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2차
미임파 이단브란 / 세계 종말 10분 전
힝개
2015. 8. 9. 23:27
세계 종말 10분 전
우리에게 기회가 있을까? 세계의 종말을 목전에 둔 우리에게, 오 신이시여, 우리에게도 기회가 남아 있습니까?
이단. 살아있어? 살아있다고 해줘. 아냐 어차피 다 죽을 거니까 상관없을까. 제인은 벤지가 병원으로 데려갔어.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마냥 피를 흘릴 수는 없잖아. 아이러니하군. 난 모니터를 보고 있어. 샌프란시스코였던 곳이 날아가는 모습 말이야. 버섯구름. 진짜 버섯구름이 올라왔어. 세계의 언론이 온통 그 장면 뿐이야. 이렇게 많은 언어로 한 장면을 계속 보여주는 것은 분명 기네스 기록에 오를 만한 일일텐데, 소감이 어때. 나는 너무나- 모르겠어.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아. 이제 간신히 일어나서 털고 일어나 거리로 나가면 네가 기다리는 차를 타고 다시 비행기로 돌아가고 워싱턴으로 가는 길에 5시간만 제대로 자고 싶어. 5시간만.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될까. 말하자면 저 핵은 우리가 터뜨린 셈이잖아. 우린 유령이고 동시에 테러리스트고 저 핵을 날려버린 사람들이니까. 이단 나는 모르겠어. 우리가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걸까?
우리가 충분히 노력하지 않아서 터지는 핵이라면 진즉에 터졌어야 해, 브란트. 그건, 그런 일이야.
살아있어?
그런 것 같군. 편해지기는 힘들겠네. 마지막 순간에 버튼을 눌렀는데 말이야, 브란트, 나는 내가 멈춘 줄 알았어. 하지만 실패했지. 난 실패한거야.
우린 실패한거지. 이미 우리 얼굴도 나란히 서방세계의 주적으로 팔려있는 걸 잊지 마. 이걸 개인적인 것으로 삼켜봤자 지금 무슨 의미가 있겠어. 넌 이제까지 실패라는 걸 모르고 살았겠지만, 이제 받아들여. 실패는 이런거야. 버튼 한번 잘못 눌러서 지구가 반이 날아가는 일이지. 어때 어렵진 않지?
브란트.
듣고 있어.
핵전쟁이 일어난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어?
아니.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바쁘더라고. 너는?
난 가끔 해봤어. 내가 이 가방을 얻지 못하면, 내가 이 코드를 훔치지 못하면, 내가 이 자를 잡지 못하면 핵전쟁이 일어난다. 핵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내가 아는 단골 레코드 가게가 없어지겠지. 술을 사기로 약속한 본부 직원에게도 약속을 지키지 못할거야. 백악관도 무너질 거고. 월급 받을 곳도 없어지겠네. 너의 그 아파트도 없어져 버릴 거고. 그런 생각이 들면 나는 핵전쟁을 막기 위해 무릎이 비틀어지도록 뛰는거지.
이미 샌프란시스코는 사라졌어, 이단. 도움은 안되겠지만.
알아, 이미 세상은 무너졌지. 곧 내가 아는 모든 것들이 무너질 거고. 브란트, 난 이렇게 실패해 본적이 없어.
괜찮아.
그래서 너무 두려워. 눈을 감은 채 동굴에 내던져 진 것 같아. 다음엔 무얼 해야할까, 무언가 할 수 있는게 있을까. 내가 죽으면 그것으로 이 일이 무마될까. 세상에 내 목숨값이 꼭 그만큼만 값어치가 있었더라면.
내가 그쪽으로 갈까?
난 네가 길에서 죽는 걸 원치는 않는데.
모를 일이지. 아직 미국에서는 핵을 쏘아 올리지 않았고 밤하늘엔 별이 떠 있어. 그리고 이왕 죽는다면 너에게 가다가 죽는게 나을 것 같은데.
네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윌.
이단, 우린 다 죽을 거야.
정말 위안은 안 된다, 너.
건너갈게. 그 자리에 있어. 죽더라도. 우리의 장렬한 실패를 함께 보자.
기다릴게.
기다려, 그때까지는 죽지마.
노력할게. 이번에는 정말 최선을 다할게.
-오후 9:21분 미국, 러시아를 향해 핵탄두 발사. 동시에 이란에서 서방을 향한 핵탄두 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