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뿌연 안개속에 있었다. 두 손을 늘어뜨린 채 눈을 힘을 주고 살피니 곧 안개의 틈새로 길이 보였다. 십자로. 안개 사이로 마치 허공에 떠있는 것같은 가로등 빛이 덜익은 오렌지색 연무를 뿌리고 있었다. 야심한 혹은 너무 이른 거리. 나는 뺨에 와닿는 축축함에 새삼 놀란다. 공기는 습기로 가득하고 나이만큼이나 무겁고 차갑게 달라붙는다. 나는 내 손이 비어있음을 깨닫는다. 무엇을 하고 있었지. 혹은 무엇을 하려고 했지. 손금은 나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나는 아마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다.
우산이, 영화처럼 길 위에 등장했다. 검은 우산이 우산으로 쓰인 일이 있던가? 그 전에 내가 저 우산을 알던가? 의문을 담아 쳐다보니 우산은 어느새 내 머리위로 드리운다. 나는 갑자기 한기를 느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체는 오도독 소름이 돋아있다. 어디가는 중이니? 나에게 우산을 씌워준 남자가 묻는다. 기다리는 건데요. 나는 팔짱을 낀 채 말했다. 그는 내 어깨위로 자신이 입은 코트를 둘러 주었다. 누구를? 누구지. 나는 이 남자의 얼굴이 낯이 익다고 생각하지만 도통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안개는 가끔 익숙한 얼굴의 낯선이를 내보낸다. 누구가 아니에요. 나는 문득 남자를 보며 똑똑히 말한다. 도망갈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에그시. 차를 한잔 마시고 이야기하자. 나는 그러자고 동의했다.
이건 다 꿈이죠, 당신은 해리가 아니죠? 남자는 알듯말듯 애매한 표정-혹은 체념하는-으로 말했다. 그런것은 불확실하단다. 불확실. 나는 그 말을 되뇌이면서 남자를 따라갔다. 문득 나는 내 발이 젖어있음을 깨닫는다. 차가운 아스팔트가 발을 찌르고 나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 의문을 뱉으며 따라갔다. 이건 다 꿈이죠,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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