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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2차

미임파 이단브란 /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 1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 1

(센티넬버스 AU)






다른 사람보다 신체적인 능력을 비롯하여 논리적 사고마저 빠르게 펼치는 센티넬들이 첩보분야에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냉전시대부터였다. 숨기는 것만큼 수를 늘리는 것 역시 중요한 시대였다. 애국심만으로는 '모병'에 애를 먹던 정부는 그동안 한번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계층으로 눈을 돌렸다. 냉전 이전까지 센티넬들은 주목받지 못했다. 처음 그들의 형질을 발견한 박사의 이름을 따서 '센티넬'이라고 불렸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들은 알아서 태어나고 알아서 죽었다. 가끔은 영웅이 되었고 가끔은 범죄자가 되었다. 그러나 국가가 직접 그들을 관리하겠다고 나선 이후로는 삶이 크게 달라졌다. 국가는 강제성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아이를 낳으면 센티넬 검사를 받아야 했다. 검사는 생애주기마다 이루어졌는데 30세 이전에 발현된 센티넬들은 국가에서 따로 3년간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받는 동안 국가는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가이드를 찾아냈다. 비관론자들은 그들을 '핸들러'라고 불렀다. 센티넬들의 기초 학교 졸업 이후에 선택은 자유였지만 대부분은, 대학까지 연계해서 마친 다음 정부기관에서 일했다. '그'가 나타난 뒤로는 더더욱 센티넬들의 첩보분야 지원이 늘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미국뿐만이 아니었다. 각 나라마다 경쟁적으로 센티넬들을 찾아내고 관리체계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하나의 아이콘이었다. 그는 정부가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고, 정부가 센티넬을 직접 관리하는 것만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모범답안이었다. 그의 이름 아래에는 수없이 많은 프로젝트 코드가 있었다. 그가 살린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는 '앞으로' 나선 적이 없다. 일반인들은 그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잠든 사이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핵탄두를 그가 막았다는 사실을 몰랐다. 센티넬 능력 보고서에 유일하게 측정불가 판정을 받은 남자. 23살에 학교를 졸업한 이후 살아있는 채로 전설이 된 그의 이름은 IMF의 자랑으로 통했으며 동시에 그림자였다. 그는 이단 헌트였다. 그리고 최근 그는 미쳐가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습니까?' 

위원회는 국장에게 질타를 쏟아냈다. 그동안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겁니까? 그동안 아무도 몰랐다는게 말이 됩니까? 국장은 침묵을 지켰다. 스스로도 수없이 답을 찾았고 결국엔 답을 얻지 못한 질문들이었다. 어떻게 아무도 모를 수 있었단 말인가, 이단 헌트의 가이드가 '실종'돼버리는 동안에. 


센티넬이 왜 그렇게 뛰어난 능력들을 갖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혀진 바가 없다. 현재까지 진행된 연구로는 인간 유전자의 특정 부분이 '변이'되면 센티넬로서 각성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뿐이다. 심지어 그 유전자는 모든 인간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인류는 모두 같은 출발선에 서 있었다. 센티넬에 대한 연구는 그들 능력의 원인보다는 관리를 중점으로 이루어졌다. 국가가 관리한 이후로 그들은 '가이드'의 존재를 알아냈다. 센티넬은 보통의 인간보다 우수한 신체능력을 자랑하지만 가이드가 없으면 그 능력을 불안정해지고, 더 나아가 가이드 없이 방치된 센티넬들은 오래버티지 못하고 미쳐버렸다. 둘 사이의 어떤 역학적 관계가 있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 낭만주의자들은 그것을 '운명'이라고 불렀다. 관리체계 출범 이후에 국가는 최대한 많은 인구 데이터베이스를 수집해서 센티넬에게 가이드를 찾아주었다. 이단 헌트도 마찬가지였다. 정확한 관계성은 모르지만 철저한 검사를 통해 유전 형질, 혈액형, 뇌파 등의 요소들이 비슷한 수많은 후보군을 제시하면 다수의 센티넬과 다수의 가이드 후보자들이 같은 공간에서 만나는 것이 보통의 매칭이었다. 그러나 이단 헌트같이 특별한 센티넬에게는 1대 1로 후보자를 대면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다. 그는 세번 만에 그녀를 찾아냈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첫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이단 헌트는 거울처럼 되어 있는 방의 저편으로 말했다. 이 사람이에요. 나는 알 수 있어요. 간호대학에 다니고 있던 줄리아는 그렇게 이단 헌트를 만났다. 

가이드로 선발되면 따라야 하는 것이 모든 시민의 의무였다. 냉전 시대에 고쳐진 헌법에 의하면 그러했다. 간혹 가이드가 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인체 정보 제공을 거부하거나, 선발된 후에도 가이드를 하지 않겠다고 버티기도 한다. 그런 이들은 수감되었다. 역설적으로 그들과 상응하는 센티넬들이 그 감옥의 간수로 일했다. 그게 국가가 운영되는 방식이었다. 다행히 줄리아는 가이드의 역할을, 그녀의 센티넬을 받아들였다. 모든 센티넬과 가이드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그렇듯, 그들은 사랑에 빠졌다. 때문에 이단 헌트는 언제나 안정적으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했다. 지난주까지는. 지난 주까지는 완벽하게 그러했다. 테러조직을 와해시키기 위해 나가있던 이단은 대기 장소인 맞은편 호텔 옥상이 아니라 삼거리 교차로에 서서 총을 난사했다. 총알에 눈이 달린 건지 이단의 능력때문인지 민간인 피해는 없었으나 신문기사 1면에 대문짝만하게 그의 얼굴이 실렸다. 미치광이 정부 요원. 그게 헤드라인이었다. 이단은 바로 수감시설로 호송되었다. 수갑을 찬 채 자리에 앉은 그의 얼굴은 매우 평온했다. 질문 하러 들어간 조사관의 다리 하나가 부러진 이후에는 조사실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한결같은 얼굴이었기 때문에 그가 미쳐있는지 아니면 정상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스피커를 통해 줄리아에 대해 물어도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때때로는 아주 혼란스러운 얼굴로 '줄리아?'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금방 평온한 얼굴을 했다.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그의 다리까지 사슬로 묶고 난 뒤에야 간단한 검사가 진행되었다. 뇌파검사 그래프는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나마도 이단이 사슬 한 쪽을 풀어낸 이후에는 또 다시 조사실 안으로 아무도 진입하지 못했다. 그는 그곳에서 평온하게 미쳐가고 있었다.


국장은 대책을 찾아야 했다. IMF의 자랑이자 정부정책의 상징이었던 이단 헌트가 한순간에 미친놈이 되었다는 사실은 기밀로 묻어야 한다. 그 모든 것은 일순간의 실수였으며, 두번 다시는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어야 했다. 정부의 관리 소홀이라는 여론이 형성되면 과격한 자유주의자들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들고 일어날 것이다. 그에게는 가이드가 필요하다. 가이드가 있다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줄리아는 사라져버렸다. 심지어 그녀가 이제까지 살아온 흔적 자체가 사라졌다. 그녀가 언제부터 사라졌는지도 모른다는 것은 분통터지는 일이었다.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이드가 필요하다. 줄리아가 1순위지만 줄리아가 없더라도 가이드는 존재해야한다. 동시에 이 사건을 조사할 사람이 필요하다. 물론 기밀을 아는 사람은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국장은 끊었던 담배를 앉은 자리에서 반갑도 넘게 피우면서 계획을 짰다. 사람과 자료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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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브란트는 IMF 수석 분석가 중 한 명이였다. 센티넬이 아닌 일반인이었고 신체적으로 우수한 센티넬들이 현장요원을 거의 독점하다시피하는 상황이니만큼 일찌감치 본부에 자리를 잡았다. 이미 수차례의 구출작전과 테러진압작전들을 지휘하면서 괜찮은 커리어를 만들어 놓은 브란트는 앞날에 대해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3년 안에 치프가 되고 그 다음에는 간부로서의 새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정치인들과 입씨름할 생각을 하면 머리가 아팠지만, 그건 브란트가 잘 하는 일 중에 하나였다. 말 속에서 뼈를 찾고 숨겨놓은 카드를 빼들게 하는 것. 처음 IMF에 들어와 프로파일링 분석을 할 때부터 브란트는 사람을 잘 파악하는 것으로 유명세를 폈다. 어쨌든 내가 필요한 일이 있다는 건 좋은거지. 브란트는 아침마다 그런 마음으로 출근했다. 그렇게 출근한 어느 날 아침 국장의 호출을 받았을 때 브란트는 좀 놀라기야 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좀더 힘든 사건을 맡으면 그만큼 승진도 빨라 지겠지. 어쩌면 지금 당장 승진할 지도 몰라. 

"자네는 오늘부터 현장요원 직으로 발령이 났네. 부서를 이동해야할 거야. 시간이 없으니 짐은 최대한 줄이게."

브란트는 무례함과 예의바름 사이의 어조로 국장에게 물었다. 네? 국장은 더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들은 밀실에 들어와 있었고 국장에게서는 담배 냄새가 엄청나게 났다. 국장이 그에게 파일을 건네줬다. 파일 겉면은 <기밀>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아직도 이런 도장을 만드는 사람이 있을까? 손에 닿는 종이의 느낌이 낯설었다. 

"그 안에 자네의 임무가 들어 있네. 그동안 자네가 보여준 문제해결능력이 꼭 필요한 시점이야. 미스터 브란트, 지금 그 어느때보다도 IMF는 큰 위기에 빠졌네. 난 그 해답을 자네가 구해줄 수 있다고 봤어. 자넨 목표가 뚜렷한 사람이었지, 그렇지 않나?"
"네, 그렇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난 자네를 간부로 올릴 참이야. 진짜 관리자가 되는거지."

브란트는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단 사탕은 몸에 해롭다. 그것도 당장 포장을 까서 입안에 넣어주겠다고 입술 앞까지 밀려온 사탕은 수상한 구석이 있다. 떨어뜨렸거나, 누군가 약을 바른 사탕.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란트는 그 사탕이 먹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한 번의 임무로 모든 관례를 건너뛰고 바로 간부가 된다. IMF는 자유로운 조직이었다. 국장의 말이 아예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아니었다. 예를 들면 이단 헌트를 들 수 있다. 그 괴물같은 센티넬은 국장의 지시만 받으면서 일을 하는데 직급과 상관없이 누구의 간섭도 원치 않았다. 가끔 보고서를 볼때면 감탄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와 함께 일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튼, 그런 사람도 있으니 만큼 국장의 제안도 타당하지 않을까. 

"임무를 수락하려면, 파일을 열게."

사탕이 입술에 닿았다. 브란트는 파일을 펼쳤다. 첫 장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센티넬 현장 요원 이단 헌트 정신 분석 보고서. 브란트는 난독증 환자처럼 간신히 글씨를 읽었다. 다음 장은 줄리아라는 가이드에 대한 보고서였다. 그녀의 신상 정보가 쭉 나열된 가운데 <실종>이라는 큼지막한 도장이 적혀 있었다. 민스크에서 있었던 사고와 이단 헌트의 현재 사진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뒷장으로 갈 수록 혼란스러운 가운데 브란트 본인의 정신 분석 보고서, 건강 검진표 등이 나열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파일의 끝에는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들어 있었다.

"...<뇌파 변동과 B-123 유전 형질을 이용한 가이드 제작 실험>이라니 국장님 대체 이것은."
"자네가 '수락한' 임무는 이단 헌트의 가이드가 되는 걸세."

국장은 오늘까지 보고서를 내라고 할 때와 똑같은 어조였다. 브란트의 경악한 얼굴도 그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듯 하고픈 말을 빠르게 뱉어냈다. 

"이미 준비는 끝내놨어. 자네만 시작하면 돼."

승선을 환영하네, 미스터 브란트. 국장은 그렇게 말했다. 브란트는 아직 하나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의 말이 자신을 지옥으로 밀어넣을 열쇠가 되리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