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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2차

미임파 이단 헌트 생일 헌정 / 이단 헌트는 절대 이 일을 하고 싶지 않다



이단 헌트는 절대 이일을 하고 싶지 않다





아마도 인상적인 꿈이었을 것이다. 나는 간밤의 꿈이 기억나지 않을 때면 그렇게 생각한다. 아마 몹시 굉장하고 엄청난 꿈이어서 '그래, 이것 참 대단하구만! 꿈 속의 일은 꿈 속에 남겨둬야지.'라고 생각한 채로 눈을 뜨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이유없이 마음이 편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알람소리를 듣고 눈을 떴을 때, 난 바로 그 순간이 왔음을 알았다. 베개에 파묻힌 얼굴때문에 불완전한 세상을 보면서 눈 뜨기 직전까지 무얼 보고 있었는지 완전히 잊어버렸다. 너무 인상깊어서 두고 온 꿈일거다. 나는 베개 아래에 넣은 손을 더듬었다. 손가락 끝에 걸린 묵직한 것을 밖으로 쑥 빼냈다. 이제는 역사와 함께 파산해버린 콜트 M시리즈 권총은 나보다도 나이가 많다. 난 이것을 18살때 외삼촌으로부터 물려받았다. 그 이후로 쭉 내 베갯머리에는 이 늙은 영감이 누워있었다. 나는 권총을 베고 자는 삶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옛말이다. 콜트는 장전되어 있지 않고 나는 이제 일어나 아침을 먹을 것이다. 어제 사다놓은 계란도 있고 운이 좋으면 냉장고에 상하지 않은 토마토가 두개 정도 남아 있어서 그럴싸한 아침식사가 되겠지. 나는 맨발로 침실에서 나아가 어떤 희망을 품고 냉장고를 열었다. 먹을만한 재료는 꽤 있었다. 그러나 렌지 위에서 까맣게 탄 프라이팬을 발견한 순간, 나는 계획을 수정했다. 나가서 먹기에 퍽 좋은 날씨 아닌가.

프라이팬을 태운 사람들이 모여사는 것은 아니지만, 대도시에선 아침을 먹으려는 사람들로 늘 북적거린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전부 아침을 먹기 위해 일한다. 오늘 살아서 내일 아침을 먹어야 하니까. 칼로리만 따진다면 점심에 먹을 것들과 비슷하지만 아침엔 가격을 할인해 주는 것이 그 증거이다. 나는 단골가게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베이컨을 튀기고 계란을 볶는 냄새가 요란했다. 나는 뜨거운 커피 한 잔과 오믈렛, 토스트를 주문 한 뒤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누군가 남겨놓고 간 신문은 반듯하게 접혀 있었다. 나는 커피를 소리 내서 한 모금 마신 뒤 신문을 펼쳤다. 1면을 장식한 것은 테러당한 파리 제1은행이었다. 무너진 건물과 금고가 적나라하게 찍혀 있었다. 이런, 큰일이군. 테러라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요즘같은 세상에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폭탄을 터뜨리는 종자가 있다니 정말 말세로군. 나는 신문을 뒤로 넘기면서 그 외의 흥밋거리를 찾아 봤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 사이 음식이 나왔다. 오믈렛은 촉촉했으며 버섯은 기가 막히게 간이 베어 있었다. 베이컨 끝이 좀 탔지만 이정도면 완벽하지 않은가. 한 접시를 깨끗이 비우고 커피잔 아래에 팁을 끼워놓은 뒤 부엌에서 손을 흔드는 주방장과 함께 인사한 뒤 나는 출근길에 나섰다. 

가는 길에 도넛을 몇개 샀다. 뭐든 일을 좋게 만들 때에는 도넛만한 것이 없지. 박스를 든 채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데 출입문 앞에 서고 나서야 집에 ID카드를 놓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튼 간에 이놈의 신분증은 도통 제자리에 있을 때가 없다. 나는 경비원 칼을 보고 씩 웃어 보였다. 칼은 가슴을 두드리고 모른 척 했지만 내가 도넛을 하나 내밀자 마지못해 문을 열어 주었다. 이러다가 큰일난다구요! 나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정말 고마워 칼! 나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 갔다. 책상과 파티션으로 구분되는 넓은 사무실은 저마다 하는 일로 바빴다. 나는 누군가와 인사하고 또 누군가와는 부딪히지 않으며 조심하면서 복도를 따라 들어갔다. 현장 1팀이라고 적힌 유리문을 등으로 밀고 들어가자마자 나는 높은 웃음소리와 맞닥드렸다. 벤지는 회의실 테이블 앞에 앉아 미친 사람처럼 웃고 있었다. 멀리 떨어져 그를 지켜보고 있는 브란트 옆에 서서 물어봤다. 벤지는 뭐가 문제야. 브란트는 벤지의 옆에 쌓인 레드불캔을 가리켰다. 여기서 제일 바쁘잖아. 어제까지 일 다 했다고 놀고있지 않았어? 달력이랑 오더를 잘못 봤데. 저런. 나는 브란트에게 도넛상자를 내밀었다. 브란트는 손끝으로 최대한 슈가파우더가 묻지 않은 도넛을 골라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벤지에게 다가갔다. 다 잘 되가지? 아 그럼요! 말이라고! 벤지는 두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건 그냥 스트레칭이에요,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죠. 그럴싸한 예술동작 같긴 하지만 분명히 스트레칭이죠. 이제 데이터를 복사해서 그걸 다시 거꾸로 만들기만 하면... 나는 도넛상자를 내밀었다. 먹고 해. 맙소사, 이단 당신은 최고에요. 벤지는 시나몬롤을 꺼내 들면서 비명처럼 말했다. 루터가 건너편에 있었다. 다들 아침에 뉴스 봤어? 파리 은행 폭발한 것 말야. 그냥 제대로 날려버렸던데. 나는 의자에 앉은 채 의자를 쭉 밀어 그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봤어, 충격적이지? 테러라니 말야. 루터는 고갤 끄덕였다. 테러도 다 유행이 지났지, 아직도 남에게 폭탄이나 터뜨리고 다니는 놈들은 전부다 유행에 뒤쳐진 놈들이야. 루터는 공같은 도넛 세개를 손에 쥐면서 투덜거렸다. 회사에서도 누군가 갈까? 내 질문은 브란트가 답을 했다. 등을 돌리고 있는 정수리에 머리가 삐죽하게 섰다. 갈수도 있지. 워낙 큰 일이니까. 물론 우리랑은 상관없지만. 

나는 그의 마지막 말을 따라하며 내 책상 앞으로 돌아왔다. 사진을 넣은 액자들이 잔뜩 있었다. 처음으로 서핑보드에 올랐을 때, 알프스 스키에 도전했을 때, 처음으로 마다가스카르에 갔을 때 따위의 사진이 잔뜩이다. 나는 도전을 즐기고 그걸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좋아한다. 현장임무 일선에서 물러난 뒤의 삶은 이렇게 화약냄새도 미간의 빨간색 레이저 포인트도 없다. 만족스러운 삶. 우리는 수요일에 모여서 맥주를 마시고 주말이면 모여서 카드게임을 한다. 루터는 새로 만난 애인 자랑을 하느라 정신이 없고 브란트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시크하게 '난 결혼 안할거야.'라고 잘라 말한다. 벤지는 맥주를 마시다가 그 잔에 얼굴을 박고 잠들기가 일쑤다. 나는 옛날에 있었던 일들을 몇 가지 이야기하고 내내 웃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느긋하고 편안하다. 당장 달려가야할 곳도, 구해내야 할 사람도 없다. 누군가 우리를 불러내서 도움을 요청해야만 나서는 백업팀의 운명은 그랬다. 사실 아무도 찾지 않았기 때문에 우린 서서히 잊혀졌고 아무에게도 대답할 필요없이 우리의 성을 만들었다. 세상에서 눈을 돌리면 이렇게나 가까운 만족이 남아있는 것이다. 나는 모니터를 켜면서 도넛 상자를 열었다. 그러나 도넛 상자는 비어있었다. 불길한데. 내 몇 안 되는 감들이 불편하게 입안을 굴러다녔다. 동시에 모니터에 메신저가 떠올랐다.

Are you sure?

나는 벤지에게 물어보고 싶었으나 그가 너무 바빴으므로 다시 화면을 봤다. 

Ethan, Are you sure?

루터. 이리 좀 와봐. 네가 치는 장난이야? 루터가 일어나서 내 자리까지 걸어오는 시간은 느긋해서 나는 세번째 메세지를 받을 시간이 충분했다.

REARLLY, ARE YOU SURE? 

그리고 불현듯 파리 제1은행이 떠올랐다. 아주 강렬해서 내가 마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화약냄새가 코 끝을 스치고 뺨에 화끈한 열이 느껴졌다. 은행은 아직 폭발하지 않았다. 제 시간 안에 금고에 들어간다면 아무도 다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고갤 저었다. 좀 답답한 것 같지 않아? 이단도 스트레칭을 해요. 벤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루터는 다가오고 있다. 등을 돌리고 있던 브란트도 목을 빼고 나를 쳐다본다. 왜 그래, 이단, 안색이- 그리고 난 도넛상자를 본다. 비어있다. 내 몫의 도넛은 없다. 갑자기 웃음이 난다. 이럴 줄 알았어.




<확신할 수 있어? 이단!>
<안돼 왜냐하면 그건 미친 짓이거든. 작전 허가는 내줄수 없어.>
<브란트한태 물어본 사람? 오 이런 아무도 없네. 민주주의 만세~>
<이단 대답해, 괜찮겠어? 성공할 수 있겠어?>

나는 거꾸로 매달린 채 생각했다. 아마도 인상적인 꿈이었을 것이다. 굉장한 꿈이어서 아마 생각이 나지 않는 것 뿐이다. 너무 오래 거꾸로 매달려 있었기 때문에 뇌가 잠시 잠들어버렸던 것 뿐이다.

"뛰어내려도 괜찮겠냐고 묻는거야?"

지하 20미터 아래 수직지하갱도에 있으니 나도 내가 괜찮은 건지 죽은 건지 잘 모를 일이다. 

<이제 1분 남았어!>
<다른 방법도 있을 거야.>

나는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을 내다본다. 저 어둠 속 끝에 은행 금고와 연결된 문이 있다. 그렇다고 추정할 수 있다. 아무도 모른다. 

"아니 다른 방법은 없어."

나는 웃었다. 끝내 기억해내지 못할 꿈이 궁금해진다. 

<허가할 수 없..!>
"끝에서 만납시다, 여러분."

나는 지상으로부터 연결되어 나를 지탱해주는 줄을 잘랐다. 화염이 터지기 전에, 총알 세례를 받기 전에, 폭탄이 터지기 전에, 누군가를 잃기 전에- 나는 어둠으로, 미지로, 한치 앞도 보이지않는 미래로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