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오리님 리퀘)
그가 그렇게 중요한 사람입니까? 나는 브리핑에서 그렇게 물었다. 브리핑 룸에는 나와 국장님 뿐이었다. 막 아프가니스탄에서 인질을 구출해서 돌아온 참이었다. 짐이랄 것도 없지만, 내 불쌍한 더플백은 아직 차에서 내리지도 못한 채로 버려져 있었다. 아무리 IMF라고 해도 이렇게 일언반구도 없이 귀환한 요원을 바로 다음 미션으로 보내버리는 일은 흔치 않았다. 게다가 요인경호라니. 내 앞에 놓인 USB를 놓고 나는 대답을 기다렸지만, 국장님은 이미 반쯤 몸을 틀어 앉았다. 이맘때면 자다르 일몰이 볼만하지. 그가 책상을 두번 두드렸다. 휴가라고 생각하게, 미스터 브란트. 나는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한 채 브리핑 룸을 나와야 했다. USB와 자다르 관광 안내지도만을 덜렁 받은 채, 나는 크로아티아 자다르로 향했다.
보호해야 할 사람은 두 명이었다. 내게 주어진 USB에는 요인들이 묵는 호텔 위치와 설계도, 자다르의 치안 상태에 대한 보고서, 요주의 인물 보고서, 팀원 명단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물들의 사진이 있었다.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 그들이 부부라는 것, 자다르로 관광와 있는 미국시민권자들이라는 것, 암살 위협을 받는다는 것 외에 다른 정보는 들어있지 않았다. 주의: 요인들이 경호인력의 존재를 알아채서는 안 됨. 크로아티아로 넘어가는 비행기 안에서 자료를 분석하며 나는 노트북에 부부의 얼굴을 띄워놓았다. 낯선 얼굴들이었다. 조각같이 잘 생긴 남자와 입매가 움푹 올라간 여자. 내리는 순간까지 그 얼굴들에서 다른 정보를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자다르에서 합류한 팀은 나를 포함하여 다섯명이었다. 한번도 같이 일한 적은 없었지만 대부분 주로 중동이나 아시아 지역에서 작전을 진행했었다는 것이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었다. 경력이 짧다는 것도 비슷했다. 내가 리더가 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들 중에 그나마 경력이 가장 많았던 것이다. 예정에 없던 작전이 꾸려진 것이 분명했다. 급하게 끌어온 팀으로 뭐가 될까 싶었지만 우리는 IMF였고 뭐든 해내야 했다. 우리는 3명씩 조를 짜서 남편과 아내를 따로 맡았다. 코드명은 시드와 낸시. 그리고는 아무일도 없었다. 자다르는 너무 평화로워서 나는 잠시 정말 국장님이 나에게 휴가를 준건 아닌지 생각했었다. 그들을 볕이 좋으면 해변에 갔고 모래사장을 걸으며 일몰을 봤다. 바다 오르간 앞에 한참 앉아서 뭔가를 소근거리거나 책을 보기도 했다. 좁은 도시에서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는 일은 힘들었다. 어쩔때는 그가 신문을 보고 있는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있어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임무는 너무도 느슨했고 나는 시드에게 말을 걸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내가 안녕하세요? 라고 말을 건네면 그가 아, 드디어 하며 아는 척을 해줄 것 같았다. 이 이상할 정도로 평화로운 해변에서요, 내가 당신들을 경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가 그 잘생긴 눈썹을 모으며 '왜죠?' 라고 물었을 것이다. 글쎄요. 그러나 난 한번도 말을 걸지 않았다. 정신을 차릴 필요가 있었다. 내가 그의 24시간을 감시한다고 해도 나는 그의 친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를, 나의 친구로 생각해서는 안되었다.
임무는 끝을 향해갔다. 그들의 일정도 마지막이 되었다. 내내 평화롭던 일정은 끝에 들어서 겨우 갱단에서 암살계획을 짰다는 첩보로 조금 긴장감이 생겼다. 마지막날 아침, 시드가 한번도 거르지 않은 아침 조깅을 하러 나갈 때 나는 충동적으로 호텔에 남아 있겠다고 했다. 팀원이 왜요?라고 묻는 순간 그러게, 내가 왜 그랬지 라고 생각하며 곧 그를 따라 나섰다. 그는 후드를 뒤집어 쓴 채 해변을 달렸다. 우린 보통 자전거로 이동했다. 본부에서 지급해주는 자동차를 사용하기에 그곳은 너무 느슨했고 관광객이 많았다. 그는 자전거로 따라가기 적당한 속도로 -제법 빠른 속도로- 달렸다. 나는 임무가 끝나면 어떻게 할지에 대해 열심히 고민했다. 정말로 휴가를 받아야 겠어. 너무 쉬지 않고 일한 것 같아. 그러다 문득 나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불가능하다. 나는 뒤에서 쫓아가고 있었고 그는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았으니까. 팀원에게 인이어로 방금 봤어? 라고 물었지만 어디 아프냐는 소리만 들었다. 손톱만한 찝찝함을 뒤로 한 채 우리는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고 쓰러진 요원들과 텅 빈 방을 발견했다. 어디에도 낸시는 없었다. 카메라화면에 잡힌 시드는 방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지역경찰이 낸시의 시체를 찾았을 때도 그는 차분하게 서 있었다. 내가 내내 그를 따라다니지 않았다면, 그가 아내를 죽이고 숨겨놨을 거라고 믿을만큼 차분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잘 벼린 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뭐든지 씹어삼킬 준비가 된 야차였고 사람거죽을 뒤집어 쓰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그를 잡을 수 조차 없었다. 갱단의 시체가 토막난 채 발견된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 시드는 사라졌다. 시드는 사라지고 임무만 남았다. 나는 임무에 실패했고 감봉당했다. 그러나 어떤 것도, 죄책감보다 괴롭지는 않았다. 첫 실패의 기억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암살계획이 있다고 말했어야 했다. 적어도 그에게는 말해줬었어야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그의 친구가 아니었지만, 그는 나의 친구였다. 적어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현장에서의 일을 접고 본부로 돌아와 분석일을 하는 동안 사건은 자연스럽게 묻혔다. 시드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고 그 일은 기억의 저편에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시드가 차에 올라타면서 기억의 섬이 나에게 헤엄쳐왔다. 그는 여전히 사람가죽을 쓴 야차, 손잡이 없는 칼이었으나 대신 이름이 있었다. 이단 헌트. IMF 사상 가장 전설적인 모험담을 지닌 요원이었다. 그는 나를 몰랐다.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 있었다. 어떻게든 하루를 살아남아 다른 날을 준비할 때 나는 식은땀에 흠뻑 젖어 깨어났다. 정작 꿈은 평화로웠다. 그와 나는 바다 오르간 위에 앉아 있었다. 갈매기를 구경하고 오르간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그의 옆모습을 보며 사실 나는 크로아티아에서 네 아내와 너를 보호하는데 실패한 장본인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입을 연다. 그러면 그가 나를 쳐다보며 '브란트, 무슨 일이야?' 하고 묻는 것이다. 그럼 나는 웃으며 입을 닫아버린다. 지난한 악몽이었다. 달라진 것은 여러가지가 있었다. 우린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었고 국적도 없는 테러리스트가 되었으며 그가 이제 내 이름을 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동료가 되었고 곧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나때문에 네 아내가 죽었고 넌 무허가 살인을 저질렀잖아. 그 말은 음소거가 되어버렸다. 나는 침묵했다. 꽤 오랫동안 속죄를 빌어왔음에도, 내가 침묵한 이유는, 그의 곁에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정이든 동경이든 죄책감이든 나는 그 자리를 내어놓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내가 삼킨 녹슨 칼이 되어서 내 속을 헤집어 놓고도, '괜찮아, 브란트.'라고 먼저 말해버리는 나의 우상, 나의 친구, 나의 사랑. 사랑. 이단 헌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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