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수호자들에게만 전해지는 은밀한 비밀이었다. 사람들은 자기 옆에서 향을 피우는 사람이 우상의 실제 존재임을 몰랐고 신은 인간들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하며 짧은 삶들을 지켜봤다.
아주 어린 나이에서부터 시작된 오랜 수호자 선발은 후보자들의 나이가 18살이 되면 끝이 난다. 마침내 무수히 많은 관문을 통과한 단 한명만이 수호자로 선정이 되고 왼손 약지를 끊는 맹세를 거치고 나면 이후의 삶은 신의 것이 된다. 그렇게 맹세를 거친 수호자만이 신의 신성을 알아 볼 수 있다. 신안을 뜨고 처음 신을 대면하는 순간 수호자는 헤어나올 수 없는 경외와 희열에 빠져 기절하기 일쑤였다. 며칠 간 신열을 앓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18살의, 수호자는 가만히 서 있다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신을 뵙습니다. 말투는 딱딱했으나 긴장한 구석이 없었다. 신은 재밌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오랜 세월 그 무수한 수호자들 사이에 이런 자가 있었던가.
어린 수호자는 금방 자라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신을 모시는 자이기 때문에, 혹은 인간이란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신의 시선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갔다가 다시 이쪽으로 돌아오는 사이에 쑥쑥 자라버렸다. 입가에 길게 째진 상처는 신전을 해하려는 자들과 다투다가 생긴 상처였다. 신은 흔쾌히 상처를 없애주겠다고 했으나 수호자는 이마를 땅에 붙인 채 거절했다. 훈장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공손한 어투로. 이건 제 자랑입니다. 신은 그를 내버려 두었다. 대신 그의 공로를 치하해주기로 했다. 수호자가 되기 위해 브라더후드에 들어오면서 이름을 버렸다. 신은 그에게 이름을 주기로 했다. 내가 자리한 별의 위치가 그곳이지. 신은 천천히 발음한다. 알타이르. 그것이 너의 이름이다. 알타이르는 따라 발음한다. 알타이르. 사람들이 섬기는 신의 우상이 독수리였기 때문에 참으로 적절한 이름이었다.
어느날, 신에게는 너무나 순식간인, 신은 낮잠을 자고 있었다. 별에서 내려온 신은 햇빛이 비치는 곳이 낯설기 마련이다. 무화과 그늘 아래에 낮잠을 자는 신을 알타이르가 내려다 보았다. 그냥 눈으로 보면 너무나 평범한 사내가 그곳에 누워 있었다. 고집스러운 검은 머리에 평범한 복장, 그을린 피부의 남자는 피곤해 보였고 오랜 여행길에 오른 사람같았다. 그러나 신안으로 마주하는 순간, 알타이르는 휘청거렸다. 신의 존재감이 알타이르의 다리를 부러뜨릴 듯이 다가왔다. 신은 너무 대단한 존재여서 그 옆에 있는 것조차 엄청난 영광이었으며 복이었다. 알타이르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 아름다운 신성으로 손을 뻗었다. 남자의 이마에 손을 얻었을 때, 신안이 아닌 평범한 눈을 떴을 때 알타이르는 생각했다. 나는 이곁에 있고 싶다.
그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알타이르의 삶은 당연히 신의 것이지만 그 광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릴 숙이지 않으면 눈이 부셔서 쳐다볼 수가 없다. 그것보다 한발자국 더. 내가 신이 될 수 없어서 불가능하다면 다른 방법도 있겠지. 알타이르의 서늘한 손에도 신은 신경쓰지 않았다. 너무 하찮았기 때문이다. 알타이르는 자신이 신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줄 수 없다는 것이 슬퍼졌다. 괴로웠고 종국엔 화가났다. 신을 모시면 모실 수록 스스로의 보잘것없음 만을 느껴야 하다니. 나는 이렇게 비참해지려고 수호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알타이르는 생각했고 신은 못 들은 척 했다. 역시나 너무 하찮았기 때문에.
또 다시 어느 날, 18살의 수호자가 서른을 앞둔 청년이 되었던 날에 신은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별들이 쏟아부어준 술은 독했고 신을 기분좋게 재웠다. 알타이르는 항상 신 옆에 있었다. 그는 신이 받아 마신 술잔을 치우면서 그 안에 남은 별조각 몇 방울에 자신의 단검을 담궜다. 그리고 자고 있는 신의 육체, 평범한 인간의 육체에 올라타 왼팔을 단단히 붙잡았고 주저없지 단검으로 신의 왼팔을 잘랐다. 잘린 팔 안에서 피 대신에 검은 우주가 쏟아져나왔다. 신이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는 사이 신을 감싸고 있던 신성과 광휘가 우주와 함께 흘러나가 땅에 스며들었다. 이윽고 그 자리에는 잘린 팔을 부둥켜 안은 한 남자가 남았다. 알타이르는 자신에게 남아 있던 신안이 없어졌음을, 영영 이땅을 지켜주던 신성은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남은 것은 외팔의 남자뿐. 그러나 그 남자는 알타이르의 유일한 친구이며 유일한 세상이며 유일한 숭배자였으니 알타이르는 기뻤다. 아직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남자앞에 무릎을 꿇고 알타이르는 기쁘게 말했다.
내 너에게 이름을 준다. 말릭. 너는 말릭이다. 나와 같이 비참한 존재, 너는 말릭이다.
그 땅에는 신이 없고 하늘엔 별이 뜨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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