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썼던 거리의 신사와 연결되는 이야기.
문 앞의 신사
에그시 언윈은 지독한 실리주의자다. 해리는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본래 가지고 있는 성정이 그런건지 아니면 거리에서의 삶이 그에게 그런 눈을 틔어 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득만 확실하다면 진흙투성이 군화도 핥을 것 같은 소년이었다. 그 소년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손은 주머니에 쑤셔넣고 있고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찾아오라는 뜻 맞죠? 갑작스런 방문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요."
해리는 에그시가 떠난 바에다가 그의 주소와 연락처를 에그시의 눈은 고정되지 않았다. 마치 눈 앞에 나비라도 날아다니는 것처럼 문틀을 보았다가 해리의 셔츠 카라를 보았다가 다시 문을 잡은 손을 보기도 하고 또 해리의 어깨 너머 허공을 쏘아보기도 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이마는 축축했고 어깨는 가늘게 떨렸다. 그럼에도 두 다리를 딛고 서 있는 것은 에그시의 고집덕분이었다. 아마도 약때문일 거야. 본인의 의지든지 아니면 타인의 의도든지 간에. 들어오라는 뜻으로 해리는 문을 좀더 열면서 비켜셨다. 그러나 에그시는 여전히 문 밖에 서 있었다.
"내가 이 문으로 들어가면, 앞으로 어떻게 돼요?"
해리는 솔직해지기로 결심했다. 나이와 직업을 비추어 볼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에그시는 아무리 바로 해리의 집 문 턱 앞에 서 있다고 해도 곧바로 미련없이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해리는 에그시를 그의 계획 안으로 들어오길, 일정한 제도 아래에 있기를 바랬다. 그러니까, 솔직해 져야 했다.
"잘 모르겠구나. 넌 어떻게 됐으면 좋겠니?"
에그시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는 이제까지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으나 정작 그 선택의 폭은 너무나 좁았고 선택지는 하나뿐인 삶이었음을 간접적으로 깨달았다. 갑자기 생겨난 무한히 많은 선택지때문에 에그시는 주춤했다. 그 중에 무엇이 가장 좋을지 어떻게 알겠어.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을 골라야 해. 나머지는 필요없어.
"뭐든지 할 수 있나요?"
"범죄를 저지르는 일만 아니라면,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세운 계획도 있나요?"
"그래, 그런 것도 있지."
"난 당신을 칼로 찌르고 돈을 훔쳐 달아날 지도 모르는데요."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그래도 괜찮아요?"
"그걸로 빚을 갚는 거라면, 어쩔 수 없지."
에그시는 큰 소리로 웃었다.
"아저씨의 그런 태도가 재수 없다는 건 알아요? 알아야 할텐데."
"그건 나도 잘 알고 있지."
에그시는 등을 구부리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 땀이 주륵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을 때, 해리는 그가 결국은 들어오리라는 것을 알았다. 에그시가 문턱 너머로 발을 하나 올리는 순간, 그는 갑자기 뺨을 맞은 아이처럼 불안한 기색이 보였다. 그의 짧은 인생의 모서리마다 그는 그렇게 불안해했을 것이다. 눈 깜빡할 사이에 에그시는 다시 그 기색을 거두고, 웃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돼요?"
-
에그시는 머리가 좋았다. 몸은 유연했고 무엇보다 열심히 배웠다. 그는 순종적이었다. 마치 한번도 사람을 문 적이 없는 개처럼 친근하게 굴었다. 그러나 언제나 턱에 힘이 들어갔고 어깨는 긴장했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 가져보는 모든 것들을 손에 꽉 쥐고 절대 놓지 않았다. 그건 어쩌면 재능일지도 몰라. 해리는 위스키를 마실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2층에 있는 에그시의 방문 앞에 서면 늘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가 킹스맨이 되기 위한 수업을 듣거나 해리에게 지저분한 농담을 걸 때를 빼면, 대체 뭘 하고 지내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약 기운에 덜덜 떨며 문 앞에 찾아온 소년과 바에서 거친 욕설을 퍼붓던 소년은 이제 착실하제 자신의 삶이라는 것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해리는 에그시가 집안으로 들어올 때 지었던 불안한 표정, 지극히 창백하고 죽은 물고기같이 차가운 표정을 기억하고 있었으므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에그시는 저녁 식사가 끝난 뒤 종종 이렇게 묻는다.
"내가 실수를 했어요. 그럼 날 버릴건가요?"
해리는 아니란다, 하고 대답해주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에그시가 잠들지 못하고 복도를 서성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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