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성/2차

미임파 이단브란 / 개와 늑대의 시간


별것없는 알파오메가AU

마르님을 추억하며...마르님..좋은사람이었는데..





뭐 하고 있어? 나는 크게 하!하고 한번 웃었다. 좋은 시도지만, 극비라는 거 알잖아. 공식적으로 나는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아. 휴대폰 너머의 남자는 낮게 웃었다. 그냥 실없이 말해본거야. 내가 실없이 말하는 거 좋아하잖아. 맞아. 그렇지, 하면서 나도 따라 웃었다. 나는 길에 서 있었고 코너에 기대서 통화 중이었다. 남미의 햇살을 뜨거워서 잠시 멈춰선 사이에도 뺨이며 정수리가 사정없이 뜨거워졌다. 선그라스를 낀 눈으로도 세상이 너무나 밝아보여서 나는 자꾸 눈을 깜빡거렸다. 언제 돌아와? 나는 습관적으로 어깨를 으쓱했다가 곧 그것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리액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자동 반사적으로 따라오기 마련이니까. 글쎄, 그거야 모르지. 이제 나는 시계를 봤다. 그리고 이제 돌아가봐야 할 시간이군. 건너편 남자는 혀를 찼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면서? 맞아. 정확해. 그리고 지금 가야해. 돌아오면 연락해, 윌. 안한 적도 없잖아. 남자는 전화를 끊을 때까지도 실없는 말을 계속한다. 그는 끊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약 잘 챙기고. 나는 휴대폰을 품에 넣으며 생각했다. 별 걱정을 다 하네.


요즘 약은 정말 좋잖아. 나는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과학과 의학의 발전은 처음 인간이 아스피린을 복용한 이후로 눈부시게 발전하지 않았던가. 수십년전에 최초로 개발된 오메가 억제제는 혁신적이었다. 그전까지 민간요법으로만 전해지던 것들이 공식적인 식약청 인증을 달고 나와 불티나게 팔렸다. 이후 알파-오메가 이른바 '형질'시장은 제약회사들의 새로운 금광으로 떠올랐고 회사들을 매년 새 제품을 내놓았다. 이제는 불편하게 매 식사때마다 챙겨먹을 필요조차 없었다. 급할때 붙일 수 있는 패치도 시중에서 쉽게 살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내가 쓰는 것은 앰플이었다. 히트싸이클이 시작되기 전에 한번 맞으면 그 주간을 무사히 넘길 수 있게 해주는 강력한 약으로 정부요원들에게만 지급되는 품목 중 하나였다. 약에 대해 생길 수 있는 부작용에 동의한다는 서명만 하면, IMF는 알파든 오메가든 가리지 않고 뽑았고 모두에게 약을 지급했다. 어딘가의 현장에서 폭탄에 찢겨 죽기 전까지는 약 걱정이 없다는 것 역시 정부 요원이라는 재미없는 자리의 좋은 점 중 하나였다. 그래도 한 팀에 알파와 오메가는 좀 심하지 않아? 라고 벤지가 우스갯소리를 했을 때 나는 '그런 생각 좀 크리피하지 않아?'라고 대답했고 이단은, 이단은 뭐라고 대답했더라.


"어서와."


나는 멍청한 얼굴로 멈춰섰다. 이단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어째서 기척도 못알아챘는지 모를 일이다. 그는 그런 것을 잘했다. 유령처럼 돌아다니는 것, 눈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희미하게 구는 것. 얼굴을 보면 너무나 선이 명확하고 그 눈이 빛이 나서 어떻게 그렇게 존재감 없이 다닐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는 그렇게 움직였다. 나는 내가 어느새 두 블럭을 걸어왔음을 깨닫고 부산하게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좀 허름하긴 하지만 현재 우리 예산으로 구할 수 있는 아지트는 이게 최선이야."

"수고했어."


나는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불이 켜진 창고의 높은 천장에서 희뿌연 빛이 쏟아졌고 방금전까지 세상에 오렌지와 레몬의 중간 정도로만 채워진 색감이라고 생각했던 시야는 금새 어둠에 잠긴 잿빛으로 변했다. 천장 사이에 뚫린 틈으로 쏟아지는 빛이 광원의 전부였다. 1층에서 벽을 타고 만들어진 2층으로 가는 계단은 뼈를 드러낸 개처럼 측은해 보였다. 1층에 주차되어 있는 차만큼은 완벽하다고 자부한다. 이 기관은 도통 예산이 어디서 솟아나는지 몰라도 임무에 쓰는 운송수단만큼은 기가 막히게 잘 조달해준다. 자동차회사의 주식을 매입해서 연금으로 불리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일 지도 모르지. 적어도 보험회사 주식은 아니겠지. 이단은 차를 한바퀴 빙 돌고 잡동사니를 늘어놓은 테이블도 지나 1층을 한 바퀴 돌았다. 나는 주머니에 양 손을 넣고 이단이 아지트를 둘러보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정도면 타지마할도 부럽지 않겠는걸, 브란트. 이단이 뚫린 천장을 가리키며 물었다. 햇빛 좀 봐. 나는 다소 뚱하게 대답했다. 그건 무덤이잖아. 이단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무덤이지.

 

일사는 타겟 옆에 붙어 있었고 벤지는 그녀를 백업했다. 일사는 너무나 뛰어나서 천하의 이단 헌트가 플랜 비를 담당하게 만든 최초의 스파이였다. 그윽한 눈으로 머리를 틀어 올리고 앉아 있으면 고전 명화의 한 장면 같지만 곧 스크린을 보면서 '그냥 A를 죽이고 B를 죽인 다음에 C를 죽이자'고 말할때면 어쩐지 목이 서늘했다. 그녀가 일에 합류하게 된 것은 이단의 영향이 컸다. 보고서를 미룬다거나 너무 괴팍한 계획을 쓴다거나 하는 '오명'-그러나 진실-을 잔뜩 뒤집어 쓰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IMF 최고의 요원이었기 때문에 그의 말에는 언제나 무게가 실렸다. 프리랜서인 일사 파우스트는 남미에서 바로 조우했다. 근사하게 그을린 피부에 랩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곧 화장실에서 카르텔 조직원 세 명하고 붙어서 모두 정신을 잃게 만들고 돌아왔지만 어디 하나 망가진 구석 없이 멀쩡한 모습으로 주문해 놓은 모히토를 마셨다. 벤지는 어깨를 움츠리면서 '알파는 다 저래?'라고 중얼거렸다. 글쎄, 다 그렇진 않지. 


나는 DC에 있는 만난지 2년차 되는 내 파트너를 종종 비교군으로 떠올린다. 그는 유약해보이는 흰 피부에 갈색 눈을 가졌다. 내내 사무실에 들어앉아 지내는 야당 3선의원 보좌관에 딱 어울릴 외모다. 뺨이 말랐지만 입꼬리가 호감형으로 올라가고 피부가 좋다. 대신 이마가 높이 서고 눈이 푹 꺼져서 웃지 않고 눈만 보면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인상이 된다. 나는 그 얼굴이 퍽 괜찮다고 생각했다. 물론 오메가와 알파가 만나는데 있어서 얼굴 생김새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이도 저도 아닌 판단하기 애매한 얼굴이 나는 차라리 익숙했다. 그와는 파티에서 만났다. 언더커버는 아니었지만 정부 관계자들이 모여서 재미없는 외교 놀이를 하고 있는 파티장이었으니 일의 연장선상이기는 했다. 우연히 같은 무리에 끼게 되었고 헤어질 때는 명함을 교환했다. 그리고 1시간 뒤에 나는 그의 목덜미에 코를 파묻고 진하진 않아도 은은하게 풍기는 향을 맡고 있었다. 그는 지독하게 바빠서 제대로 몸 관리할 시간은 없지만 그런 것치고는 괜찮은 몸에 목이 길었다. 나는 그와 섹스할때 내가 상위로 올라타서 깊숙이 넣은 채로 몸을 숙이는 것이 좋았다. 그럼 더 끝까지 차오르는 것처럼 느껴져 만족스러웠고 나는 짐승처럼 그의 몸을 덥석 물었는데 그의 긴 목은 물기에 아주 좋았다. 섹스가 끝날때면 그는 투덜거리며 '이건 뭔가 잘못된거야'라고 나름 귀여운 소리를 했다. 하지만 내가 덜덜 떨면서 물면 좋아하잖아. 나는 그의 목에 밴드를 붙여 주면서 말하곤 했다. 내가 희열에 차서 몸을 떨때, 그는 부드럽게 잡아주는 편이었지만 반듯하게 휘어진 눈에서는 여유있는 포식자의 느낌이 났다. 똑같이 짐승이라도, 아무리 부드러워도, 그가 내 상위에 있다는 느낌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그게 유전자 탓이라면 신이 참 엿같은 짓을 했다고 밖에.


"뭣 좀 먹을까?"


이단이 의자를 끌어다 앉으며 말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속이 좀 허하긴 했지만 참을 만 했다. 일하면 두 다리 편안하고 배부르길 바라는 것은 사치다. 물론 온전히 그 이유때문에 속을 비워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먹는 건 좋지 않았다. 이단도 별 생각은 없는지 그저 의자에 주저 앉아 있었다. 나는 비스듬한 각도에서 그를 보면서 다른 의자에 앉았다. 우린 대각선으로 앉아있었고 각자 무전기와 노트북을 사이에 두고 침묵했다. 나는 이상하게 자꾸 어깨가 움츠러 들어서 등받이를 뒤집어 팔을 얹어 앉았다. 이단이 노트북 화면을 쳐다보면서 나를 불렀다.


"브란트."

"왜."

"왜 약 안 맞았어?"


나는 내 둥그런 손 끝을 쳐다보고 있었다. 도무지 곱다고는 못할 손이다. 길이는 괜찮은데 마디가 굵고 손 끝이 뭉뚝하다. 그러나 뭐든 다 해내는 손이라는 소리는 들었다. 하고 싶은 일은 어떻게든 이뤄내고 만다는 것이 내 커리어에 가장 큰 칭찬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거다. 나는 혼자 벌써 이해를 했다.


"그러고 싶어서."


나는 이단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의 눈은 벌써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 약을 안 맞았냐는 말투는 장난스러웠지만 그는 웃지 않았다. 그는 테이블에 깍지 낀 손을 올려두고 있었는데 그대로 미동도 없이 눈만 돌려 나를 보고 있었다.


"우리가 단 둘이 여기서 10시간 이상 대기를 하면서 A팀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알지?"

"내가 짠 거니까, 당연하지."

"그런데 약을 안 맞았어?"


나는 문득 웃음이 났다. 시시한 웃음이었다. 그렇게 숨을 들이쉬고 나니 좀 살것 같기도 했다. 


"넌 늘 안 맞고 다니잖아, 이단 헌트."


마치 칼을 빼든 개선장군처럼. 나는 한번도 일을 하면서 제때에 약을 안 맞은 적이 없다. 형질이 강하진 않지만 일을 하는데에 방해가 된다면 당연히 억누르는게 맞았다. 알파 중의 알파라고 소문이 난 이단 헌트랑 같은 팀이 됐을 때 걱정하지않은 것도 그런 이유였다. 당연히, 모두가 약을 제때에 맞으니까. 그러면 아무 일도 없지. 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단 헌트는 약을 맞지 않는다. 난 이것을 약의 부작용때문에 알게 되었다. 약으로 페로몬을 억누를 때에는 베타처럼 알파나 오메가의 향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데, 언젠가 내 몸에 약이 들지 않았던 때가 있다. 이단과 팀이 된지 1년이 좀 넘어가던 때였다. 부작용이 난 줄도 모르고 이단과 한 차에 탔던 나는 곧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차 안을 꽉 채운 이단의 체취에 손톱이 파고들도록 주먹을 꽉 쥐어야 했다. 당장 그 손을 붙잡고 내 옷 속으로 밀어넣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기 위해서 나는 혀끝까지 살짝 깨물어야 했다. 그전까지는 전혀 몰랐던 세상이었다. 나에게 알파와의 섹스란 적당한 유희였고 어느 정도 관례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단 헌트는 그런 것을 뛰어 넘어 존재했다. 나는 사춘기 이후로 처음으로 이단과 섹스하는 꿈을 꾸며 몽정까지 했다. 돌았구나. 세탁기 앞에서 한탄을 하면서도 나는 입술을 핥았다. 다음날 출근해서 사무실에서 손을 흔드는 이단을 보면서 욕심이 나는 것은 가져봐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저항할테면 저항해 보란듯이 온 몸으로 네 체취를 뿜으면서 다니잖아. 어떻게 이제까지 문제가 없었지?"


이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지. 나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이단의 페로몬을 알아채는 사람은 그의 발 밑에 기어서라도 그에게 매달릴 수 있다.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 문제 없지. 벤지가 그렇듯이. 나는 이단 헌트를 스토킹한 적이 있다. 퇴근길을 따라 가는 며칠 간 나는 그가 매번 다른 장소에서 매번 다른 사람들과 섹스한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무질서해보이지만 나름 철칙이 있는 이단이 눈이 맞은 아무하고나 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인정해야 한다. 나는 뒷골목에서 상대의 뒷머리를 잡아 누르며 허리를 세우라고 중얼거리는 그의 모습에 흥분을 느꼈다. 사정할때마다 다른 이의 몸을 사정없이 물며 흔적을 남기는 모습에 약간 발기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미쳤지. 나는 침대에 누워 많은 생각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파트너와의 섹스에서 그 모습을 흉내내는 것으로 허겁지겁 합의를 봤다. 


그러나 파트너의 은은한 향취는 내게 금방 잊혀졌다. 나는 이제 본격적으로 이단 헌트에게 끌렸다. 몸만 끌려가는 건지 마음이 끌리는 건지 구분은 무의미했다. 


"그래서, 브란트, 원하는 게 뭐야?"


지금, 여기서 하자고? 이단이 부드럽게 웃었다. 나는 일어나서 테이블의 노트북을 다른 쪽으로 치우고 무전기를 쌍방향이 아니라 일사와 벤지 일방향으로 돌렸다. 연락은 받기만 해도 족하다. 테이블 건너편에는 여전히 이단이 앉아 있었다. 나는 그의 멱살을 잡듯이 세워서 입을 맞췄다. 끈쩍하고 뜨거웠다. 생각보다도 더. 숨이 턱하니 막혔다. 이단은 이제 봐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발끝이 저렸다. 


"나랑 섹스 한번 하자, 이단."


이단이 천천히 내 뺨을 그러쥐었다. 약을 먹지 않은 채 주기를 맞은 몸은 참 오랜만이었다. 알파의 손이 닿은 부분이 뜨끈하게 녹아내리면서도 간지러워서 참을 수 없었다. 고작 뺨인데도, 난 그 손을 핥고 싶어졌다. 손을 핥으며 사정하고 싶었다. 제발 한번만 하게 해달라고. 


"좋아, 윌, 사랑해 줄게."


그가 말하는 사랑은 부드럽지 않다. 그러나 나는 매우 기뻐서 테이블 위로 올라가 그의 벨트부터 풀어 제꼈다. 이렇게 되서 다행이야. 이단은 여전히 부드럽게 속삭였다. 나는 원하는 것은 꼭 손에 넣어야 하거든. 나는 어딘지 익숙한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단이 내 성기를 입 안에 넣는 순간 머릿 속은 하얗게 지워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