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청자성중구 / 인간실격 1
인간실격
1
이자성은 제가 선 곳이 바다인지 땅인지 똑바로 헤아릴 수 없었다. 맨발에 닿는 시멘트는 따끔거렸지만, 그마저도 출렁거리는 것처럼 느껴져서 자성은 곧 자신이 시멘트 반죽에 삼켜질 것이라는 공포에 빠졌다. 실제로는 이자성 혼자 땅 위에서 이리저리 비척거린 것에 불과했다. 그 옆에 있는 사람 대부분이 그랬다. 옷을 입다 만 듯 한 차림새의 비쩍 마른 남녀 여럿이 그렇게 비틀거리는 것은 흔한 광경은 아니었다. 그들은 배에서 짐짝처럼 끌어내려졌다. 거친 뱃사람 두엇이 이자성의 팔을 잡아끌고 갈 때는 영락없이 물고기 밥 신세가 될 줄 알았다. 실제로 나이가 많았던 남자 하나와 젊지만 탈수증세에 시달리던 남자 하나는 그렇게 끌려 나가 돌아오지 못했다. 다행히도 그들은 바다가 아닌 땅에 사람들을 던졌다. 브로커가 한번 털어서 가지고 간 뒤 남은, 그야말로 잡동사니들도 한꺼번에 그들에게 던졌다. 누군가의 신발이 날아와 이자성의 머리를 쳤다. 배는 사람들을 ‘배출’하고 다시 어둠속으로 나아갔다. 어디로 가라든지, 무엇을 하라든지 하는 친절한 말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텅 빈 부두에는 밤바람과 한 무리의 사람들만 남겨졌다. 자성은 바닥에 던져진 잡동사니 중에 제가 신던 신발과 제 옷가지를 찾아내 주워들었다. 그제야 멍하게 서 있던 사람들이 주섬주섬 물건을 주웠다.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긴 어둠을 지나는 동안 그들은 서로 싸우고 기대고 또 어떤 부정들로부터 눈을 감았지만 발이 뭍에 닿자 서서히 그들은 서로에게 이방인이 되었다.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슬금슬금 보자기를 끌어안고 항구 쪽으로 뒷걸음질 치더니 곧 가로등 불빛이 미치지 않는 어둠 속으로 내달렸다. 잘 가라는 말 하나 없이 그들은 헤어졌다. 목숨을 걸고 한 배를 탄 ‘전우’ 중 단 두 명이었던 여자들은 서로 손을 꼭 붙잡고 걸어갔다. 그리고 이자성만 남았다. 자성은 우두커니 서서 어디로 가야할지 헤아렸다. 그는 일단 가로등 아래에 기대섰다. 아직도 땅은 사납게 덤벼들었다. 배 밑바닥에 쪼그리고 앉거나 누워 바다를 건너는 동안 자성은 지독하게 앓았다. 배의 주인은 그가 나르고 있는 불법적인 ‘짐’에게 약간의 물과 건빵만을 주었다. 운이 좋으면 생선을 얻어먹기도 했지만 그것은 아주 드물었다. 배에 타고난 직후에 남아 있는 돈 대부분을 브로커에게 빼앗겨서 주머니에는 100위안과 배 안에서 다른 이가 바꿔준 한국 돈 만원뿐이었다. 그가 가지고 있던 낡은 총 역시 선장에게 빼앗겼다. 그건 별로 아깝지 않았다. 사실 그 총을 누군가 가져가 버린 것이 적잖이 안심이 되었다. 총을 옆에 두면 어둠 속에서 머리가 날아간 사장이 헐떡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옆에는 식칼을 든 아버지가 히히거리며 웃었다. 귀신 들린 총이었다. 다만 남은 총알 두 알은 여전히 자성의 바지주머니 안에 들어 있었다.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한국에서도 중국 돈을 쓸 수 있을까. 안 될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청도에 와서도 달러를 쓰거나 한국 돈을 썼다. 만원으로는 무얼 할 수 있을까. 자성은 문득 멀리 어둠 속에서 희뿌옇게 보이는 표지판을 보았다. 인천항 5km. 한자위에는 한글이 쓰여 있었다. 한국이다. 희미한 글씨들을 보며 이자성은 그제야 제가 죽지 않고 바다를 건너 한국에 왔음을 깨달았다. 한국이다. 이화가 있는. 그는 오한이 들었다. 마침내 한국까지 온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까. 이화를 팔아넘긴 사장을 죽이고, 이화가 갔다는 한국으로 왔다. 그러나 그 다음 계획은 없었다. 어떻게 할까. 이자성은 뒤축이 닳은 운동화를 질질 끌며 생각했다. 그래, 이화를 찾아야지. 찾아서, 찾아서. 문장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당장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얼마 가지 않아 아침 해가 떴다. 어스름을 틈타 자성은 항구에 있는 공중화장실에 들어갔다가 거울을 보고 기겁했다. 눈은 푹 꺼지고 입술은 하얗게 탄 걸인이 거울 속에 있었다. 씻으려고 수도꼭지를 틀었다가 어쩐지 물을 보자마자 허겁지겁 배부터 채웠다. 더 이상 물을 마실 수 없을 때까지 물을 마신 다음에야 겨우 세수를 했다. 그리고는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탔다. 청도에서 일하면서 몇 마디 얻어 듣고 이화에게 들은 한국어가 전부였지만 표지판은 한글과 한자가 같이 표기된 것이 많아 간신히 가진 돈 만원을 털어서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너무 피곤한 몸은 좌석에 앉자마자 파업을 선언했지만 자성은 눈을 파랗게 뜨며 졸지도 않았다. 창 밖에 지나가는 깨끗한 건물이며 도로들이 그저 자성이 탄 버스를 통째로 삼키려는 악어의 입 같아서 도무지 편하게 눈을 붙일 수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성의 옆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버스는 그를 서울역에 내려 주었다. 내리지 않는 자성을 보고 버스기사는 종점이니 내리라고 알려주었고 말은 알아듣지 못해도 제스처는 이해한 자성이 간신히 서울에 내렸다. 내리고 보니 별천지가 따로 없었다. 차도 사람도 너무 많았다. 자성은 사람들에게 치여 한쪽으로 밀려났다. 구석진 화단 앞에 앉은 채 자성은 몸을 움츠렸다. 모든 빌딩은 너무 높았고 하나같이 자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저기 살인자가 있다!’하며 누군가 자신을 잡으러 뛰어올 것 같았다. 공안이 한국 경찰과 함께 뛰어오는 상상이 계속 펼쳐졌다. 하지만 이렇게 넓은 곳에서 나를 어떻게 찾겠어. 자성은 애써 그런 상상을 잘라 버렸다. 그가 무작정 서울을 택한 이유는 새벽 내내 항구를 헤매며 머리를 쥐어 짜낸 끝에 떠올린 사람 때문이었다. 같은 주방에서 일하던 형이 한국으로 가서 일하게 되었다면서 가게를 그만두었었다. 형편 좋아지면 놀러와, 관광시켜줄게. 호기롭게 말하던 형은 팔자 편한 얼굴을 하고 떠났다. 그때 여러 번 어디 가서 일하게 되었다고 자랑했으나 한국으로, 그것도 서울에 갈 일은 도무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자성은 주의 깊게 듣지 않았고 그는 지금에 와서 죽고 싶을 만큼 후회했다. 기억을 샅샅이 뒤진 끝에 서울 강남 어디의 큰 중국집이라는 것만 기억해 냈다. 강남으로 가야한다. 자성은 거리에 있는 안내판을 보고 걸었다. 걷다가, 벤치에 앉아서 쉬다가, 다시 걸었다. 배가 고프면 공중화장실에 들어가 물배를 채우고 다시 걸었다. 발은 죄다 불어터지고 다리는 망가진 기계처럼 삐그덕거렸다. 맞는 길로 가는 건지 아닌지도 확실치 않았으면 움직이지 않으면 불안해서 살 수가 없었다. 어차피 그 사람 많은 거리에서 자성을 도와줄 이는 하나도 없었다. 강남에만 가면 돼. 미친 사람처럼 그 생각에 몰두한 자성이 그렇게 원하던 강남에 당도하기 까지는 꼬박 한나절이 걸렸다.
그토록 원하던 강남에 들어섰을 때 자성은 숨이 턱 막혔다. 더욱 더 큰 빌딩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고 자동차들은 자성의 행색을 비웃듯이 빠르게 내달렸다. 강남이 어느 동네의 이름인줄로만 알았던 자성에게는 그 모든 것이 큰 시련이었다. 이자성은 이제 무작정 식당들을 찾아 다녔다. 눈에 보이는 중국요리집은 전부 다 근처에서 어슬렁거렸다. 그러나 눈에 익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재수 없으면 가게 직원에게 거친 말과 함께 쫓겨나기 일쑤였다. 해가 지고 나니 거리는 더욱 화려하게 넘실거렸다. 낮보다 밤이 더 밝은 것 같았다. 잠깐이나마 청도 생각이 났다. 완전히 탈진한 자성은 빌딩과 빌딩 사이 구석에 주저앉았다. 꼴좋다. 동생 팔아먹고 이제와 찾겠다고 여기까지 오더니 결국은 죽을 자리를 찾아 왔구나. 다리는 부서진 듯 감각이 없어진 지 오래고 며칠 동안 물만 마신 빈 속은 멀미하듯 울렁거렸다. 그냥 여기서 죽을 것이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여기서 죽자. 겸허한 마음으로, 자성이 죽음을 받아들일 때 그 앞으로 우르르 인영이 스쳤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골목 안쪽이었다. 그곳은 화려한 간판을 달고 문을 활짝 열고 있었는데 청도에 죽 늘어선 가게들과 유사한 모양새였다. 지나쳤던 남자들은 자성을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왔다. 정장을 잘 차려입은 남자들은 자성을 둘러싸고 써서 시시덕거렸다. 가장 앞의 남자가 자성의 다리를 툭 찼다.
"야, 이 씨발놈아. 남의 장사 망치려고 작정했어? 꺼져."
자성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소리도 똑바로 들리지 않았다. 한껏 웅웅 울리는 소리만 들으며 멍하게 남자를 올려다보고 있었더니 앞에 선 남자는 곧장 자성의 얼굴에 주먹을 내다 꽂았다. 통증은 미지근하게 왔다. 얼굴이 먼저 돌아가고 몸이 따라 나뒹굴면서 그제야 파문처럼 뭉근한 통증이 날카로워졌다. 한번 가해진 폭력은 줄줄이 이어졌다. 사나운 구둣발이 자성의 어깨며 배, 다리, 심지어 머리까지 사정없이 쏟아졌다. 자성은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방금 전까지 죽는다고 생각하던 놈 치고는 너무 적극적인 자세 아닌가. 그는 그렇게 자조 했다. 남자들은 일정한 목적도 없이 민들레 꽃씨를 날리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자성에게 매질을 했다. 폭력은 호쾌하기까지 했다.
정말 희미하게 당겨진 정신이 이제 그만 놓아버릴 참인데, 갑자기 발길질이 줄어들더니 누군가 자성의 어깨를 흔들었다. 자성은 여전히 온몸을 구긴 채였다. 머리를 감싼 팔이 욱신거렸다.
“야, 야, 너 혹시 청도에 이자성이 아니냐?”
자성은 눈을 떴다. 그 말을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중국어였고, 그 중국어는 자성이 한국에 온지 이틀여만에 처음 듣는 중국어였기 때문에, 내용과 상관없이 눈물나게 반가울 지경이었다. 하물며 이자성이라니. 그 낯선 이름을 이곳에서 알만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딱 한 사람 빼고는.
“야, 이자성이, 너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자성은 얼핏 익숙한 얼굴을 앞에 두고 입만 뻐금거렸다. 요리사 가운을 입고 있을 줄 알았던 사람이 말쑥한 정장을 입고 있으니 영 낯설기도 했고, 오랜만에 보는 얼굴은 살도 좀 붙었다. 그래도 아는 사람이다. 아는 사람. 이름이 뭐더라. 자성은 자꾸 머리가 뱅뱅 돌아서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아는 이름인데, 아는 사람인데.
“현도형, 현도형 맞아요?”
자성은 그의 무릎을 잡아 붙들었다. 현도였다. 그의 이름은 현도였다. 한국가서 일한다고 기운차게 웃던 사람이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무릎이며 팔을 쥐고 매달리자 현도는 좀 놀란 기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청도에서 순하게 일이나 하던 이자성을 강남 한복판에서 만나게 되리라고는, 현도도 이자성도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이자성의 상태를 본 현도는 우선 그를 데리고 가서 모텔에 넣어주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사나흘 넘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굶은 티가 났고 무엇보다 집단구타를 당해 똑바로 잘 서지도 못했다. 현도는 자성을 데리고 가며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쟤네가 나쁜 애들은 아닌데, 여기 일이 원래 좀 그래. 자성은 그런 말은 하나도 귀에 안 들어왔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그저 현도의 팔을 붙들고 있을 뿐이었다. 모텔 방에 자성을 데려다 주고 현도는 지갑에서 만원짜리 지폐를 몇 장 꺼냈다. 그러다 자성이 한국말을 잘 못한다는 걸 떠올렸는지 알아서 백반 하나를 시켜주었다.
“나 지금 일하러 가야하니까 일단 여기서 쉬고 있어라. 밥 올 테니까 그것도 좀 먹고. 돈 여기 두고 갈 테니까 주면 되고.”
자성은 강박적으로 그에게 다시 올 거냐고 여러 번 물었고 현도는 그런 자성을 낯선 눈으로 쳐다보며 다시 온다고 확답을 주고 떠났다. 모텔은 온통 알록달록한 색으로 치장되어 있어서 꼭 이상한 세상에 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모든 것이 깨끗해보여서 건드리기가 조심스러웠다. 방금 전까지 죽느니 사느니 하다가 갑자기 길이 트이자 그 틈으로 서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자성은 침대도 못 눕고 현관 근처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여기까지 떠 밀려온 자신의 처지와 어딘지도 모를 곳에 간 이화의 처지가 안 되어서 울었다. 눈물은 금방 말랐다. 슬픔이 그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더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현도가 시킨 백반은 금방 배달되었다. 배달원은 엉망인 자성의 얼굴을 보고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지만 돈 계산을 하고 가버렸다. 어설프게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찬을 놓았다. 육개장이었다. 자성은 그 이름을 몰랐으나 세상에 그렇게 맛있는 것은 처음 먹어보았다. 그는 씹을 새도 없이 음식을 입안으로 욱여넣었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한 것이 얼마만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또 꾸역꾸역 눈물이 났다. 아마도 너무 맛있는 걸 먹으면 울게 되는 모양이라고, 자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현도가 돌아온 것은 아침이 된 후였다. 자성은 침대가 아닌 바닥에서 죽은 듯이 자고 있었다. 현도는 그렇게 널부러진 자성이 혹시 죽은 것은 아닌지 덜컥 겁이 났으나 다행히 여러 번 깨우자 그는 겨우 눈을 떴다. 자성이 물을 마시고 눈에 좀 총기가 돌아오자 현도는 드디어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그가 아는 한 이자성은 착실하고 성실했으며 동생과 함께 잘 사는 것 외엔 무엇에도 관심 없는, 다시 말해 이런 거지꼴로 한국 땅에서 마주칠 일이 전혀 없는 인간이었다. 자성은 가급적 사실대로 털어 놓았다. 사장이 이화를 한국인에게 팔아버린 것, 가게를 그만두고 이화를 찾으러 온 일 등을 모두 말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사장을 죽였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거짓말은 아니잖아, 다만 불필요한 것은 말하지 않았을 뿐이야. 현도는 이야기를 듣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의자를 자성에게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잘 들어, 인마. 일찌감치 맘 접고 청도로 돌아가라. 너 손재주도 좋으니 계속 일 배우다가 나중에 네 가게나 차려라. 원래 그게 네 꿈 아니냐. 이화는 잊어버려, 찾을 수 없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 번 자성의 얼굴을 쳐다보던 현도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전날까지 거의 죽어가는 생선처럼 흐리던 자성의 눈은 국밥 한 그릇에 총기를 찾았는데, 그 검은 눈에 시퍼렇게 독이 들어 있었다. 그 눈은 험한 소리를 들어도 웃으며 넘기며 야채를 다듬던 순한 이자성이 아니었다. 그 눈은 그가 처한 처지만큼이나 낯설고 또 무서웠다.
“나는 못 가요, 형. 우리 이화 찾을 때까지는 못 가요. 못 찾더라도 여기서 죽을 거 에요.”
현도는 저도 모르게 제 뒷목을 문질렀다. 그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현도는 애써 다른 말을 꺼내려 했지만, 자성의 눈과 입에 서려있는 서슬 퍼런 진심이 다른 말을 막았다. 결국 그는 자성을 앞에 두고 줄담배를 연달아 태웠다. 이 일을 어쩐다. 모른 척 하기엔 이미 너무 이 놈 사정을 다 들어 버린데다가 그가 모른 척 한다고 그냥 다시 얌전히 나갈 이자성도 아니었다. 현도는 고민하다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더 이상 그만하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차라리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럼 일단 여기서 밥벌이 할 궁리부터 좀 하자. 그래야 이화를 찾든, 뭘 하든 할 거 아니냐.”
현도는 한숨을 길게 쉬면서 말을 이었다. 내가 자리 하나는 알아봐 줄 수 있는데, 그렇게 쉽진 않을 거야. 할 수 있겠냐? 자성은 마냥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든지 다 할 수 있어요. 현도는 두 번 묻지 않았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로 이루어 졌다. 거지꼴인 자성은 부지런하게 씻었고 욕실에서 나오니 현도가 가져온 옷이 있었다. 셔츠와 정장은 없이 산 눈이 보기에도 싸구려는 아니었다. 자성이 주섬주섬 그 옷을 입었는데 모양새가 영 아빠 옷 입은 아들이었다. 원래도 현도보다 마른 체격인 것을, 며칠간 치른 고생에 더 살이 내려서 품이 남고도 돌았다. 그래도 거지꼴은 면했으니 그만하면 됐다하고 현도가 자성을 데리고 나갔다. 현도가 알아봐 준다는 일자리는, 자성은 당연히 주방일로 생각했는데, 정작 데려간 곳은 번듯한 사무실이었다. 술집들이 쭉 늘어선 골목 뒤쪽에 붙어 있는 사무실로, 그쪽으로 꺾어들자 조용한 뒷길이 나타났다. 가는 길에 현도는 설명이랍시고 몇 마디 말을 더 했다. 중국서 한국으로 온 다음에 큰 중국집 주방에서 일을 하긴 했는데 한 달도 안 되서 때려 치고 나왔던 일, 화교인맥을 통해 지금 일하는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기까지를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너도 대충 봐서 알겠지만, 나 이제 주방에서 칼 안 잡는다. 거기서 푼돈 벌어서 언제 돈 모으고 언제 부자 되겠어. 그보다 더 중요한 일 하고 있는데 거기 막내 잔심부름하는 자리 알아보러 거야. 지금 가는 곳에서 잘 보여야 돼. 알았지?”
그도 사실 말단이나 다름없었으니 새로운 군식구를 데리고 가는 것도 사실 도박이긴 했지만, 중국서 자길 찾아서 여기까지 왔다는 놈을 마냥 길에 내다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말이라도 한 번 붙여볼 심산이었다.
사무실은 3층이었다.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희멀건 복도가 나왔다. 먼지와 함께 쌓여가는 잡동사니들 사이에 아무 간판도 없는 문이 보였다. 현도가 먼저 문을 열었다. 사무실에는 사람이 꽤 많았다. 왁자지껄하지는 않았지만 적당히 소란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유롭게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는데, 둘러앉아 포커를 치는 사람, 당구를 치는 사람, 술을 마시며 떠들고 있는 사람 등 다양했다. 무리 중간 중간 얼굴에 흉이 진 남자나 옆에 칼을 놓고 있는 남자가 있어서 한 눈에 보기에도 보통의 사무실은 아니었다. 현도를 따라서 자성이 들어가자 안의 소란한 분위기는 점차 사그러 들고 날카로운 시선들이 여럿 와서 자성을 찔렀다. 자성은 어깨가 바짝 굳어 긴장했지만, 주먹을 꽉 쥐고 손톱으로 손바닥 안쪽을 찌르면서 긴장감을 버텼다. 현도는 넉살좋게 이 곳 저 곳 인사를 하며 안쪽으로 쭉 들어갔다. 긴 직사각형 모양의 사무실은 모든 것이 무질서해 보였는데, 현도는 용케 그것을 잘 헤치고 나아가 안쪽의 포커 테이블에 당도했다. 한참 진지한 얼굴로 카드를 보고 있는 남자에게 현도가 꾸벅 인사를 했다. 남자는 현도보다 나이도 많고 체격도 더 큰 사람이었다. 형님 안녕하셨습니까. 남자는 내내 카드를 보고 있다가 어렵게 시선을 들어 현도를 보았다. 그제야 자성은 현도가 가르쳐 준 대로 꾸벅 인사를 했다. 남자는 어수룩한 자성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현도만 똑바로 쳐다봤다.
“얘가 네가 말한 걔냐?”
“예, 형님, 싹싹하고 성실한 편이니 일을 가르치는 대로 다 배울 것입니다.”
“성실은 니미, 조폭이 성실해서 뭐 할 건데, 성실하게 사람 쑤실거야?"
그 말에 테이블에 있는 남자들이 다 웃었다. 현도도 짧게 웃었다. 이자성만 돌처럼 굳어 있었다. 정운은 웃음을 거두며 물었다.
“야 너 뭐 잘해.”
자성은 오는 길에 현도가 급히 일러준 한국어를 떠올렸다. 괜찮아, 잘 할 수 있어. 그러나 굳은 입에선 말이 잘 나가지 않았다.
“요리를 합니다.”
“얼씨구. 지랄 났네.”
정운의 말에 또 주변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현도는 이마를 문질렀고 자성은 연유를 몰라 하얗게 질렸다. 그러나 그는 그 분위기가 결코 우호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어떻게든 어필하지 않으면 중국으로 돌아가야 해. 이제 그곳은 자성의 무덤이다. 자성은 다급하게 말을 붙였다.
“칼 잘 씁니다.”
정운은 손에 든 카드를 내려 놓으며 되물었다.
“칼? 양파 썰고 감자 써는 식칼? 그럼 이건 써봤냐.”
그러더니 옆에 천으로 감아 놓은 걸 집어 들었다. 길쭉한 모양이 영락없는 사시미였다. 천이 풀려서 드러난 칼날이 형광등빛에 퍼렇게 빛이 나는데 정운은 그걸 아무렇지 않게 휘휘 휘둘렀다. 그 서슬에 현도는 한걸음 물러났으나 이자성은 그냥 그곳에 그대로 서 있었다. 사시미 코끝이 거의 그의 옷 앞섬이 닿을 것처럼 날름거렸는데도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회 떠요. 그 칼.”
“야 이 새끼 말이 왜이래?”
“아직 온지 얼마 안 되서 한국말이 좀 서투릅니다, 형님.”
현도는 애써 웃는 낯으로 말했지만 정운의 턱은 굳어 있었다. 그가 사시미 날을 튕기며 다시 입을 열었는데 중국어가 수월하게 쏟아졌다.
“야, 이걸로 사람 쑤실 수 있겠냐? 응? 사람 쑤시기 전에 지 손가락부터 잘라먹게 생긴 놈이.”
“그라는 니도 첨 칼 잡을 때 느 엠지 잘라다 매운탕에 넣어먹을 뻔 안 혔냐.”
정운의 말을 받은 것은 낯선 목소리였다. 처음듣는 억양의 한국어라, 도통 뜻을 모르는 자성이 그 말을 누가 했는지 알아볼 새도 없이 정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방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일어섰다. 사무실은 안쪽으로 문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문을 열고 나온 남자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발을 내딛을 때 비뚤어지는 방향이 몹시 건들거렸는데, 어떤 신호라도 떨어진 것 마냥 갑자기 사무실 안의 모든 사람이 동시에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불쌍하게도 이자성은, 그렇게 허리를 반으로 접어 인사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등대처럼 오독하게 서서 낯선 남자를 정면으로 쳐다보게 되었다. 남자는 몇 걸음 전에 멈춰 섰는데 잘 차려 입은 정장치고 자세가 불량해서 좋게는 안 보였다.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모두 찔러 넣고 서 있는데 선그라스로 반은 가린 얼굴 아래는 웃는 낯이었다. 좋은 일 있는 사람처럼. 지금은 밤 아니던가, 선그라스가 밤에 왜 필요하담. 자성은 엉뚱하게도 그렇게만 생각했다.
현도가 무릎을 걷어차며 알려준 덕분에 자성도 대충 맞춰서 인사를 올렸다. 남자는 느릿느릿 걸어와서 정운이 쥐고 있던 칼을 건네받았다. 아주 급할 것 하나없는 동작이었다.
"일거리 찾아 왔담서?"
"네."
자성은 직감적으로 이 일의 결정권자가 정운에게서 이 낯선 남자에게로 넘어갔다는 걸 알았다. 배를 타고 굶어 죽어가며 이곳까지 오는 동안 내내 깨어있었던 날카로운 감각이 그 남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잡아야 한다. 이 사람이 생명줄이다.
"일 잘해요."
자성은 허릴 똑바로 펴고 말했다. 남자는 사시미에 뭐라도 묻은 양 제 옷 소매에 닦더니 정운에게 돌려줬다.
"정운아야."
"네, 형님."
"저 새끼헌티 칼 넘기지 말어야."
현도는 망했다고 생각했다. 가망이 없겠는걸. 자성이는 눈만 꿈뻑거렸다.
"칼 쥐어주면 눈앞에 뵈는 것 없이 여럿 제껴버릴 눈이다, 저것이."
안 보이냐? 저 눈에 퍼런 불길 낼름거리는 것이. 남자는 손짓을 했다. 가까이 와보라는 듯이. 이자성은 미는 사람 하나 없는데 누구한테 떠밀린 듯 그 앞으로 다가갔다. 남자가 선그라스를 벗었다. 조금 떨어져서 볼 때 짐작하기는 했으나 역시 남자는 웃고 있었다. 그 자체로 얼굴인 것처럼. 그리고 별안간 자성의 얼굴이 팩 돌아갔다.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자성은 자신이 도대체 언제 맞았는지도 몰랐다. 다시 고갤 똑바로 하고 눈을 깜빡거리는데 남자가 자성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 봤다.
"음, 맷집은 좀 있네? 참을성도 있고? 허기사 그라게 속 뒤집혀서 살라믄 참을성이라도 있어야제."
남자는 다시 선그라스를 썼다. 자성의 왼쪽 뺨은 벌써 뻘겋게 부어오르기 시작했고 남자는 무슨 콧노래 같은 걸 부르면서 자성을 지나쳐 사무실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모두가 그를 보고 있었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가다말고 뒤 돌아서서, ‘칼을 쥐어주지 말고 담배 심부름이나 좀 시켜봐야.’ 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남자는 무대에서 내려갔다.
그 짤막한 말 한마디에 이자성은 거기서 일하게 됐다. 조폭 똘마니. 잔심부름하는 삐쩍 마른 애송이. 그게 이자성을 부르는 이름이 되었다. 그날 자성의 뺨을 때린 남자는 정청. 그 구역 관리하는 조폭무리의 작은 두목이었다.