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하트는 잡을 수 없는 남자다. 멀린은 처음 킹스맨 후보로 문턱을 넘을 때 그가 데스크에 기대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잡을 수 없다. 물이나 바람처럼. 잠시 어딘가에 '담길' 수는 있어도 영원히 잡아놓을 수는 없는 것이, 예의과 규칙을 갑옷처럼 두른 해리 하트라는 남자였다. 물론 그는 다정하고 어떤 날에는 낭만적이고 가끔은 감성적이기도 하지만, 심지어 그 모든 것을 거의 다 지켜봐 왔지만, 멀린은 여전히 생각했다. 해리 하트는 붙잡아 놓을 수 없는 남자다.
"그러니까, 이 인원 구성은 뭐에요?"
"에그시, 그건 내 물잔이다. 네 것은 저거야."
"...어차피 다 같은 물이잖아요?"
"독주를 받아도 그런 소리가 나올지 지켜보마."
에그시가 투덜거리며 물잔에서 손을 뗐다. 해리는 만족스럽게 다시 그의 오믈렛을 포크로 잘랐다. 에그시는 그의 가볍고도 재빠른 포크 끝을 멍하게 보다가 다시 정면을 봤다. 태연히 앉아 있는 큰 키의 남자는 이미 브런치를 반 이상 먹어치웠다. 그렇다고 해서 뭔가 맛있다는 기색도 없이 기계처럼 먹고 있는 얼굴을 보자니 에그시는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그러니까 왜 멀린까지 우리 셋이 브런치를 먹어야 하냐구요!"
"식사자리에서 언성을 높이는 것은 매우, 매우 예의없는 행동이다, 에그시."
이번에는 멀린이 그를 지적하고 나섰다. 에그시는 왜 아무도 내 말에는 대답을 안해주냐고 더 크게 외칠 참이었지만, 약속이라도 한듯 해리가 고갤 저으며 말하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쳤다.
"미안하네, 멀린. 내가 아직 다 가르치질 못했네. 면접에서 마이너스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지금은 비-공식적인 시간이니 당장 평가에 반영하진 않을 겁니다. 그러나 가급적 빨리 식사예절을 깨우쳤으면 좋겠군요. 샐러드 포크를 헷갈려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면 어머니도 문을 안 열어주실테니까요."
"망할 포크가 너무 많단 말이에요!"
"그것 참 잘됐구나. 축하한다, 에그시."
에그시는 하얀 벽에 둘러싸인 느낌이었다. 좀체 틈이라고는 없는 예의범절 로봇 둘과 함께 브런치를 먹는 아침이 황당할 뿐이었다. 분명 '휴가'라고 들었고, 침대에서 하루종일 JB를 안고 잠이나 자려던 에그시의 계획은 아침해가 뜨자마자 나타나 이불을 걷는 해리때문에 무산되었다. 그저 '갈곳이 있다.'라고만 말한 해리의 차에 거의 눈도 뜨지 못하고 들어앉아 내린 곳은 해리의 집이었는데 설상가상 식탁위에 은식기를 놓고 있는 멀린을 보았을 때 에그시는 아직 꿈에서 깨지 못했다고 생각해 스스로 뺨을 때렸다. 그리고 나서 다시 눈을 떴는데 멀린이 물잔에 물을 따르고 있어서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태연히 식사를 계속하는 멀린과 해리를 보면서 에그시는 브로콜리를 포크로 괴롭히다가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멀린을 쳐다봤다.
"설마..."
멀린은 빵을 뜯으며 에그시를 쳐다봤다. 안경 너머로 흥미없는 눈이 보였다.
"...독이죠! 독을 탄거지! 날 시험하려고! '진정한 신사는 해독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소리 할거죠?!"
멀린과 해리는 번갈아서 서로를 한번 보고 다시 에그시를 쳐다봤다.
"...그렇다고 한다면?"
"제길 악마들! 쉬는 날마저 시험을 치르게 하다니!"
에그시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랩처럼 중얼거리며 부엌으로 뛰어들어갔다. 해독제! 라는 단어를 들은 것도 같았지만 그가 집안을 헤집으러 나간 뒤로 다시 식당은 고요함으로 가득찼다. 해리와 멀린은 에그시가 뛰어간 방향을 쳐다보다가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그런데 사실 저도 물어보려 했습니다, 갤러해드."
"해리."
"...해리. 오늘 같이 식사하자고 하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해리는 버섯을 입에 넣고 그걸 꼭꼭 씹고 완전히 다 삼키고 나서야 대답했다.
"친목도모라고 생각하면 되겠군."
난 에그시가 란슬롯이 될 거라고 믿고 있고, 그렇다면 우리는 '한 팀'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안 그래? 해리는 한번 웃어보이고는 마지막 남은 오믈렛을 싹 비웠다. 멀린은 묵묵히 제 접시만 쳐다보다가 '그렇군요.'하고 끄덕였다. 해리는 만족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를 준비하지."
"제가 하겠습니다."
"브런치도 만들어줬는데 차 정도는 내가 만들어야지. 그냥 두게."
부엌에서 우당탕탕 소리가 나더니 에그시가 식당을 가로질러 화장실쪽으로 뛰어갔다. 해독제!! 멀린이 그 망아지같은 뒤꽁무니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장난이었다고 말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진정한 신사는-"
장난도 구별할 줄 알아야하지. 해리는 멀린에게 웃어보이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멀린은 혼자 남은 식탁에서, 해리 하트에 대해서 생각했다. 잡을 수 없는 남자는 불쑥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천진하게 손을 내민다. 그 긴 세월동안 온 외국을 다 돌아다녀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친밀함이었다. 문득 멀린은, 해리 하트도 나이가 들었고 그의 후계자를 보면서 어딘가에 '붙잡히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건 아닌지 떠올리다가 이내 잊어버렸다. 멀린은 현명했고 현재에 집중할 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에그시가 꼬리에 불 붙은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는 걸 조금 더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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