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0층에 그 사람있잖아. 누구? 아 팔 없는사람. 그 사람 팔 한쪽만 있지? 나 몰랐어. 그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잘 안느껴진다니까. 근데 가끔 걸어다닐때 소매가 펄럭거리거든, 그거 좀 무섭더라. 팔은 어쩌다 그렇게 된거래? 어릴때 차에 깔렸다고 하던데? 어 내가 듣기로는 군대에서 그랬다던데. 군인 출신이래? 왠지 안어울리는데. 이 회사가 군인 출신들 많이 뽑잖아. 군인 출신들 대부분 영업부나 연구 컨설턴트인데 그 사람은 영업지원이잖아, 일반 사무직에는 잘 안 뽑던데. 팔이 하나 없으니 영업보내긴 좀 그렇지, 우리 업체랑 계약하시면 이렇게 팔 하나가 날아가도록 지켜드립니다- 라고 팔 수 있겠어? 으 자꾸 생각하니까 좀 무섭다. 벽 너머로 조금 더 재잘거리던 목소리들은 천천히 멀어져 갔다. 막 나온 인쇄물을 옆으로 치워놓고 말릭은 새로운 페이지를 인쇄한다. 양면, B4->A4, 20부. 복사기는 다시 바쁘게 종이를 뱉어냈다. 안경 위로 복사기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느리게 지나간다. 팔이 없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표적은 될 수 있다. 적어도 모두가 사지가 멀쩡한 곳에서는 그렇다. 차라리 조금 더 재미있는 소문이 돈다면 좋을텐데. 정글에 갔다가 악어에게 팔이 먹혔다든지 -그렇다면 별명이 후크가 될 수도 있을테고- 연쇄살인마에게서 도망칠때 도끼에 팔이 잘렸다든지. 그럼 태연하게 이야기를 지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그럴법한 이야기들만 떠돌면 사람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따라서 대답해줄 이야기도 없어지는 것이다. 말릭은 덜렁 늘어져 있는 소매를 바지주머니에 잘 꽂아 넣었다. 한여름에도 긴 셔츠만 입는 그에게 왜 그렇게 긴 셔츠만 입냐고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말릭에게 질문하지 않는다. 추측할 뿐이다. 그게 나를 좀 더 얇게 만들지. 말릭은 안경을 고쳐쓰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아직 멀었습니까?"
복사실 문틈으로 한 남자가 고갤 내밀었다. 눈매가 매섭고 코가 높은 남자의 이름은 알타이르다. 가장 실적이 좋은 영업사원이었다. 입사한 시기는 비슷하지만 직급은 알타이르가 더 높았다. 그는 이제 기업고객들을 전담하고 액수가 큰 건들에만 손을 댔다. 그가 하는 브리핑을 도와주는 것도 말릭의 일 중에 하나였다. 말릭의 일은 대부분 그런 식이었다. 준비하는 것. 무엇이든. 꽤 적성에 맞는 일이지.
"거의 됐습니다."
"더우면."
그렇게 돌아가리라 생각한 알타이르가 그림처럼 멈춰서 말릭을 쳐다봤다. 더우면 소매는 어떻게 걷어요? 말릭은 그에게 한 팔-멀쩡한, 유일하게 들 수 있는-을 들어 보이고 소매 끝을 입가로 가져갔다. 천천히 이를 이용해서 단추를 풀고 소매를 접어 올릴때까지 알타이르는 꼼짝않고 그를 쳐다봤다. 팔꿈치까지 소매를 접어 올린 말릭이 아까와 같은 자세로 팔을 들어 보였다.
"인상적이지만 너무 느리네요."
자료는 A실로. 그리고 알타이르는 사라졌다. 말릭은 인쇄물을 챙겨들었다. 회의실은 살짝 더웠다. 아까부터 돌아가고 있던 프로젝터때문일 것이다. 자료를 나눠주는 동안 알타이르는 스크린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얼굴위로 화면이 반쯤 새겨져서 그 역시 납작해보였다. 준비한 자료를 나눠주고 말릭은 어두운, 구석의 벽 쪽으로 붙어섰다. 알타이르의 시선이 한바퀴를 돌아서 말릭의 팔을 스쳐지나갔다. 소매를 걷어 드러난, 하얗지만은 않은 팔목까지 태연히 훑고 그는 브리핑을 시작했다. 저 사람은 참 지독하군. 말릭은 벽에 벽처럼 붙어서서 얕게 숨을 쉬었다.
2
알타이르 이븐 라 아하드는 군수업체인 마시아프 사에서 여러가지 의미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어제까지는 회의실에서 바이어들에게 대공포를 팔다가 다음날에는 직접 시리아까지 물건을 운반해가서 며칠간 시연까지 보여주는 식의 공격적이고도 집요한 업무방식도 유명했고 그 유별난 서슬 덕분인지 실적이 좋아서 최단기간 가파른 승진을 했다. 내년쯤에는 파트너 자리를 얻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사내에 난무했다. 바이어들은 알타이르를 좋아했고 또 좋아하는 만큼 싫어했다. 실제 경험으로부터 쌓인 뛰어난 용병술 -어느 바이어는 술자리에서 그가 'AS'차원에서 며칠 부대를 이끌어 준 적이 있다고 이야기했다-과 또 그를 바탕으로 한 무기에 대한 해박한 지식들은 바이어들에게는 입맛당기는 것들 뿐이었다. 그러나 알타이르는 흔한 영업사원과는 달리 바이어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굽신거리지 않았고 도리어 신랄하게 바이어들의 현재 군비 상태를 비난하는 일이 더 많았으므로 바이어들은 그와의 미팅을 잡으려고 애를 쓰면서도 비서에게 서류를 집어던지는 식의 비열한 분풀이를 했다.
유명한 만큼 그의 이야기는 여기저기 알려져 있었다. 시리아 출신, 미 육군을 거쳐 용병으로 다시 시리아에서 활동했다. 그곳에서 다시 마시아프 사로 스카웃되기까지 회장인 알 무알림이 직접 면접을 봤다는 루머 아닌 루머도 알타이르를 유명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였다. 어딜가나 그와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넘쳐났고 동시에 흡연실에서 그 이름을 말하며 침을 뱉는 자들도 넘쳐났다. 알타이르는 그런 것에 너무나 익숙했다. 세상은 뱀의 소굴. 감정이라는 것은 뱀처럼 기어나와서 사람의 몸에 감기고 이 사람 저 사람을 얽히게 만든다. 평화를 위해 일해야한단다. 아주 어린 시절 쫓기듯 미국으로 들어올 때의 기억이 희미하다. 하지만 아버지가 했던 말만큼은 기억하고 있었다. 평화를 위하다니요. 이보다 더 좋은 세상이 어디있습니까. 뱀 소굴에서 사는 법은 어렵지 않지요. 뱀은 태우는 게 제일입니다. 알타이르는 전망 좋은 사무실에 앉아서 한없이 높은 빌딩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는 존경과 질투와 선망과 모욕을 동시에 받았다.
그러나 무관심은 오히려 이 사이에 굴러다니는 모래 한 알처럼 고까운 것이었다. 알타이르는 그 표정을 떠올리면서 여러가지 이름을 붙이다가 간신히 무관심이라는 이름을 골랐다. 마치 영원할 것처럼 피곤한 얼굴이지만 또 전혀 영향받지 않는 얼굴로. 한팔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태연히 끌어안고 걸어가는 남자를 봤을 때 알타이르는 저건 뭘까 생각했다. 상해 군인들은 보통 사회에 적응을 잘 못하지. 알타이르의 동료-라고 본인을 소개하고 다니는- 압바스가 라운지에서 그런말을 했다. 지금 마시아프 사에서 일하는 사람 대부분이 군인이거나 용병 출신이지만 심각한 외상을 입은 사람은 별로 없잖나. 근데 한 팔이 없는 사원? 이건 특종이지. PTSD는 보통 일이 아니라고. 팔을 날려먹고도 태연히 회사에서 사무업무를 보는 게 가능해? 알타이르는 위스키를 마시며 중얼거렸다. 너한테는 불가능한 일이 누군가에겐 가능하겠지. 압바스는 맘이 상해서 입을 다물어버렸고 알타이르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엘레베이터에서 그 남자와 마주쳤다. 인상적이지만 너무 느리네요. 남자의 이름은 말릭이다. 다림질 선이 그대로 살아있는 왼팔 셔츠는 바지 주머니에 꽂혀 있었다. 알타이르는 벽에 기대 서 있었고 남자의 목덜미가 보였다. 검은 머리가 셔츠 카라에 닿아 뻗칠듯 말듯 애매하게 자라있다. 알타이르는 충동적으로 그의 왼팔셔츠을 잡았다. 말릭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가 두어박자 늦게나 알타이르를 돌아봤다.
"비어 있다고 해도 공용은 아니거든요."
"이쪽도 다림질해요?"
"다리미질이 취미라서요."
알타이르 손 안에서 소매가 구겨졌다. 말릭은 태연하게 몸을 약간 틀어서 알타이르 손에서 소매를 빼냈다. 그리고는 다시 앞을 보는 것이다.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문득 말릭이 말했다. 저기. 알타이르가 귀를 기울인다. 개새끼같이 굴지 마요. 말릭은 천천히 말하고 내려버렸다. 알타이르는 엘레베이터 벽에 기대선 채 아주 잠깐 후회를 하다가 엘레베이터에서 내렸다. 펄럭이는 소매는 보이지 않았다.
3
그가 그 곳에 있었다. 알타이르는 한 눈에 그를 알아보았다. 출근길의 피곤한 얼굴들로 가득한 아침 커피숍에서, 그 많은 사람 가운데서 왜 그렇게 한 눈에 들어왔는지는 금방 밝혀졌다. 그의 빈 소매가 미끼처럼 시선을 물어왔다. 낚시바늘 근처를 배회하며 조금씩 미끼를 뜯어먹는 영리한 물고기들같이 시선은 한데 모여있다가 파드득 흩어지고 있었다. 말릭은 이미 주문을 마쳤는지 간이 테이블에 기대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알타이르는 뒤쪽을 걸어다니면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브리프케이스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고 그는 무방비하게 테이블에 명치쯤을 기대놓고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알타이르는 마침내 배회를 멈추고 그의 테이블에 도달했다. 처음에 말릭은 신경도 쓰지 않고 그의 가방을 조금 잡아당겼다가, 이내 고갤 들었을 때 눈이 마주친 상대가 알타이르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리고는 다시 핸드폰으로. 알타이르는 본격적으로 그를 '구경'했다. 누구보다도 적나라하게 힘없이 늘어져 있는 그의 재킷 소매를, 단정하게 빗으려고 했지만 고집을 부리며 뻗쳐 있는 이마선의 검은 머리카락을, 면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구릿빛의 뺨을. 그리고 눈을 보는 순간 말릭의 눈과 마주쳤다. 경계도 아니고 적의도 아니고 호의도 아니었다. 외팔의 사내는 다만 귀찮아 하고 있었다. 말릭,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벤티 나왔어요. 그 시선의 틈으로 던져진 명랑한 점원의 목소리에 말릭은 금방 몸을 틀어 커피를 받아 왔다. 가방끈에 크게 목을 밀어넣어 가방을 사선으로 멘 뒤 다시 커피잔을 든다. 일련의 동작은 매우 유려하고 또 빈틈이 없다. 알타이르는 그제야 할 말이 생각났다.
"개새끼처럼 굴지 말라고 했었죠?"
말릭은 듣고 있었다. 알타이르는 가방을 멜 때 삐뚤어진 말릭의 타이를 고쳐주었다. 두 손으로, 천천히.
"그럼 잡혀온 산양처럼 굴지 마요."
말릭은 제 목덜미를 스친 손이 천천히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왼손 약지가 있던 자리에는 쇠로 된 보조장치가 달려 있었다. 마치 철로 된 장갑을 낀 것처럼. 그 '손가락' 끝이 잠시 말릭의 목덜미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알타이르, 주문하신 카푸치노 톨 나왔어요! 점원의 목소리가 또 얹어지고 알타이르는 웃는다. 우린 좀 더 이야기 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말릭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멀거니 커피를 받으러가는 알타이르의 어깨를 쳐다볼 뿐이었다.
4
말릭, 듣고 있어? 말릭은 눈을 깜빡거렸다. 듣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어디까지 들었는지는 잊어버렸다. 슈토로가 두개로 접힌 턱을 더욱 깊이 당기면서 물었다. 이제 슬슬 나이드나보네. 이 건 때문에 이틀은 못 잤지? 딱 티가 나네. 말릭은 고개를 저었다. 좀 잤어요. 세시간쯤. 말릭의 직속 상사는 썩 유쾌하게 웃었다. 세 시간? 모르긴 몰라도 자네 몸 속에 좋은 세포가 10%는 죽어 나갔을걸? 전쟁터를 뛰어다니던 옛날 생각하면 안된다고. 이제 자네도 서른을 넘겼잖아, 몸이 상해. 말릭은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렇게 말하는 슈토로가 오늘까지 분석자료를 넘기라고 한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자신도 그게 떠올랐는지 슈토로 씨는 서둘러 자료를 챙겼다. 저쪽에서 오늘까지 꼭 해달라고 부탁해서 말이야. 이렇게 해서 주면 될거야. 그래도 자네가 제일 확실해서 말야. 오늘은 조금 일찍 퇴근해서 쉬지 그래, 금요일을 좀 즐겨봐. 알아서 할게요. 말릭은 앉은 채로 손을 저어 그를 보냈다. 슈토로는 호탕하고 좋은 사람이긴 했지만 업무면에서는 지독한 관리자였다. 그의 말을 듣는게 아니었는데. 의자에 기대 형광등이 열대 우림처럼 우거진 천장을 올려다 볼때마다 말릭은 그런 생각을 했다. 몸도 성치 않은데 이제 몸으로 뛰는 일은 그만 둬야 하지 않겠어? 라며 이력서를 내민 곳은 말릭의 병상이었다. 절단 수술 후 재활 훈련 중이었던 말릭은 어차피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면 이거라도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력서를 작성했고 슈토로의 소개로 마시아프에 입사했다. 지독한 인간. 거절 못할 것을 알았겠지. 천장이 빙글빙글 돈다. 의자를 돌리는 것도 아닌데. 오늘은 정말 조퇴라도 해야겠어. 말릭은 다짐했다. 일단 업무 메일 한번만 더 보고.
슈토로가 결제한 서류를 가져가자마자 새로 배분한 업무는 두 가지였다. 말릭은 어영부영 3시간동안 기안서를 작성하고 유관부서에 업무전화를 돌렸다. 오후 네시. 두 시간이라도 일찍 가자. 말릭은 굳은 결심으로 컴퓨터를 껐다. 이제 주말동안 죽은 듯이 잘거야. 참호에 들어간 것과 마찬가지지. 가끔은 정말 참호에 들어가서 잠을 청하고 싶다. 그땐 언제든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었지. 깨고 싶을 때 깨고. 내 몸이 내 마음대로 되던 때가 있었지. 말릭은 가방을 어깨에 걸고 책상을 치웠다. 멀리 파티션 너머로 슈토로의 둥근 머리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말릭은 아무도 보지 않는 복도를 향해 건성으로 손을 흔들어 보이고 -업무 지원 부서는 파티션 너머의 일에 관심이 없었다- 엘레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엘레베이터에 올라타서 차가운 금속벽에 관자노리를 기댄 채 숫자를 센다. 집에 가는 길에 치킨스프를 하나 사가서 단숨에 마신 다음에 이불로 들어간다. 완벽한 계획이다. 전망 엘레베이터는 노을을 투영하고 빌딩 사이로 직선처럼 뻗은 오렌지빛이 엘레베이터를 가득 물들였다. 좀 어지러운데. 말릭은 아마 노을때문이라고 생각했다. 1층에 엘레베이터가 멈춰 서고 문이 열렸을 때 말릭은 거기서 아는 얼굴을 찾아냈다.
왼손 약지가 없는 남자. 잡혀온 산양처럼 굴지 마요.
"퇴근?"
"네, 뭐."
"이렇게 일찍?"
"일을 끝냈거든요."
엘레베이터 문은 닫히려다가 다시 열리고 다시 닫히려고 시도하지만 말릭과 알타이르때문에 바보같은 동작만 반복했다. 알타이르는 말릭을 보고 '반가운 표정'을 했는데 그걸 말릭은 이해할 수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말릭은 '불편한 표정'을 하고 있었으니까.
"저녁 같이 하죠."
"왜요?"
"사람은 먹어야 사니까."
"같이 먹을 필요는 없는데."
"과연 없을까?"
좀 어지러운데. 나 아까도 이 생각을 했었지 않나. 알타이르의 손이 천천히 넥타이로 올라온다. 자신의 넥타이를 잡고 고치는 동작이 왜그렇게 느리게 보이나 했는데 그의 약지를 차지한 철로 된 골무에서 오렌지빛이 반사되었다. 눈이 부시다. 그리고 어지러워. 그리고 세상이 기운다. 알타이르라는 이름의 개새끼도 함께 의아해하면서. 됐어요라는 거절의 말은 채 내뱉지 못한 채 말릭은 고꾸라졌다.
4.1
알타이르는 핸들에 손을 올려두었다. 지하주차장은 언제나 조금은 음습하고 어두워서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그거야 보는 사람 나름이지. 내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느끼는 거야. 주먹을 쥐었다 풀면서 알타이르는 잠시 옆을 본다. 명확하게 고개를 돌리지 않고 시선의 끄트머리를 확인하려는 것처럼 슬쩍 눈동자를 스쳤다. 남자는 아직도 꼼짝하지 않았다. 늘어진 다리가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다. 죽은 것 같지만 죽지 않았다는 것은 알타이르가 잘 알았다. 동공과 맥박을 확인하고 호흡도 확인했으니까. 죽은 것처럼, 그는 자고 있을 뿐이다. 알타이르는 대화를 예측해본다. 그가 눈을 뜨면, 눈꺼풀을 들어올려 자동차 천장을 보고 나면 조금은 어리둥절하게 눈을 한바퀴 굴리고, 그 한순간의 무방비함을 곧바로 떨쳐낸 채 바로 신경질적이고 무심한 눈으로 돌아올 것이다. 알타이르는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것처럼 그것을 확신했다. 내가 왜 여기 있어요? 남자는 그렇게 따질 것이고 그러면 알타이르는 뭐라고 해야할지 생각해본다. 달리 어디로 갈 수 있겠어요. 축 늘어진 남자를 다시 사무실로 데리고 갈 수는 없을텐데. 알타이르는 그렇게 근사하게 말하는 자신을 상상하다가 그만두었다. 남자는 아직 잠들어 있었고 알타이르는 자신의 없어진 4번째 손가락을 그의 코 밑에 가져다댔다. 철로 된 보형물에 숨이 하얗게 어렸다 사라진다. 희미하게 보형물을 스치는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알타이르는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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