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지 못한 사람들 2
(센티넬버스 AU)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브란트는 차에서 내리기 전에 룸미러에 비친 자신의 눈을 보며 그런 말을 뱉었다. 물론 말이 안 되지. 브란트는 중얼거리며 내렸다. IMF 건물은 그대로 있었지만 가야할 곳은 다른 곳이었다. 브란트는 센티넬 연구소쪽으로 들어갔다. 정문을 통과해 안 쪽으로 들어가자 끝없이 이어진 하얀 복도가 나타났다. 가운을 입은 박사가 그 앞에 나와 있었다.
"브란트 요원? 샤를로 박사입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샤를로 박사는 중키에 피부가 까무잡잡한 노인이었다. 연구실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은퇴한 테니스 선수를 떠올렸을 법한 손이었다. 그을린 피부색과 백발은 대비가 강해서 오히려 현실감이 없어서 인상적이었다. 그는 언제라도 복도의 흰 벽으로 스며들 것처럼 보였는데, 고맙게도 사라지는 대신에 브란트를 복도로 안내했다.
"이미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설명은 들으셨나요?"
"아뇨, 제목만 읽은 셈이죠."
샤를로 박사가 보안 카드로 문을 열면서 브란트를 돌아보았다. 조그만 갈색 눈은 '그러게 어쩌다 여기까지 왔느냐'하고 묻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테이블을 쳐다보는 것같이 건조하기도 했다. 브란트는 시선을 받고 입꼬리만 바짝 올려 웃어보였다. 조금 더 병신같아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IMF에서 긴 시간동안 일을 했지만 센티넬 연구소는 처음 들어가는 구역이었다. 몇년 전에 한번 가이드 후보가 되었다는 통보는 받았지만, 미팅에 가기 전에 통보가 취소 되었었다. 그때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던지, 친구들에게 한잔씩 돌리기까지 했다. 물론 사회적으로 가이드가 된다는 것은 '약간 귀찮지만' 나쁘지 않은 일 정도로 인식되었다. 가이드가 되고 싶어서 매년 생체정보를 갱신해서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브란트는 그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그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일하면서 만나는 수많은 센티넬과 가이드들을 보면서도 늘 한발자국 물러나 '그러나 내 일은 아니지.'하고 여유를 부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날이 오기도 하는 것이다.
샤를로 박사가 안내한 곳은 모니터가 빽빽히 들어찬 방이었다. 모니터가 쌓여있는 벽면은 전면 유리창이었는데 거기서 연결되어 있는 건너편 방이 훤히 보였다. 건너편은 낯선 기계들과 함께 침대 하나가 놓여 있고, 세 명의 연구원들이 돌아다니며 각자 기계를 체크하고 있었다. 샤를로 박사와 브란트는 모니터 앞에 앉았다. 샤를로는 두꺼운 파일을 브란트에게 내밀었다.
"이 실험의 목적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특정 센티넬에게 맞는 가이드를 만드는 것입니다. 센티넬이 출현한 이후 과학자들은 센티넬과 가이드의 관계에 대해 계속해서 연구를 해왔습니다. 여러 이론이 있지만 가장 가능성 있는 이론은 유전형질과 뇌파 그 중에서도 베타파 간의 유사성입니다. 센티넬들에게 새로운 유전자가 있는게 아니라 기존의 유전자가 변이해서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계시겠죠? 흥미로운 것은 가이드들을 검사하면, 완벽하게 변이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약 80%의 가이드들이 가이가 아닌 일반인에 비하면 조금 더 우수한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면역체가 늘어나거나 근육량이 늘었거나 철분이 증가하는 현상들이죠. 일부 과학자들은 이것에 대해 '진화'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만, 사실 위험한 표현이죠. 자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시겠습니까?"
브란트는 파일을 파라락 넘겼다. 실험과정이 자세하게 적힌 계획서였다. 과학 이론에 대해서는 하나도 관심이 없었다. 지금 이런 것이 중요한가?
"아뇨, 그냥 제가 해야 할 일만 알려주십시오."
샤를로 박사는 놀라지도 않은 얼굴로 브란트가 해야 할 일들, 겪을 일들에 대해서 설명했다. 먼저 각종 검사를 통해 현재 몸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한 뒤 뇌파를 측정한다. 실험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기준이 되는 뇌파의 진동폭을 맞추기 위한 훈련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B-123'형질을 활성화 할 수 있는 주사를 맞는다. 물론 주사에 대해서는 부작용이 있을수도 있다. 일시적인 기억력 감퇴나 마비 증상 등이 예상된다고 박사는 설명했다. '예상'이다. 무엇이 올지는 누구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길고 긴 동의서에 서명했다. 영구적인 신체 결손이 생길 시에도 국가는 배상하지 않는다. 참 좋은 말이네.
"주사는 한번만 맞습니까?"
"그것은 검사결과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ㅏ."
"한번에 끝나진 않겠군요."
"운이 좋으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글쎄 아무도 알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이제 저쪽으로 건너갈까요."
브란트는 샤를로 박사를 따라 일어나면서 물었다. 박사님, 전에도 이 실험 해보셨습니까? 샤를로 박사는 갑자기 웃었다. 브란트를 향해 웃은 게 아니라 그냥 한숨처럼 터진 것이었다. 아뇨. 처음입니다. 사람한테는요. 브란트는 따라 웃었다. 왜죠? 샤를로 박사가 문을 열어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원자가 없었으니까요.
건너편에서 샤를로 박사는 팀원들을 소개시켜줬다. 슈미트, 카시미르 그리고 아멜이라는 여자까지 총 세명이었다. 다들 사무적인 태도를 유지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들의 실험이 처음으로 인간한테 적용된다거나 거대한 투자금을 받게 된것에서 오는 환희같은 것이 보였다면 브란트는 좀더 슬펐을 것이다. 그 주 내내 브란트는 달리고 피를 뽑고 잠들었다가 숨을 참았다가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다 했다. 아예 연구소 내부에서 지내며 24시간 관찰을 하기도 했다. 내가 맡았던 작전들은 어떻게 됐을까. 진행 중인 것이 두 가지 있었는데. 누워있을 때는 주로 그런 생각을 했고 나머지 검사를 받을 동안은 머릿 속을 비웠다. IMF에 들어와서 현장요원 훈련을 받았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머릿속을 비우면 시간이 잘 가고 근심걱정도 없었다. 고도로 집중해야 하지만 효과는 좋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브란트에게 자유시간은 거의 주어지지 않았지만, 반드시 해야하는 스케쥴이 있었다. 이단 헌트와 대면하는 일이었다. 직접 대면하는 것은 아니었고 유리창 너머로 이단 헌트를 한시간동안 관찰하는 것이 매일 저녁 일과였다. 이단 헌트는 방 중앙에 '묶여' 있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묶여 있는 것은 사실상 그의 선택이기도 했다. 이미 팔이나 발목의 수갑을 끊은 일도 많이 있었으니까. 대부분의 시간을 이단은 그저 앉아 있기만 했다. 표정도 없고 눈도 거의 깜빡이지 않았다. 브란트는 진짜 그가 살아있기는 한건지 궁금했다. 직접 가서 코 밑에 손을 대보거나, 가슴팍에 심장 뛰는 소리를 들어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단이 그렇게 앉아 있는 동안 브란트는 한 시간 내내 서서 돌아다니거나 손톱을 자르거나 발장난을 쳤다. 도저히 집중할 수 없었다. 그냥 유리창 앞에 앉아만 있으면 되는 데 전혀 움직이지 않는 이단 헌트를 보고 있으면 뭔가 부아가 치밀어 올라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브란트가 이단 헌트의 실물을 처음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많은 보고서들과 함께 보험청구서류들의 산이 오히려 브란트에게는 좀더 '이단 헌트' 와 가까웠다. 직접 일한 적도 한번도 없었다. 브란트는 작전을 세울 때 이단 헌트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가 센티넬 차별주의자이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브란트가 보기에 이단 헌트의 성공은 IMF의 성공과는 상관없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칼이 아무리 날카롭고 잘 벼려져 있다고 한들 칼을 쥐고 글을 는데 좋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이 것 역시 이런날이 오고야 말았다. 이단 헌트와 함께 일할 것. 아무래도 직장을 잘못 찾았지. 브란트는 이단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눈이 마주쳤을땐 소름이 돋았다. 눈을 보면 멀쩡해 보이지만 눈동자에 반사되는 빛이 없어서 죽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뇌파 훈련은 베타파의 진폭을 조정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것은 일종의 카드게임이었는데 브란트는 이것이 ADHD 치료법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쉬운 문제에서 어려운 문제로 올라가면서 중간중간 실제로 있었던 작전 사례들을 풀도록 했다. 중요한 점은 그 문제들을 '이단 헌트'라면 어떻게 풀었을 지를 염두에 두어야했다. 브란트는 처음에 의욕없이 전부 다 폭발시키나 상대를 죽여버렸다. 보통 이렇게 해오던데? 샤를로 박사가 그렇게하면 평생을 해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말해주고나서야 좀더 생각을 하고 작전을 풀었다.
주사는 고통스러웠다. 등을 굽히고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척추에 맞아야했다. 주사바늘이 찌를 때 브란트는 부작용들이 떠올랐지만 이미 늦었다. 간부가 된다고하면 그 모든 결함들도 다 안고 올라가야 할 것이다. 너무 아파서, 브란트는 주사를 맞을 때 간부가 되어서 이단 헌트를 명령불복종으로 직위 해제시키는 상상을 했다.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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