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고
(제레미즈-브란트클린트 쌍둥이 설정)
그만 둬라. 브란트는 눈을 껌뻑거렸다. 뭔 개소리람. 5개월만에 얼굴을 보는 쌍둥이 동생은 소파에 빨랫감처럼 구겨진 채 고작 그런 이야기를 했다. 퍽 건방져보였지만, 그것은 목에 깁스를 한 탓일지도-문자 그대로- 모른다. 넌 옛날부터 약간 삽질 전문가잖아. 클린트는 그런 말을 덧붙였다. 브란트는 그에게 물을 가져다 주면서 대답했다.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해주는 건데 여긴 내 집이거든? 헛소리할거면 집으로 꺼지든가, 가서 월시한테 얻어터지면서 간호 받으면 되겠네. 클린트는 큰 소리로 웃었다. 웃겼다기 보다 그런 상황만큼은 피해보고자 모른 척하는 것이다. 애초에 5개월 간 잠수를 타다가 갑자기 목과 다리가 부러져서 나타났다고 하면 큰형인 월시의 분노(를 가장한 걱정이지만 분노와 비슷한)를 피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클린트는 뜬금없이 DC에 나타났다. 브란트의 집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브란트의 이웃들이 인사를 건넬정도로 똑같이 생긴 쌍둥이 동생은 덤덤하게 '며칠 신세 좀 지자'하고 태연히 따라 들어왔다. 브란트는 보고서에 치여 야근을 하고 돌아왔다가 그에게 간신히 소파자리를 내주고 별다른 사정도 듣지 못한 채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아침에 처음 얼굴을 보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그만 둬라' 인걸보니, 목이 부러졌어도 동생은 여전히 사회성이 제로라는 사실이 이상하리만치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네 꼴을 보면 당장 너부터 그 '슈퍼히어로' 일을 그만 둬야 하지 않을까"
브란트는 손으로 따옴표를 만들었다. 왼쪽다리에 통깁스를 한 슈퍼히어로는 끙 소리를 내며 다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일 이야기가 아니야."
"그러고 보니 너 연금은 나오는거냐? 사망보험금은 월시 앞으로 해놨어?"
"네 이야기라고."
브란트는 소리내서 커피를 마셨다. 감이 좋지 않다. 클린트는 이런 말을 자주 하는 인간이 아니다. 갑자기 쳐들어와서 아침부터 이런 소리를 하고 있는 걸 보니 머리를 심각하게 다쳤거나 간밤에 뭐라도 보고 들은 것이다.
"무슨 일?"
"그거야 네가 알겠지."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말 그대로야."
클린트는 뻣뻣하게 생수를 마셨다. 도와줄수도 있겠지만 전혀 도와주고 싶지 않았다. 물을 한번에 거의 반통을 비운 클린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너 밤새 울었다고. 클린트는 어두운 거실에 누워서 침실에서 들려오는 흐느낌을 반주삼아 잠을 청해야 했다. 불편한 다리를 끌고 쌍둥이 형의 방문을 열어도 봤지만 그는 자고 있었다.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로. 끔찍한 꿈만 남아서 빚을 갚는 사람같았다. 등신. 클린트는 잠든 브란트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브란트는 듣지 못했다.
"....글쎄, 몰랐는데."
"뭐 워낙 못생겼으니 얼굴이 붓든 말든 차이도 모르겠지."
"미쳤구나. 너보다 내가 더 잘생겼다는 건 오피셜이거든?"
"냇은 그렇게 생각 안하던데."
"냇은 그냥 널 생각 안할걸."
클린트가 쿠션을 집어던지다가 목을 부여잡았다. 다른 말로 돌리지마. 지금 하는게 뭐든지 그만 둬. 브란트는 스톨에 앉은 채 클린트의 말을 들으며 습관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간밤에 무슨 꿈을 꿨더라. 평범했다. 몹시 평범한 꿈이었다. 꿈에서도 지독하게 많은 일을 했다. 팀을 만들고 계획을 짜고 실행하면서 꿈에 이단이 나왔다. 그 역시 몹시 평범했다. 평범하게 폭탄을 향해 달려나가는 등을 지켜봤다.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등을 지켜봤다. 그런 꿈이었다. 클린트는 사회성이 엉망이지만 입을 열면 옳은 말을 한다.
"클린트, 네 팀에서 가끔 재수없다는 이야기 듣지?"
"아니."
"자주 듣겠지."
뭐. 클린트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브란트는 킬킬 웃으며 컵을 개수대에 담그기 위해 일어났다.
"안 그만 둘거지? 고집만 더럽게 세니까."
"어."
클린트는 거기까지 말한 뒤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욕실을 가기 위해 지나갈때 보니 벌써 잠들어 있었다. 아마 밤새 못잔 모양이었다. 담요를 덮어주고 브란트는 출근준비를 했다. 그를 기다리는 등을 보러 가기 위하여, 그는 찬물로 세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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