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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2차

미임파 이단브란 / 성공적인 파티 플래너가 되는 법 - 생일 편





뭘 하든지 간에 말이야. 이단은 하강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행기 티켓은 안 끊어도 낙하산은 준비해야지. 인이어에서 브란트가 그렇게 말했을 때 이단은 다른 것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을 제대로 못 들었다. 뭐라고, 브란트? 낙하 지점이 가까워졌다. 벤지에게서 5분 뒤에 뛰어내리라는 싸인이 들어왔다. 인이어 안의 브란트는 다시 말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해, 뭘 하든지 간에 말이야. 이단은 고글을 쓰면서 물었다. 국장님이 MI6 해킹 승인 해주셨어? 브란트는 침묵으로 부정했다. 어깨를 으쓱한 뒤 이단은 밤하늘 앞에 섰다. 오케이, 팀, 낙하 지점에 도착했다. 카운트 10, 9, 8, 7, 6, 5, 4, 3, 2. 생일 축하해, 이단 헌트. 이단은 아무것도 잡을 것 없는 허공으로 몸을 띄우며 그 말의 의미를 곰곰히 생각했다. 맙소사, 그런 뜻이었어! 내 생일이었잖아. 8월 18일 0시 임무가 시작되었다.



이단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한낮이었다. 한낮이라고 느낀 것은 눈이 부셨기 때문이다. 머리가 아프고 목도 아프고 어깨는 부어 올랐다. 그래도 일단 숨은 쉬고 있었으니 그는 조금 더 여유를 갖기로 했다. 설마 병원은 아니겠지. 병원은 아니었다. 햇빛이라고 생각한 빛이 너무 인공적이었다. 눈을 쑤시는 불빛을 피해 눈을 찡그리니 주변이 조금 더 확장되어 보였다. 창문이 없는 어두운 공간이었다. 이단은 자신의 팔이 뒤로 묶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잘됐군. 수갑이 채워진 팔을 보니 이제 팔 하나가 없는 전직 KGB가 들어와서 내 무릎 연골에 칼을 쑤시면서 여긴 왜 왔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지. 이단은 고민했다. 옷이나마 똑바로 입고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소매가 긴 옷은 자잘한 것들을 숨기기에 적합하다. 예를 들면 소매 단추에 클립을 펴서 감아 놓을 수 있다. 비상식량같은 것이다. 이단은 손을 구부려서 손목부분 단추에 감은 클립을 천천히 펼쳤다. 밖에서 두런두런 말 소리가 들려오더니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소매 하나가 마음대로 팔랑거리는 남자가 들어와 조명 옆에 앉았다. 그 뒤로 두 명이 더 들어와 남자와 이단 사이에 섰고 두 명이 더 들어와 남자 뒤에 섰다. 이단은 눈을 찡그리듯이 뜬 채 물었다.


"예전에 KGB에서 일했지?"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여유롭게 시가를 문다. 대부분의 일이 터져나오는 팝콘처럼 좀체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게 이단이 하는 일이었지만 가끔 어떤 일들은 지독하게 정해진 대로 흘러간다. 이단은 한숨을 쉬었다. 모든 적들은 얼굴을 달리하고 앉은 같은 사람들이다. 저마다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목적이 있고 그때문에 이단의 적이 된다. 그래도 그들은 하고싶은 게 분명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꽤 낭만적인 사람들이다. 나는 뭘 하고 싶지. 문득 이단은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했던 브란트가 생각났다. 하지만 하고 싶은 걸 모를 때는 어떡하지. 난 그런 걸 찾기엔 너무 오래 이런 짓을 해왔는데. 남자가 칼을 꺼내서 불빛에 비춰보는 것을 보면서 이단은 열심히 생각했다. 난 뭘하고 싶을까. 그때 철컥 소리가 났다. 깨달음의 소리는 아니었다. 이단은 풀린 손목을 돌리면서 계속 생각했다. 뭐가 있더라. 오른쪽 남자의 목에 발을 날리면서 조금 더 심도있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왔어?"

"이게 뭐냐고."

"생일 파티."

"누구의?"

"누군가의."


브란트는 거실에서 눈을 돌리지 않은 채 문을 닫았다. 한쪽에 풍선들이 깔려 있었는데 몇 개는 천장에도 붙어 있었다. 적어도 20개는 되는 꼬깔모자가 테이블에 쌓여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이단 헌트 머리에도 올라가 있었다. 피냐타-였던 걸로 추정되는-는 반토막이 되어 천장에 매달려 있었는데 안에서 쏟아져 나온 것들은 전부 USB와 오래된 필름들이었다. 대체 누가 피냐타에 저런 걸 넣어 놓냐고. 누군가 버리고 간 것 같은 삐에로 분장이 문 옆에 놓여 있었고 벽에는 슈퍼히어로들의 마스크가 붙어 있었다. 브란트는 바닥에 떨어진 장난감 활을 들어다 소파 쪽으로 던졌다. 온갖종류의 술이 식탁에 늘어서 있는 것은 좋았으나 브란트는 왜 이 난장판이 자신의 집에 펼쳐져 있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좋아, 설명해봐."

"난 지금 호텔에서 지내잖아, 아무래도 한계가 있더라고."


이단은 잡지를 읽고 있었다. 메인 기사는 <성공적인 파티 플래너가 되는 법 - 생일 편>. 브란트는 소파로 다가가 그 책을 뺏어다가 벽에 집어던졌다. 


"상처받았어, 브란트, 독서 중이었는데."

"너 임무 도중에 사라졌었잖아?? 지금까지 계속 상황실에서 뺑이치다 왔더니 뭐가 어째?"

"하고 싶은 걸 하라며."


내가 멍충이다. 내가 잘못했어. 내가 나쁜 놈이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단 헌트한테 하고싶은 걸 하라고 하다니. 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놈인데. 브란트는 한손으로 소파를 한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망할, 이거 반짝이야??- 갑자기 감성적이 된 것이 문제였다. 관리직으로서 이단의 파일을 보고 생일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리고 그 생일을 공중에서 맞이하게 된 것을 알았을 때 새삼 브란트는 이 대단하고도 골치아픈 남자가 좀 불쌍해졌던 것이다. 뭐가 됐든 생일날 낙하산 하나 달랑메고 미친놈들의 소굴로 뛰어들고 싶진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상대는 이단 헌트였고 브란트는 자신의 무책임한 발언이 낳은 대형 사고, 깔끔히 임무만 완성한 채 어디로 사라져버린 이단헌트 찾기 라는 새로운 임무에 허둥거리다가 퇴근한 참이었다. 


"그래서 뭘 하고 싶었는데."

"잘 모르겠더라고. 찾는 중이었어."

"온갖 생일파티를 혼자 열면서?"

"나름 좋은 방법이라고."


브란트는 고개를 저으면서 잔에 버번을 따라왔다. 이단에게 한잔을 주고 테이블에 앉으며 브란트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어떻게 살면 그 나이 먹도로 뭘 해야할지를 몰라. 아직도 못 찾았어? 이단은 고개를 으쓱해 보였다. 이제 몇 분 남지도 않았잖아. 내년 생일이나 기다려 보라구.


"여전히 위로는 형편없구나, 브란트."

"닥쳐, 이단 헌트. 건배나 해."


징한 생일 축하해, 이단. 브란트는 잔을 부딪히면서 그런게 말했고 둘은 잔을 비웠다. 바로 그 순간에, 이단은 깨달았다. 아! 이단이 몸을 튕겨내면서 바로 앉자 브란트는 사레가 들렸다. 왜. 왜. 무슨 일이야. 이단은 굉장히 집중한 얼굴로 브란트 어깨를 다잡았다.


"살아 남는거야."

"뭐?"

"살아 남아서 내년 생일을 맞이하는 거라고. 그게 내가 하고 싶은 거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브란트는 심드렁한 얼굴로 고갤 끄덕거렸다. 그런거면 성공했네, 오늘도 살아 돌아왔잖아. 11시 55분. 생일을 5분 남겨두고 이단 헌트는 최고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12시 정각에 브란트가 새로운 임무 파일을 넘겨 줄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