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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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거 지겹지 않냐? 이자성은 양파를 까다 말고 멀뚱하게 고개를 들었다. 눈물이 나다 못해 눈이 아린 상황에 그런 이야기나 들으니 뭐든 시원찮게 들렸다.
“사는 거요?”
“그래, 사는 거. 언제까지 칼질해서 남의 접시 채워주는 일만 하다가 떵떵거리고 살아보겠냐. 우린 마냥 이 주방바닥에 채소 껍질이랑 뒹굴다가 뒤질 팔자라고.”
자성은 막 반질반질하게 까놓은 마지막 양파를 양동이에 넣어 놓고 그것을 재료선반 위로 올려 두었다. 양파껍질을 모두 집어 쓰레기통에 버리는 동안에도, 자성의 선배이자 자칭 요리스승인 황오는 계속 푸념을 늘어놨다.
“아, 나는 언제 한번 이런 하수구멍 벗어나서 살아볼까.”
“그래도 일이 있으니 다행이잖아요. 일도 못해서 굶어 죽는 사람도 있는데. 굶지 않을 만큼은 버니까.”
양파 다음은 사과다. 요리도 요리지만 이놈의 술집 주방이라는 곳은 기본적으로 과일천국이었다. 상태도 별로 좋지 않은 과일들을 아무것이나 쓸어 담아 접시에 내어가면 꽤 그럴듯하게 보였고, 대부분 술에 취한 손님들을 과일 맛도 모르고 비싼 값을 지불했다. 자성은 찬 물에 손을 씻고 이번엔 선반에 있는 사과 상자를 내려다 놨다. 사과를 미리 깎아 설탕물에 담가두면 바쁠 때 준비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황오는 부지런히 움직이는 자성을 쳐다보며 혀를 찼다.
“바로 그게 문제야. 남들 사는 만큼만 살아서는 안 된다고. 남들보다 더 잘 나고 잘 살아야한다니까, 안 그러면 이 세상에서 그냥 퇴물 되어버리는 거야. 영영 바닥 못 벗어난 다고.”
자성은 대충 듣는 시늉을 하며 사과를 깎았다. 예, 예, 명심할게요. 황오는 그런 자성을 쳐다보며 혀를 찼다.
“하기사 너 같은 촌놈이 뭘 알겠냐, 고작 청도쯤 온 것이 인생의 대성공인 놈이.”
자성은 그저 웃었다. 황오는 투덜거리며 담배를 피겠다며 뒷문으로 나갔다. 산더미같은 부엌일을 고스란히 자성이 혼자 하고 있었지만 자성은 그를 붙잡지 않았다. 게다가 황오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마을, 눈에 욕심만 희번덕거리는 말라빠진 사람들, 흙먼지 가득한 집, 술 취한 아버지 따위를 피해 달아날 수 있는 만큼 달아나기로 결심한 날 자성은 두 살 터울난 여동생을 데리고 나왔다. 전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마을은 온통 어두웠다. 어둠은 금방이라도 그 안에서 식칼을 쥐고 쫓아오는 아버지를 뱉어낼 듯 남매의 사방을 조여 왔다. 자성은 아버지에게 맞아 퉁퉁 부은 눈을 껌뻑이며 무작정 어둠 속을 달렸다. 다리가 풀려서 고꾸라질 때까지 달렸는데, 종국에는 그 어둠마저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날 밤 남매는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갔다. 자성은 고향을 떠나온 이야기를 할 때면, 그날 떠나온 곳은 고향이 아니라 무저갱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가난의 무저갱. 영원히 답습되는 권태와 폭력, 그리고 가난. 술독에 빠져 사는 아버지가 술에 취해 자는 틈에 집안에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모아 가지고 나왔다. 그마저도 푼돈이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청도에 와서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큰돈을 벌 수는 없었지만 관광도시는 꾸준히 사람이 드나들었고 그만큼 잡일도 많았다. 여러날 동안은 어둠 속에서 아버지가 식칼을 휘두르며 자성의 이불 위로 뛰어드는 악몽을 꾸었다. 그러나 그 외엔 모두 괜찮았다. 수척하게 말랐던 여동생 이화는 조금씩 얼굴이 폈다. 여전히 푸석한 얼굴이었지만 그늘은 없었다. 쪽방에 둘이 살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된 잡일을 하고 쓰러지듯 잠드는 것. 2평짜리 쪽방은 그들에게 천국이었다. 일이 없을 때는 도시를 구경했다.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저마다 삶에 대해 투덜거리거나 찬양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일은 하루 종일 해도 질리지 않았다. 가지고 온 돈은 이미 첫날에 모두 떨어지고 하루를 벌면 그 돈으로 간신히 배를 채웠다. 좀 더 제대로 된 일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쯤 운명처럼 일거리가 들어왔다. 자성과 이화가 청소부로 일하던 건물 주인이 착실한 남매에게 일자리를 주선해주었다.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술집이었다. 아가씨들이 손님을 상대하는 곳이었는데 주방이 꽤 컸다. 처음 그곳에서 일하기로 결정되었을 때 자성과 이화는 손을 잡고 울었다. 우리도 이제 사람같이 살 수 있어.
그렇게 시작한 일이었다. 남매는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한 달이 지나고 난 다음에 사장이 이화를 사장실로 불렀다. 돈이 급하지? 먼저 그렇게 물었다. 언제까지 쪽방살이 할 순 없잖아. 사근하게 묻는 말에 이화는 마냥 고갤 끄덕였다. 홀에서 일하면 좀 더 줄 수 있어. 빨리 벌어서 오빠랑 좋은 집 사야지. 갓 스물이 넘은 이화는 먹는 것이 나아지자 점점 얼굴이 펴서 그 이름대로 복숭아 꽃 같았다. 사장이 선금으로 건넨 돈은 이제까지 스무해를 살면서 이화가 처음 받아보는 금액이었다. 그 자리에서 계약서까지 썼다. 물론 자성은 반대했다. 직접 사장실까지 찾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사장보다 이화 본인의 뜻이 확고했다. 미쳤냐고 물어보는 자성의 말에 그녀는 차분하게 말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순 없어. 이렇게만 살아서는 우리가 떠나온 그 지옥 같은 곳이랑 다를 게 뭐야. 난 올라갈 거야, 오빠,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 거란 말이야. 이화는 자성을 붙들어 앉히고 말했다. 자성은 그녀의 눈을 봤다. 아버지에게 얻어맞고 다리를 절면서 부엌에 선 채로 풀죽을 먹던 어린 소녀. 그 눈에 품었던 독기와 비슷한 것이 그녀의 눈에 있었다. 자성은 더 이상 말릴 수 없었다. 2차는 안 나가겠다는 것이 마지막 약속이었다.
그게 지금의 상황이었다. 이화가 술을 따른 지 1년이 지났다. 그전에도 착실했지만 자성은 독기마저 느껴질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다들 한 달에 한 두 번씩 쓰는 휴가도 한 번도 쓰지 않고 매일 주방에서 일했다. 주방 사람들 모두 독한 놈이라고 혀를 찼지만 아무도 그를 진정으로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싫어할 수가 없었다. 자성은 영 속모를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머리가 영특한지 무엇이든 빨리 배웠다. 남이 미루는 일도 자기가 나서서 떠맡았다. 다른 이에게 건방을 떨거나 화를 낸 적도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일만 했다. 그가 존재감을 드러낼 때는 이화의 일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집에 돌아갈 때뿐이었다. 이미 불이 꺼진 주방에서 혼자 기다리다가 이화의 일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뒷문에서 만나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동이 틀 무렵의 어스름한 거리를 걸으며 남매는 재잘거렸다. 대부분 서로 다 아는 좁은 가게에서의 일이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아닌데 서로가 아는 이야기를 부지런히 쏟아냈다. 집에 가기 전에 24시간 여는 국수집에서 뜨거운 국수를 한 그릇 먹고 나면 그것으로 긴 하루가 끝났다.
계속 의욕이 없는 황오를 일찍 들여보내고 자성은 혼자 주방을 청소했다. 그는 아무도 없는 시간에 주방을 쓸고 닦는 일을 좋아했다. 조심스러운 생각이었으나 그렇게 혼자 물을 뿌리고 쓸고 닦고 있으면 그 넓은 주방이 모두 제 것인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은 이제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룸은 언제 일이 끝날까. 주문 들어올 때 들은 말로는 한국인 단체 손님이 와서 매우 붐빈다고 했다. 청도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았다. 가끔 룸으로 직접 음식을 가져갈 일도 있고 거리에서도 은근히 마주칠 일이 있어서 자성도 한국어 몇 마디를 귀동냥으로 배웠을 정도였다. 한국인 손님은 돈을 많이 쓰기 때문에 사장이 매우 좋아했다. 자성은 모르는 남자 옆에서 웃고 있는 이화를 떠올리지 않기 위해 바닥을 밀대로 박박 밀었다. 청소를 끝낸 자성은 주방의 불을 끄고 뒷문으로 통하는 통로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이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자성은 어둠 속에서 그동안 자신들이 모은 돈을 헤아렸다. 이화는 돈을 많이 벌었는데 그중에서도 치장하는 비용이 적잖이 지출되었다. 그래도 그녀는 알뜰하게 돈을 모았다. 목표했던 돈을 모두 채웠을 때 둘은 고기국수를 먹으며 자축했다. 큰 집은 아니었지만 부엌과 욕실이 있고 방이 하나 있는 작은 집을 눈여겨 골랐다. 자성은 처음으로 휴가를 냈다. 이화와 함께 낮에 직접 그 집으로 가볼 것이다. 아직 계약금도 치르지 않았고 고작해야 월세였지만 남매는 벌써부터 집이 생긴 것처럼 마음이 든든했다. 자성은 문득 황오의 말을 떠올렸다. 남들 사는 만큼만 살면 그것으로도 행복한 일 아닌가. 그는 황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23살 자성에게 있어서 가장 큰 꿈은 30살쯤에 작은 요리집을 하나 여는 것이었다. 그것마저 과분한 꿈이라고 여기면서도 자성은 제 손에 생겨난 흉터들을 만지작거리며 흐뭇하게 웃었다.
벽에 등을 기대고 깜빡 졸았는지 자성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소리에 눈을 떴다. 복도 끝에서부터 술냄새를 풍기는 여자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대부분 이화와 비슷한 나이의 여자들이었다. 그중 누군가는 부축을 받으며 나왔다. 자성은 그녀들과 간단히 인사하며 복도에서 옆으로 비켜섰다. 피곤에 지친 그의 여동생을 기다리면서. 그러나 점점 나오는 사람이 줄어드는 데도 이화는 보이지 않았다. 자성은 좀 더 기다렸으나 복도 끝에서 더 이상 사람이 나올 기미가 없었다. 그는 앞서 나갔던 이화의 ‘친구’ 한 명을 붙잡고 이화는 왜 나오지 않는지 물었다. 아까 사장님이 불러서 나가고는 못 봤어요. 몇 시에? 몰라요, 두시쯤이었나? 취기가 가득한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가버렸다. 자성은 어두운 복도에 서서 한참 안쪽을 쳐다보았다. 모든 것이 조용했다. 문득 자성은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쳤던 그날 밤의 어둠을 떠올렸다. 그때 그 어둠이 찾아온 기분이었다. 아까 사장님이 불러서 나가고는 못 봤어요. 자성은 찬찬히 여자의 말을 떠올렸다. 사장이 일하는 여자를 건드린다는 소문은 공공연하게 돌았다. 자성은 어둠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희미한 불안을 누르면서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비상등만 켜진 미로 같은 복도를 지나 사장실로 올라가는 동안 자성은 뒤에서 스치는 아버지의 손을 애써 무시했다. 지금은 그런 손에 붙잡힐 때가 아니었다. 해가 뜨면 남매는 이사를 할 것이고 그들이 원했던 ‘평범한 삶’으로, 그 밝음으로 걸어 나갈 참이었다. 그러니 그런 불행에 붙잡혀서는 안 되었다. 자성이 꿋꿋하게 마음을 비우며 사장실로 올라가자, 사장실 앞에는 매니저가 서 있었다. 매니저는 자성과 키는 비슷했지만 덩치는 아이 허리 하나정도로 차이 나도록 컸다. 험상궂은 외모로 과묵한 타입이었지만 쓸데없이 사람 괴롭히는 일도 하지 않는다고, 이화가 말했었다. 매니저는 자성을 보고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러나 비켜서지도 않았다.
“안에 이화 있나요?”
“아니.”
“사장님 좀 뵐 수 있을까요?”
“안 계시다.”
자성은 매너저의 어깨 너머로 굳게 닫힌 문을 쳐다보았다. 칠이 부분적으로 벗겨진 오래된 문이었다. 방음이 잘되는 문은 아니어서 종종 여자 신음소리가 새어 나오기도 했는데 지금은 조용했다. 순간적으로, 자성은 조금 안심했다. 그렇다면 이화는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아까 사장님이 부르셨다고 했는데, 혹시 이화 못 보셨어요?”
매니저는 가만히 자성을 쳐다보았다. 입술 위에 찢어진 상처가 있는 남자는 표정이 거의 없어서 그의 눈빛을 읽을 수 없었다. 그저 불길할 뿐이었다. 매니저는 천천히 품에서 두툼한 흰 봉투를 꺼냈다. 하얗고 깨끗하고 두둑한 봉투. 비상등의 흐린 불빛 속에 그것만 하얗게 빛이 났다. 자성은 그 봉투를. 봉투를 쥔 손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이게 뭐에요?”
매니저는 어서 받으라는 듯 봉투를 흔들었다. 자성은 머뭇거리며 봉투를 받았다. 그러고도 매니저는 말이 없었다. 아마 확인해보라는 뜻 같아서 자성은 봉투 안을 들여다보았다. 봉투 안엔 지폐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한 번에 이렇게 큰돈을 만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어서 자성은 그 안에 대체 얼마가 들어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자성이 돈을 확인한 뒤에야 매니저가 말을 이었다. 어느 틈엔가 그는 담배를 물고 있었다.
“그냥 네 동생 지참금이라고 생각해라. 이제 그냥 잊고 살아. 여기서 개고생 하는 것보다는 부잣집 가서 호의호식하는 게 낫지 않겠냐.”
그것이 전부였다. 매니저는 길게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담배연기를 길게 뱉으며 또 다른 복도로 사라졌다. 자성은 돈 봉투를 받아든 채 우두커니 남겨졌다. 아주 실낱같은 희망, 사라지는 담배연기처럼 흐린 희망을 가지고 사장실의 문고리를 잡아당겨 봤으나 문은 잠겨 있었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배운 것은 없어도 똑똑했던 자성은 그 짧은 말 한 마디에 모든 것을 알아들었다. 이화는 이곳에 없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앞으로도 모를 것이라는 사실이 자성을 깊은 나락으로 빠뜨렸다. 자성은 동생을 팔아 번, 무거운 돈을 들고 한참을 사장실 앞에서 서성였다. 누구도 그를 그곳에서 꺼내주지 않았다.
아무도 이화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자성은 똑같이 나와 일하였다. 누구보다 먼저, 누구보다 늦게. 말수가 줄고 얼굴이 마르긴 했지만, 볼썽사나운 일은 만들지 않았다. 사장은 가끔 보란 듯이 주방에 나타나 하릴없이 돌아다니며 과일을 주워 먹었는데 그걸 보면서도 자성은 마냥 부지런히 과일을 깎았다. 누군가는 돈이 무섭다고 했고 누군가는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고 했다. 황오는 팬에 야채를 볶는 자성을 툭 치며 슬그머니 괜찮냐고 물었다. 자성은 ‘뭐가요?’라고 물으며 황오를 잠깐 돌아보고 곧 제 할 일을 했다. 황오는 잠깐 비친 옆모습에서 어떤 표정을 읽었으나 그의 식견으로는 도무지 그것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몇 번인가 말을 더듬다가 이내 한숨을 길게 쉬며 가버렸다.
거기에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것은 자성이 돈을 쓰는 방식이었다. 알뜰살뜰 아끼며 음료수 한 잔 사마시는 것도 조심하던 그 이자성이가 일이 끝나면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돈을 썼다. 비싼 술을 마시고 부두를 어슬렁거리다 마주치는 낯선 이들 아무한테나 술도 샀다. 금세 아가씨들이 붙었다. 자성은 그네들을 데리고 다니며 옷도 사주고 술도 사주며 실컷 선심을 썼다. 돈이 사람을 망쳐놓는다는 걸 관광지구의 사람들을 잘 알고 있었고 이자성의 변화 혹은 몰락을 측은하게 보았지만 그 누구도 거기에 나서서 도와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가끔 매니저가 길에서 여자를 끌어안고 가는 자성을 묵묵히 쳐다보기야 했지만 그는 그저 보는 것이 일인 사람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자성은 마른 뺨이 더 패였고 몇 번이나 술 냄새를 풍기며 주방으로 기어들어온 탓에 주방장에게 뺨까지 맞았으나 고쳐지지 않았다. 결국은, 주방장이 그를 해고했다. 정신 차리라고 큰 소리를 쳤으나 자성은 듣고 있는 건지 아니면 꿈을 꾸는 건지 모를 얼굴을 하고서 주방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나타난 것은 마감시간 끝 무렵이었다. 황오는 팬을 닦다가 뒷문에서 나타난 자성을 보았다.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허옇고 멍한 얼굴이 유령처럼 어둠속에서 솟아 황오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 했다.
“너 인마 사람 놀라게 하지 마라. 그래, 잘 왔다. 주방장님께 잘못했다고 빌고 정신 차려라, 어?”
“형, 어디 계세요?”
“누구, 주방장님? 방금 나가셨으니 저쪽 출입구로 지금 나가면…”
“사장님이요.”
황오는 팬을 떨어뜨릴 뻔 했다. 자성은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주방의 출입문을 보고 있었다. 그 문 너머 어딘가에 있는 사장을 눈으로 보기라도 한 듯이. 손이 베인 것 같은 사소한 불편함이 황오를 괴롭혔다. 이놈 맛이 갔어. 황오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미 그를 다시 돌려보낼 수도 없다는 걸, 적어도 제 힘으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른 사람이라도 불러야 하나 고민하는데, 자성이 한 박자 늦게 말했다.
“이번 달 일한 값을 아직 못 받았어요.”
또박또박 말하는 문장은 누가 적어준 것처럼 딱딱했다. 그래도 황오는 안심했다. 그럼 그렇지, 순하고 소심하기로 이를 데 없는 천하의 이자성이 무슨 사고를 치겠다고. 사장님이야 사장실에 계시겠지. 황오가 그렇게 말하자 자성은 꾸벅 인사를 하더니 그를 지나갔다.
“너 진짜 그만 둘 거냐?”
황오는 좁고 마른 등에 짜증 섞인 고함을 쳤지만 자성은 귀머거리처럼 그대로 주방을 나섰다. 불쌍한 새끼. 맛이 가도 한참 갔네. 황오는 혀를 차며 주방의 불을 껐다. 쓴 입을 달래줄 화주 한 잔을 위해 부지런히 뒷문으로 나갔다.
자성은 미로 같은 복도를 지났다. 장사가 끝날 시간이라 복도엔 사람이 없었다. 곰팡이 냄새가 나는 복도를 돌자 비상구 불빛이 뿌옇게 흐려 보이는 문 앞에 섰다. 매니저는 없었다. 사장이 그 곳에 있었다. 그가 내뱉는 욕지거리가 문을 통과해 아둔하게 들렸다. 여자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자성은 문 앞에서 여러 번 손을 쥐락펴락했다. 그리고 뒤춤으로 손을 넣어 가지고 온 것을 꺼냈다. 황오가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었다면, 자성의 허리 뒤춤 옷 안에 꽂아 가지고 온 묵직한 물건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황오는 보지 못했고 이제 그것은 이자성의 손 안에 있었다. 낡고 조잡한 총이었다. 그리고 무거웠다. 총을 건넨 남자는 자성을 보고 히죽거렸다. 영 곱상하게 생겼는데 한 발이나 제대로 쏠 수 있겠어? 총 한 정과 총알 다섯 알. 딱 한번 자성은 아무도 없는 바다에 내려가 연습을 했다. 반동은 자성의 팔을 아프게 후려쳤지만 완전히 무너뜨리지도 않았다. 자성은 그 무게를 그러쥐고 남는 손으로 사장실의 문을 열었다. 사장은 한참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는 책상에 여자를 엎드려놓고 살찐 몸을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헉헉거리는 숨소리와 여자의 아양섞인 신음소리, 땀 냄새 같은 것이 안개처럼 자성에게 밀려왔다. 사장은 그 짓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자성이 들어온 것도 몰랐다. 자성은 잠깐 동안 그에게 직접 해명을, 그 개 같은 이야기를 한번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쩌면 이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니었다. 자성이 일주일간 사람들에게 술을 사 먹이고 환락가를 굴러다니며 긁어모은 이야기들로 이미 충분했다. 사장은 그럴 작자가 아니다.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온 부자에게 이화를 ‘팔아버렸을 때’ 이미 사장은 제 목숨은 반쯤 내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또 이것이 무슨 재판이라도 되는가. 최후변론은 그럴 사정이 되는 재판장 안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었다. 현실에서는 아니었다. 자성은 총을 들었다. 한없이 아래로 떨어지려고만 하는 그 무거운 총을 들어 헐떡이는 사장을 겨눴다. 총알은 네 알이다. 그 중 한 알이라도 똑바로 박히면 되는 일이었다. 자성은 사장의 밑에 깔려 흔들리는 여자의 흰 허벅지를 봤다. 이화야. 내 동생, 이화. 꽃 같은 내 동생. 피지도 못한 그 꽃을 꺾어다 돼지우리에 내다 판 사장은 죽어야 한다. 그래서 자성은 방아쇠를 당겼다. 두 번, 총성이 온 가게 안을 울렸다. 사장은 운이 좋았다. 그는 막 절정에 올랐을 때 머리가 터져 죽었다. 고통이고 뭐고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피가 사방에 튀었다. 뜨거운 피와 살점을 뒤집어 쓴 여자가 갑자기 숨이 멎을 것처럼 꺽꺽거리다가 간신히 비명을 쥐어짰다. 그 비명 소리에 자성의 머리가 조금 깨어났다. 이제 가야해. 자성은 길게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도망쳤다. 가장 짧은 복도를 골라 달리고 주방을 통해 뒷문으로 달려 나갔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그는 거리로 나왔다. 거리는 평온했다.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며 떠드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자성은 오로지 뛰는 일에만 집중했다. 뒤춤의 총이 계속 덜그럭거리며 그를 방해했다. 어둠 속으로 내달렸던 기억은 현재로 쫓아와 그와 함께 했다. 그날 밤은 가난과 아버지를 피해 달렸으나 지금은 무엇을 피해 달리고 있는지 자성도 알 수 없었다.
항구에 닿아 길이 끝날 때까지 달려간 자성은 말없이 손만 내미는 사내에게 품에서 꺼낸 봉투를 건넸다. 집을 옮기려고 모아둔 돈의 전부였다. 사장이 준 돈은 전부 총을 구하고 사람들에게 환심을 사는 것에 썼다. 그 봉투에는 남매가 꿈꾸던 소박한 삶 전부가 들어 있었다. 브로커는 양에 차지 않은지 혀를 찼지만, 이내 자성을 배에 태워주었다. 작은 어선은 새벽이 끝나기 전에 서둘러 출발했다. 자성은 뱃머리를 붙잡고 토악질을 했다. 먹은 것이 없어 쓴 위액만 뱉어냈다. 멀어져 가는 항구는 지옥같이 밝았다. 가난이 싫어서, 죽기 싫어서 고향에서 도망칠 때까지만 해도 청도는 그들에게 유토피아였다. 그러나 그곳 역시 천국은 아니었음을, 자성은 한참을 멀어지는 불빛을 보며 생각했다. 여동생 팔아먹은 값으로 이만하면 호강하네. 자성은 그렇게 중얼거렸고 브로커가 그를 걷어 찰 때까지 난간에 서서 멀어지는 청도를 쳐다보았다.
+ 청자피오케때 내려다 못 낸 글. 교류전에 내든지 웹연재를 하든지 올해안에는 끝내는 게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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