑을 꺼냈다. 두 개의 지갑을 가진 남자. 에그시는 다양한 지갑을 만지고 버려왔지만, 지금 남자가 꺼내준 지갑보다 고급스런 물건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돈은 별로 없지만, 이 지갑은 가격이 좀 나갈거다."


남자는 에그시에게 그 지갑을 내밀었고 에그시는 길게 고민하지 않고 그 지갑을 채갔다. 


"당신 멍청이야? 이걸 왜 줘?"

"나에게는 별로 필요가 없지만 너에겐 필요해보여서."


에그시는 지갑을 펼쳤다. 안개가 흘러갔다. 걷힐 것이다. 그 전에 사라져야지. 지갑 안 쪽에서는 H.H라는 이니셜이 수놓아져 있었다. 


"해리 하트. 그게 내 이름이지."

"......"

"신사라면, 상대의 이름을 들으면 자신의 이름도 말할 줄 알아야 한단다."


에그시는 크게 웃었다. 안개 속에는 별게 다 있지만 고급 양복을 입은 미친 남자는 처음 보았다. 신사라니! 에그시는 근 두달들어 그것보다 웃긴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난 신사가 아닌데."

"그거야 마음먹기 나름이지."


에그시는 나빴던 기분이 살살 나아졌다. 지갑도 받았고 나쁘지 않은 대화였다. 그래서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내 이름은 에그시."

"에기."

"에그시라고."


해리는 확실히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먼 거리에서 요란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에그시를 찾는 패거리일 것이다. 그는 해리에게 인사를 할까 고민하다가 아무 말 하지 않고 안개 속으로 뛰어들었다. 


해리 하트가 건낸 지갑은 고급품이었다. 전당포에 가서 물었더니 두달치 생활비를 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에그시는 팔라고 꼬시는 전당포 주인을 물리치고 지갑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담배를 피면서 그걸 지켜봤다. 그게 전부였다. 에그시는 지갑을 올려둔 채 방관했다. 처음 가져온 것과 똑같은 상태를 유지하면서 생활의 일부로 치워두었다. 


해리 하트는 이상한 타이밍에 나타났다. 월요일 오후에 에그시는 응접실에 앉아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전쟁영웅을 찬양하면서 중간중간 음악이 나왔다. 입가심으로 위스키를 마시려고 일어섰을 때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고, 아마도 지겹도록 얼굴을 들여다보는 친구놈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에그시는 들어오라고 외쳤다. 머그컵에 위스키를 따라 나오는데 문가에 서 있는 해리 하트를 보고 에그시가 얼마나 놀랐는지는 상상에 맡겨야 한다. 거의 욕이란 욕은 모두 뱉은 뒤에 에그시는 차분하게 위스키를 한 모금 마셨다. 해리 하트는 장우산을 걸 곳은 찾다가 도통 이 놈의 좁아터진 현관에는 그런 공간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 충격을 받았는지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아주 웃겼고 에그시는 그가 어떻게 그 집을 찾아왔는지 묻지 않기로 결심했다. 


해리 하트는 심심해서 에그시를 찾았다. 말 그대로 그는 자주 무료해했고 변덕이 심했다. 그가 어릴때부터 교육받은 예절교육이 아니라면 당장 모로코로 떠나 어딘가의 오아시스를 탐험하다가 여독으로 죽었을 지도 모른다. 에그시는 그의 권태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는 언제나 시덥잖은 이야기만 주고받았는데 약간이라도 중요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으면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갑자기 차를 후루룩 소리내서 마셨다. 안경 너머의 그의 눈은 늘 흥미를 쫓고 있었고 그 끝에 에그시가 든 것 뿐이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에그시와 잡담을 하고 차를 끓여 마시고 가끔을 술도 마시다가 돌아가는 것이 전부였다. 신사들의 회원제 클럽에서도 멋들어진 시가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해리 하트는 굳이 천장이 낮고 삐뚤어진 에그시의 집으로 찾아와서 했다. 에그시가 사는 집은 1층이라고는 해도 거의 반지하나 다름없었는데, 건물과 건물 사이에 체한 것처럼 걸려 있었다. 밤이면 온 집안이 우는 소리를 냈다. 


"이곳은 좀 굴같구나."


해리 하트가 제 몫의 잔을 기울이며 말하곤 했다. 전쟁 중에는 그런 곳에 많이 기어들어갔지. 에그시도 전쟁고아 중에 하나였고 전쟁 이야기라면 귀가 떨어져 나가도록 많이 들었지만 해리가 말하는 '전쟁'은 조금 어감이 달랐다. 그의 전쟁은 보다 객관적이고 아득했다. 해리는 교묘한 단어를 많이 썼는데, 에그시는 그가 '우리'라고 발음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이쪽과 저쪽. 그는 그렇게만 말했다. 우리편은요?-에그시는 해리가 돈을 놓고 간 다음날부터 경어를 사용했다-하고 에그시가 묻자 해리는 뻔뻔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편이란 건 허상이란다, 에그시."

"당신은 아마 개새끼라는 욕을 자주 듣겠죠?"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그럴지도 모르겠구나라고 했으나 이미 알고 있다는 말투였다. 당연히 알고 있겠지. 해리 하트는 상처받는 것을 싫어하고 그래서 더 예민한 사람이었다. 그런 평가쯤이야 줄줄이 외우고 다닐 것이다. 에그시는 그가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해리는 기분이 좋으면 에그시에게 글을 가르쳐 주었고 가끔은 산책을 데리고 나갔다. 둘은 너무 달라서 일행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는데 그런 것을 이용해서 게임을 하기도 했다. 벤치의 끝과 끝에 앉아서 그 사이에 사람이 앉으면 천연덕스럽게 '훈제 칠면조 샌드위치'나 '물사마귀' 따위에 대해 큰 소리로 토론을 시작했다. 사이에 앉은 사람이 어리둥절해 하고 있으면 더욱 큰 소리로 시시한 주제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떠들었다. 보통 그러면 중간에 앉은 사람들은 자리를 피해버리고 두 사람은 시간을 재는 게임이었다. 해리 하트는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에그시는 에그시대로 해리 하트라는 불순물이 그의 인생에 끼어든 것이 즐거웠다. 그는 돈을 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아는 것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그시에게 학교에 가라는 소리를 하지 않는 것이 완벽하게 마음에 들었다. 


두 사람은 반년을 그렇게 지냈다. 가끔 보고 떠들고 술을 마시다가 밤거리를 걷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일을 반복했다. 


"넌 내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래?"


해리가 어두운 등 아래에서 신문을 보다가 에그시에게 물었을 때 에그시는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얼버무렸다.


"기다리죠, 뭐."


해리는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숨을 들이쉬고 입을 벌렸다가 이내 무슨 생각에 빠진 건지, '그래 그럼'하고 다시 고개를 신문으로 돌렸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다시는 그런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에그시는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반지하의 얕은 계단을 오르니 모든 것이 차가운 런던 거리로 올라왔다. 뿌연 안개가 숨결로 훅 치고 들어왔다. 모든 것이 흐리게 보이는 안개 속에서 에그시는 아무래도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여겼다. 그는 오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