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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2차

미생 석율그래 단문 / Take me to Church 연작




Take me to church

첫번째, 석율그래 / 죄를 짓지 않게 하시옵고







한석율은 이름이 여러개 된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간에 내버려두기 때문이다. 또 그의 품속에는 명함이 여러 장 들어 있어서 아무거나 집히는대로 내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게 편했다. 일하기에도 그랬고, '한석율'로 살아가기에도 그랬다. 적어도 석율이 헤프게 잘만 웃던 입꼬리를 내리기 전까지는 한석율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석율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직업으로 삼게 된 것에는 느와르 영화나 추리 소설에 나올법한 장황한 배경은 없었다.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열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킬러인 아버지가 기른 석율이 킬러가 되는 것도 당연한 이야기였다. '아버지'는 아버지가 아니다. 그러나 아버지였다. 통통하던 어린 손에 군살이 박히도록 운동을 시키고 과제를 주던 아버지는 잔인하지만 하나뿐인 석율의 세상이었다. 강인하고 우직하며 잔인한 아버지. 그러나 그가 머리를 넘기고 정장을 입으면 TV에 나오는 사장님같았다. 아마도 뺨이 말라서 그런 것 같다. 아버지는 뺨이 마르고 이마가 솟아올랐다. 신이 어떤 연유로 아버지의 얼굴을 위로 당겨 올린것같은 형국이었다. 뜯어보면 잘난 구석이 없는데 모아놓고 보면 묘하게 어울렸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일요일이면 석율을 데리고 성당에 갔다. 석율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숲처럼 늘어선 의자사이를 걸어갔다. 기둥마다 조각된 고통받는 예수가 그를 굽어보고 있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성당은 모든 것이 너울거렸다. 여자들은 머리에 하얀 미사보를 뒤집어 쓰고 있었고 남자들은 모두 점잖게 헛기침을 했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환영받았다. 석율이 손을 잡고 있는동안 얼굴이 똑바로 보이지 않는 어른들은 아버지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대단하세요. 아버지는 그 말을 가장 많이 들었고 그럴때마다 조용히 웃었다. 그럴때는 마치 아버지 머리 위에서 빛이 나는 것 같이 눈이 부셨다. 솟아오른 이마 아래로는 음영이 졌다. 사실 그것은 서광이 아니고 천장에 달린 조명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현실은 오히려 말라비틀어진 과자처럼 흥미가 없었다. 아버지는 고아원을 후원했다. 석율이는 그 고아원으로부터 왔다. 아버지가 석율이를 데려오는 길에 물어봤다.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거야. 이 차에 타고나면, 네가 익숙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은 전부 저 뒤에 두고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될거란다. 거짓말을 하지 않을게. 그건 매우 힘들 일이 될 거다. 넌 오늘의 선택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지. 자, 돌아가고 싶니?' 한석율, 그 당시에는 한석율이 아니었던 아이는 뒤를 돌아봤다. 고아원의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 밖을 내다보는 아이들. 자신이 저 가망없는 얼굴 중 하나였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다. 아이는 차에 올라탔고 한석율이 됐다. 그리고 킬러로 자랐다.


나중에서야 한석율은 아버지가 매주 성당에 가던 이유를 알았다. 그는 비즈니스 차원에서 갔던 것이다. 유달리 잘사는 동네에, 부유한 사람들. 헌금함에는 돈이 꽉 차고 매일 무료급식소가 열리는 성당. 아버지에게 돈을 주고 사람을 죽여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과 정확히 같은 부류의 사람들. 그리고 죽여야할 대상 역시 모두 그 부류에 속해 있었다. 아버지는 사냥감과 악수를 하면서 그들을 익혔고 그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매주 성당에 나갔다. 석율이 커서 더 이상 아버지의 손을 잡지 않게 된 뒤에도 그들은 같이 갔다. 이제 눈높이가 비슷해진 어른들과 마주 서서 이야기하며 석율이 웃음을 터뜨릴 때마다 사람들은 좋아했다. 참 보기좋은 청년이야. 레지오 단장이 그렇게 말하며 석율의 어깨를 두드렸다. 석율은 겸손을 떨었다. 아이, 아니에요. 그리고 뒷말은 삼켰다. 그냥 킬러일 뿐인걸요. 한석율은 꼬박꼬박 성당에 나갔다.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 나갔으니 거진 20년은 다녔을 것이다. 성당에 나가는 일은 석율에게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곳에 가면 장그래가 있었다. 


장그래는 성당 미사에서 만났다. 성체를 모시려고 줄을 서서, 인간의 죄를 굽어살피는 예수의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고 있던 한석율이 눈을 떨어뜨렸을 때, 그들은 눈이 마주쳤다. 장그래는 신부의 왼편에서 시중을 들고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장그래는 창백해서 중세에 그려진 그림같았다. 머리가 까만 복사는 한석율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석율은 괜히 몸이 굳어 서 있다가 자기 차례가 됐을 때 한발자국 늦어버렸다. 그때가 초등학생이었다. 6학년. 학교에서는 사회의 역할을 배우고 집에 오면 칼쓰는 법을 배웠다. 초등학생 한석율과 킬러연습생인 한석율 사이에서 간신히 무게를 잡고 있던 때였다. 그리고 그 까만 눈하고 마주치자마자 저울은 와르르 무너졌다. 나중에 왜 그렇게 쳐다봤냐고 묻자, 장그래는 '눈을 무섭게 뜨고 있었잖아.'라고 대답했다. 무섭게, 십자가를 올려다보고 있었어. 한석율은 그럴리 없다고 눈이 휘게 웃었지만 장그래는 믿지 않았다. 

장그래는 성당의 복사였고 한석율이랑은 다른 학교를 다녔다. 한 학년 아래의 장그래는 덩치도 작아서 사이즈를 고려할 리 없는 복사의 옷이 바닥에 질질 끌렸다. 그의 집은 큰 사업을 해서 성당에 많은 지원을 하고 있었다. 신실한 카톨릭 가정이었고 모두가 세례를 받은 성가정이었다. 

'난 신부님이 될래.'

그래가 그렇게 말했을 때 석율은 그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가 절대선의 영역에 있어서가 아니라, 모든 것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신만이 그 속을 헤집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일주일에 한번 만날 때마다 둘은 별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같이 청소를 하거나 봉사활동을 도왔고 아니면 벤치에 멀거니 앉아 있었다. 같이 있으면 편했다. 한석율은 아버지의 차에 올라타던 순간부터 지니고 있던 오래된 이명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고장난 텔레비전처럼 끊임없이 이명이 들렸다. 딱 미칠 것 같았는데, 미치기 직전에 적응을 한 건지 거슬리지 않게 되었다. 아마 아버지가 첫 훈련이랍시고 석율의 뺨을 후려쳤던 것이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장그래 옆에 있으면 그것은 잠잠했고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넌 좀 이상해.'

한석율이 장그래에게 말했다. 

'넌 블랙홀 같아.'

장그래는 그 검은 눈을 깜빡이다가 그런가보지,하고 말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빨아들이며 평온을 유지했다. 계속해서.


장그래와 함께 성서를 읽는 일도 재미있었다. 한석율은 신을 비웃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신을 믿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다면 범인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신이었다. 매주 한석율은 성당에서 고해를 했다. 고해성사와는 별도로, 미사가 시작되기 전 아니면 후, 본당에 아무도 없을 때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첫 살인은 고등학교 2학년때 했다. 매끄럽게 처리되진 않았다. 아버지는 따라와서 대상의 목숨이 완전히 끊어진 것을 확인했고 '좋아.' 라고 말한 것이 전부였다. 특별히 죄책감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한석율은 그때부터 고해를 했다. 인간의 죄를 대신해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제 손에 묻은 피를 벗겨주소서. 죄를 씻겨 주소서. 죄를 짓지 않게 하시옵고, 참회하게 하옵시고. 육체의 죄는 육체에게로 남기고 제 영혼을 건져 주소서. 그리고 고해의 끝엔 늘 장그래를 생각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스스로 신에게 말한건지 장그래에게 빈 건지 혼동이 되었다. 


장그래는 신학대학교에 진학했다. 신부가 되겠다는 말은 정말이었는지 그는 열심히 했다. 한동안은 장그래를 못 만났지만 그래도 한석율은 매주 성당에 나갔다. 이제 사람들은 그의 아버지를 대했던 것처럼 석율을 대했다. 아버지는 신장결석으로 쓰러졌고 석율은 온전히 혼자 일하게 되었다. 고통으로 괴로워 하는 아버지 옆에 앉아서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읽고 있노라면, 아버지는 '그냥 날 죽여다오.'라고 부탁했고 석율은 '안돼요.'하며 그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아버지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한석율을 받아들인지 오래였다. 한석율은 아버지 대신 고아원에 후원을 계속했다. 유리창에 붙은 얼굴들은 20년전과 전혀 달라 진 바가 없었고 그 얼굴마저 다 똑같아 보였다. 언젠가는 나도 저 얼굴 중에 내 얼굴을 골라 데려올지도 모르지. 한석율은 그렇게 생각했고, 성당에 나갔다. 장그래가 부제가 되어 돌아왔을 때 한석율도 성당에 있었다. 허리에 흰 밧줄을 묶고 손을 모은 장그래를 보고 한석율은 반가워했다. 그리고 손바닥을 펼쳐서 살폈다. 혹시라도 피가 묻어있나? 다행히 손을 깨끗했다. 오랜만이네. 한석율이 단 둘이 남게 되었을 때 말을 걸었다. 장그래는 온화한 얼굴로 한석율을 쳐다보았다. 그러게요. 차분한 존댓말을 들으며 장그래가 미소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한석율은 눈 앞의 사제가 여전히 블랙홀을 품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마도 신이 그에게 준 재능일 것이다.


20XX년 크리스마스에 한석율은 의뢰를 하나 받았다. 복잡한 의뢰였다. 원한이 있었고 복수가 하고 싶었던 의뢰인은 자신의 회사를 부도나게 만든 장본인이 아닌 그의 가족을 해치길 원했다. 사연은 복잡하지만 간단하기도 했다. 그는 상대 아들이 죽기를 원했다. 한석율은 사진과 이름을 번갈아 확인했다. 장그래였다. 이제 곧 사제가 될, 영원한 신의 종이 되기로 맹세한 블랙홀이었다. 

들어온 의뢰는 거절 할 수 없다. 이미 입금을 하고 난 뒤 의뢰가 거쳐오기 때문이다. 한석율이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자 동업자들에게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병실에 누워 있으면서도 뭐든지 다 아는지 '어서 해라'하고 말했다. 왜 아무도 나한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거야? 그는 짜증이 났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도, 생각할 시간을 줄 마음이 없었으므로 모두 어서하라고만 강요했다. 킬러는 자영업자가 아니다. 에이전시 측에서는 날짜를 정했다. 그건 아버지의 입으로 통보됐다. 다가오는 일요일에도 장그래가 살아있으면, 한석율은 의뢰를 집어 치운 것으로 알고 다음 타자에게로 넘기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의뢰를 지키지 못한 무능력한 한석율은 죽어야 한다.

'아버지는 전화도 없는 곳에 누워 있는데 그런 건 어떻게 소식을 받아오세요? 누워 계셔도 대단하시네요.'

한석율이 집에 없을 때 아버지에게 손님이 오는 건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고 어서 해라 이 말만 남겼다. 알았어요. 한석율은 웃으면서 말했다. 일요일에는 정리할게요.


그리고 그는 토요일밤부터 성당에 있었다. 한석율은 다리를 떨었다. 그것을 그는 소리로 알아들었다. 걸터앉은 긴 나무의자가 삐그덕거리면서 다리 떨지 말라고 잔소리를 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아무도 그에게 주의를 줄 사람이 없었다. 새벽 4시. 아직 첫 미사가 열리기 전의 성당. 사방은 어둡고 예수는 지척에 있었다. 석율은 자신의 손에 덜컥거리는 것을 확인한다. 현실감없이 쥐어진 칼은 수줍게도 들려있다. 아니다. 한석율에게는 그것이 현실이다. 아주 당연한 것이 갑자기 생경하게 멀어진다. 성가책을 올려놓고 보는 앞턱에 팔을 내밀어 기댄 채 한석율은 소리내서 욕을 한다. 씨발. 성전을 크게 울리도록. 좆같네. 그러나 여전히 아무도 그를 제지할 사람은 없었다. 또 한석율은 '다행이네'하고 금새 혼자 히죽거렸다. 다행이다. 사람이 없어서. 여기에 나타날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다. 그를 죽여야 하니까. 한석율은 또 다리를 떨면서 다른 선택지를 머릿속에서 후두둑 펼치지만 모두 눅진 포스트잇같아서 도통 소용이 없다. 돈을 받았으니 사람을 죽여야한다. 그것은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장그래고, 장그래는 한석율이 한석율로서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장그래를 죽이면 한석율도 죽이는거잖아? 한석율은 황당한 결과에 머리를 이리저리 휘젓다가 앞턱에 기대놓은 손 깍지에 이마를 댔다. 이전의 모든 일은 씻어낼 수 있는 피요, 여물지 못한 죄다. 미성숙한 죄들을 흘려보내며 한석율은 죄책감에 괴로워 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그러나 장그래는 그에게 성역이고 에덴의 동산이다. 죄를 짓는다. 태어나 처음으로. 한석율은 손을 덜덜 떨며 중얼거렸다. 죄를 짓지 않게 하시옵고, 죄를. 죄를 짓지 않게 하시옵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직 아침해는 뜨지 않았고 새벽은 이제 막 베일을 드리웠다. 해가 뜨면 장그래가 죽는다. 한석율은 문득 전에도 이런 문제가 있었지 않은가하고 헤아려보다가, 포기했다. 밤이 더디다.


'무서운 눈이야.'

장그래가 말했었다. 

'맘에 들어.'

웃지도 않고.


한석율은 해가 뜨기 전에 집에 돌아갔다. 아버지는 깨어 있었다. 늙은이 특유의 예리한 감각이 그의 눈을 뜨게 만든 모양이었다. 석율이 그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아버지, 일요일이에요. 이제 정리해야죠. 저도.


신문기사에 저명한 사회복지가의 부고가 실리고 장그래는 사제가 되었다. 장그래는 한석율이 사라진 벤치에 앉아서 묵주알을 만지작거렸다. 삶의 한 부분이 영영 사라져버렸다. 장그래와 신 사이에 남아있던 얇은 습자지 한장이 물에 녹아 사라졌다. 


아멘. 장그래가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