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마르님 리퀘: 소속사 사장님 강해준 X 소속연예인 장그래
살다보면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아무리 갖은 잣대를 다 대보아도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람은 살면서 '고생을 하는 사람'과 '고생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누어 진다. 여기에 장그래를 대입해보면, 조금 설명이 애매해지기 시작한다. 장그래는 건대에 있는 주상복합 아파트에 살고 있다. 60평대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은 장그래 혼자뿐이다. 이제 막 영화가 두개 개봉하고 드라마를 촬영중인 신인배우치고는 생경한 환경이다. 장그래는 경비가 철통같은 아파트 로비 문 밖에는 추운날씨에도 후드를 둘러 쓴 소녀팬들이 서성거릴 정도로 인기도 있어서 아파트 주민들은 아파트에 아이돌이 살고 있다고 알고 있었다. 26살, 결코 이르지 않은 나이로 데뷔한 장그래는 원래 CF스타였다. 패션브랜드 이미지 영상 광고에서 벤치에 앉은 장그래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서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한 장그래의 눈에서 눈물이 한방울 떨어지는 순간, 안방에서 그 광고를 보던 여심도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단 한번도 얼굴을 비춘 적이 없는 낯선 CF모델에 대한 관심은 곧 캐스팅으로 이어졌다. 놀랍게도, 이 '듣보잡' 모델은 한국 최고의 에이전시라고 불리는 원 기획사에 소속되어 있었다. 든든한 소속사에 본인의 인기까지 덧입어 처음 맡은 액션 영화의 조연은 장그래를 CF스타에서 신인배우로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연이어서 조금 더 비중이 높았던 멜로영화에서 맹인인 여자주인공의 오빠 역을 맡아 칭찬을 받았다.
여기까지만 보면 장그래는 고생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화려한 슈퍼루키로 받아들여지겠지만, 네티즌 수사대는 그가 고등학교 중퇴를 했다는 점, 검정고시는 패스했지만 그 후 진학기록이 없다는 점, CF를 찍기 전까지는 인터넷에 그 흔한 셀카 한 장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 다만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예전에 수색동 부근에서 어머니랑 단 둘이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들만 간신히 들렸다. 언론은 소년가장 장그래의 이미지로 조심스럽게 '썰'을 풀었다. 그쯤되니 슬슬 까들도 활동을 시작했다. 갑자기 그렇게 뜬 것에는 소속사의 치밀한 신비주의전략이 있었다든지, 아주 오랫동안 준비한 중고신인으로 순진해보이는 얼굴 뒤에는 이 바닥 생리를 다 아는 능구렁이가 있다든지하는 말이었다. 기사아래에 '까'와 '빠'끼리 물고뜯고 싸우는 와중에도 장그래와 소속사는 아무런 기사도 내지 않았다. 어떤 이에게는 그마저도 호감이었고 또 어떤 이에게는 그마저도 비호감이었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순 없어."
강해준은 커피로 입을 축이더니 그렇게 말했다. 장그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냥 습관이었다. 누군가 말하고 있고 자신은 그것을 '들어야 하고' 그래서 그냥 끄덕거렸다. 게다가 강해준은 그런 걸 좋아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 그가 젊은 나이에 '혜성'의 사장 자리까지 오른 것은 전부 그런 성격 덕분일 것이다.
"게다가 장그래씨를 욕하면서 이름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마저도 장그래씨에게 관심이 있다는 뜻이니까."
또 끄덕. 강해준은 문득 커피잔을 내려놓고 장그래를 쳐다보았다.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장그래의 맑은 얼굴이 지척에 있었다. 남자치고 고운 선에, 하얀 피부, 앞머리는 동그랗고 끝은 새침하게 빠지는 눈모양, 오똑한 코. 어떤 각도에서는 잘생겼고 어떤 각도에서는 애처롭다. 특히 많이 회자되는 것은 장그래의 눈이었다. 어려보이는 얼굴 속에 그 눈은 많고 많은 세월을 담은 것처럼 말을 걸었다. 그러면서도 맑았다. 그렇게 보였다. 그가 그 눈으로 무엇을 보고 그 눈 뒤에 무슨 생각이 하고 있든지간에 그렇게 보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할 말 있어?"
"여긴 너무 넓어요."
"넓으니까 산거야."
"나는 혼자 살잖아요."
"그게 중요해?"
넓은 집은- 장그래는 눈을 휘둘렀다. 그는 그들이 앉아 있는 거실의 소파에서 부터 천장에서 저 먼 부엌과 드레스룸과 복도에 꺾여 미처 다 보이지 않는 침실까지 모두 눈으로 훑은 뒤 다시 본래 쳐다보고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서늘해요."
"보일러가 고장났어?"
"공기가 차요."
"온풍기 사줄게."
"그 얘기가 아니라-"
"그 얘기가 아니라면, 말할 자격이 없다는 건 알고 있지?"
해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물었지만, 그 물음에는 돛이 달려 있었고 장그래는 그 물음과 함께 해저로 가라앉을 것이다. 그러니까 강해준은, 말을 맺었다. 장그래는 답이 없었고 그저 또 고개만 끄덕거렸다. 좋아. 알고 있으니까 됐어.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은 장그래가 불편해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불편해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참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지나간다.'
가끔 강해준은 장그래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늘 정석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강해준의 상식선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행동이었다.
"이 집이 누구 취향으로 꾸며진거라고 생각해?"
"사장님이요."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장그래는 1평짜리 고시원에 가든지, 100평자리 개인주택을 주든지 똑같이 살 사람이다. 그러니 마호가니로 다듬어진 탁자, 고급 양주가 가득 찬 장식장, 대리석 마감재 등은 전혀 장그래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맞아. 내 취향이지. 그러니까 장그래씨가 여기 사는 것도 내 취향이야."
장그래는 눈을 내리깔고 제 앞에서 손도 안 댄 커피잔을 쳐다보다가 결국 커피를 한 모금 삼키고나서야 고개를 끄덕거렸다. 목덜미가 조금 붉어졌고 강해준은 그것이 매우 좋았다. 차분하고 무엇에도 상처받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격해지는 것은 사실 아름답다. 강해준은 스스로의 안목을 믿었고 그 안목과 철저한 성격으로 '혜성'을 최고의 에이전시로 만들었다. 그 안목은 어느 취기오른 밤, 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서 술시중을 들겠다고 룸에 들어온 장그래를 봤을 때에도 취기를 벗겨버리고 눈을 뜨게 만들었다. 남자와 여자가 섞여서 들어왔는데 해준은 바로 그래를 옆으로 부르진 않았다. 테이블 끝과 끝으로 떨어져 있었고 해준은 옆자리에 앉은 여자와 짧은 대화를 주고 받았지만 눈으로 장그래를 확인했다. 그는 덜덜 떨고 있었고 평소 손버릇이 험한 박사장이 그래의 귓불을 잡아당기자 입술을 물어뜯고 있었다. 보기 좋다. 보기 좋았다.
그 다음날에 해준은 그래를 찾아갔다. 좁은 계단과 언덕을 반복해서 올라가서야 작고 누추한 집이 나왔다. 마당에서 이불을 널던 그래는 예상 밖의 손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한참 쳐다보다가 뒤늦게서야 아 하고 탄식을 흘렸다. 마루에 앉아서 해준은 그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그리고 직구를 날렸다. '내가 장그래씨를 찾아온 이유는-' 장그래가 명함을 채 다 읽기도 전에. '장그래씨를 사고 싶어서요.' 장그래는 눈을 깜빡였다. 그는 명백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안방에서 심하게 쿨럭이는 기침소리가 들렸고 장그래는 이해도 하지 못한 그 문장의 끝을 잡았다. '팔게요.'
그렇게 강해준은 장그래를 샀다. 배우와 소속사의 계약 이전에 인간, 장그래를 사들였다.
서툴어도 이해해 주세요. 강해준은 장그래를 샬롱에 맡기고 코디들에게 던져놓고 연기지도 선생에게 밀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장그래가 '다듬어져가는' 사이 그의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그에게 새집도 주었다. 장그래는 크게 기뻐하진 않았다. 그정도로 현명한 사람이었다. 고마워할 일은 아닌 것이다. 장그래는 자신을 팔았으니까. 이건 호의가 아니야. 명백하게, 장그래는 그걸 잘 알았다.
"이 감독은 어때?"
"잘 해주세요. 영선씨도 뭐든 다 잘 가르쳐 주시고."
"그 여자는 속이 검은 년이야."
"알아요."
장그래는 바둑을 뒀다고 했다. 성공하지 못했고, 그렇게 떠밀리듯 돈을 벌러 사회에 나왔다. 모든 게 서툴었지만 사람은 잘 봤다. 강해준은 가끔 장그래가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난 장그래씨를 이 나라 최고의 배우로 만들거야."
강해준이 손짓하자 장그래는 그의 곁으로 당겨 앉았다. 이때도 참 한결같은 표정이다. 맑고, 또렷한. 강해준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을 또 그에게 하면서 그의 목을 끌어당겼다. 장그래는 저항없이 그의 손에 이끌려 해준과 입을 맞췄다.
"내 것은 무조건 최고여야 하니까."
장그래는 눈을 감았다. 해준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아주 작고 평범한 만족감을 느꼈다.
+ 단문쓰려고 했는데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다........................재미도없네 에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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